성경, 알고 보니
엘라 계곡 도자기 조각의 다섯 줄 —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자 후보를 둘러싼 논쟁
2008년 여름, 이스라엘 엘라 계곡(사무엘상 17장이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 무대로 지목하는 바로 그 골짜기) 자락의 히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 유적에서 발굴팀이 도자기 파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요세프 가르핀켈(Yosef Garfinkel)과 이스라엘 유물관리청의 사르 가노르(Saar Ganor)가 이끈 발굴이었다. 15×16.5cm 크기의 사다리꼴 파편 표면에는 잉크로 쓴 다섯 줄의 글자가 남아 있었다. 이 도편(오스트라콘, ostracon)은 이후 10년 넘게 이어지는 판독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다섯 줄, 그러나 합의는 없다
같은 지층에서 나온 올리브씨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이 오스트라콘은 철기시대 IIA, 대략 기원전 11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사이로 추정된다 — 성경 연대기상 다윗 왕의 시대와 겹치는 구간이다. 발굴단의 공식 판독자 하가이 미스가브(Haggai Misgav)는 가르핀켈·가노르와 함께 2009년 발굴보고서(Khirbet Qeiyafa Vol. 1)에서 이 문자를 초기 히브리어로 소개했다. 같은 해 아다 야르데니(Ada Yardeni)도 독자적인 판독을 내놓았는데, 세부 글자 판독에서 미스가브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게르숀 갈릴(Gershon Galil, 하이파대학교)의 것이다. 그는 2009년 Ugarit-Forschungen 41호 논문에서 이 텍스트를 “종을 위해 재판하라… 고아를 위해 재판하라… 과부를 위해 탄원하라… 왕의 손으로 가난한 자를 회복시키라… 나그네를 보호하라”는 취지의 사회정의 규정으로 읽었다. 갈릴은 18개 단어 중 8개가 히브리어에서만 확인되는 어휘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다윗 시대 유다 왕국에 이미 문자 행정과 히브리어 문헌 전통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결론지었다.
히브리어인가, 아직 알 수 없는가
그러나 이 읽기는 학계에서 결코 합의된 것이 아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크리스토퍼 롤스턴(Christopher Rollston)은 2011년 Tel Aviv 38호 논문(“Methodological Musings and Caveats”)에서, 갈릴이 히브리어 고유 어휘라고 제시한 표현들이 실제로는 셈어족 전반에서 공유되는 일반 어휘이거나 애초에 그렇게 읽힐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롤스턴은 이 문자를 “고대 히브리어”로 단정하지 않고 초기 알파벳 문자(가나안 문자 계열)로 분류하는 편이 더 정직하다고 본다. 고고학자 아론 뎀스키(Aaron Demsky)는 아예 이것을 필사 연습장으로 보며 확실히 히브리어로 식별되는 단어가 없다고 평가했다. 앨런 밀라드(Alan Millard)는 인명 목록일 가능성을, 에밀 퓌에슈(Émile Puech)는 사울의 즉위를 알리는 왕실 포고문일 가능성을 각각 제시했다. 다섯 학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텍스트인 셈이다.
왜 이 유적 자체가 논쟁적인가
히르벳 케이야파는 오스트라콘 하나만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이 유적은 다윗-솔로몬 “통일왕국”의 실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 전장이기도 하다. 가르핀켈과 가노르는 이 요새화된 도시가 기원전 1020975년경 유다 왕국이 세운 것이라 주장하며, 이스라엘 핑켈스타인(Israel Finkelstein)이 제안한 “낮은 연대기”(다윗-솔로몬 시대 유다에는 아직 국가 조직이 없었다는 가설)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핑켈스타인은 곧바로 반박했다. 엘리 피아세츠키(Eli Piasetzky)와 함께 2010년 Tel Aviv 37호 논문에서, 방사성탄소연대 다섯 개를 단순 평균 내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부적절하며 — 이 수치들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유적이 사용된 전체 기간을 반영한다고 — 실제로는 기원전 1050915년경까지 폭넓게 걸친다고 주장했다. 핑켈스타인은 나아가 이 유적이 애초에 유다 왕국 소속이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본다.
정직하게 남겨두어야 할 것
히르벳 케이야파 오스트라콘은 텔 단 비문처럼 명확한 결론을 주는 물증이 아니다. 문자가 새겨진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이라 쓰여 있는지, 어느 언어인지, 심지어 어느 왕국 소속 유적에서 나왔는지까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윗 시대 최고(最古)의 히브리어 문서”라는 표현은 갈릴을 비롯한 일부 학자의 해석이지 학계의 합의는 아니다. 이 오스트라콘의 진짜 가치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 철기시대 유다 고지대에 문자를 다루는 행정 조직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고고학적 물증을 성급하게 성경 내러티브에 끼워 맞추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다. 오스트라콘 원본은 현재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철기시대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 자료
- Haggai Misgav, Yosef Garfinkel, and Saar Ganor, “The Ostracon,” in Yosef Garfinkel and Saar Ganor, Khirbet Qeiyafa Vol. 1: Excavation Report 2007–2008 (Jerusalem: Israel Exploration Society, 2009), 243–257
- Gershon Galil, “The Hebrew Inscription from Khirbet Qeiyafa/Netaʿim: Script, Language, Literature and History,” Ugarit-Forschungen 41 (2009): 193–242
- Christopher A. Rollston, “The Khirbet Qeiyafa Ostracon: Methodological Musings and Caveats,” Tel Aviv 38 (2011): 67–82
- Israel Finkelstein and Eli Piasetzky, “Khirbet Qeiyafa: Absolute Chronology,” Tel Aviv 37 (2010): 84–88
- Alan Millard, “The Ostracon from the Days of David Found at Khirbet Qeiyafa,” Tyndale Bulletin 6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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