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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1993년 발굴이 찾아낸 '다윗의 집' — 성경 밖 최초의 다윗 왕조 언급

1993년 7월 21일,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상류 텔 단(Tel Dan) 발굴 현장에서 발굴팀의 Gila Cook이 붕괴된 담장 잔해 사이에서 현무암 비문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표면에는 고대 아람어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현장 책임자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과 에피그래퍼 요셉 나베(Joseph Naveh)가 판독에 들어갔고, 이 조각이 담고 있는 내용이 분명해지면서 그것은 20세기 후반 성서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됐다.

”베이트 다윗” — 외부 적이 기억한 이름

비문에는 아람어로 전승 기념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상대로 거둔 군사적 승리를 기록하는 내용인데, 거기서 유다 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ביתדוד”(비트다윗, bytdwd)가 등장한다. 비란과 나베는 이 표현을 “베이트 다윗(Beit David)”, 즉 “다윗의 집”으로 판독했다. 아람어에서 “베이트(בית)“는 집이나 왕조를 뜻하고, “다윗(דוד)“은 인명이다. 즉 “다윗의 집”은 유다 왕조 전체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비문의 역사적 맥락을 판독한 결과, 이것은 기원전 9세기 아람-다마스쿠스 왕 하사엘(Hazael) 또는 그 후계자가 세운 전승 비석의 일부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연대는 열왕기하 8-10장의 역사적 배경(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아람 분쟁)과 부합한다.

아브라함 비란과 요셉 나베는 이 발견을 이스라엘 탐험 저널(Israel Exploration Journal) 43권 2-3호(1993년)에 “텔 단에서 나온 아람어 비문 조각”(“An Aramaic Stele Fragment from Tel Da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 추가 비문 조각(단편 B)이 발굴됐고, 이것도 1995년 같은 저널 45권 1호에 발표됐다.

텔 단 비문 조각, 현무암 기념비 새김글, 기원전 9세기 텔 단 비문(Tel Dan Stele), 현무암 기념비에 새겨진 아람어 비문, 기원전 9세기 · 이스라엘 박물관(예루살렘) 소장 · CC0 / Public Domain. 본문에서 다루는 실제 발굴 비문 조각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 그리고 무엇을 증명하지 않는가

1993년 이전에는 성경 밖 고대 문헌에서 다윗 또는 다윗 왕조를 직접 언급하는 기록이 없었다. 이 공백을 근거로 일부 학자들(소위 “성경 최소주의자”로 불리는 Niels Peter Lemche, Thomas L. Thompson 등)은 다윗 왕이 성경의 문학적 창작물이거나 그의 역사적 중요성이 대폭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텔 단 비문은 이 상황을 바꿨다. 기원전 9세기 아람 왕이 자신의 군사적 적수들을 기록하면서 유다 왕조를 “베이트 다윗”이라 불렀다는 사실은, 다윗의 이름이 실제 왕조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자국에 유리하게 쓰는 왕의 선전 비문에서 적국의 왕조를 가리켜 지어낸 이름을 쓸 이유는 없다. 이것은 다윗 왕조가 당시 근동 정치 세계에서 실제로 알려진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 비문이 증명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비문은 “베이트 다윗”, 즉 왕조 전체를 가리킬 뿐, 다윗 개인의 생애나 구체적인 업적을 직접 기록하지는 않는다. 리처드 헤스(Richard S. Hess)는 『이스라엘 종교』(Israelite Religions: An Archaeological and Biblical Survey, Baker Academic, 2007)에서 이 비문의 의의를 정확하게 정리한다. 비문이 확인하는 것은 “다윗의 왕조”가 기원전 9세기 근동에서 실제 정치 세력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Lemche와 Thompson의 최소주의 해석, 즉 “bytdwd”를 “베이트 다윗”이 아닌 다른 지명이나 신전 이름으로 읽는 대안 해석은 학계 다수에 의해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 학계의 표준은 “베이트 다윗 = 다윗의 집(유다 왕조)“이라는 판독이다.

적이 기억한 이름

역사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종종 등장한다. 자국을 친 적국의 전승 기념비가, 바로 그 적의 역사성을 증언하는 가장 강력한 외부 자료가 되는 경우가 있다. 기원전 9세기 아람 왕은 유다를 이겼다고 자랑하려고 이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그 비석이 2,800년 뒤에 “다윗의 집”이라는 이름이 실제였음을 증언하는 물증이 됐다.

텔 단 비문 원본은 현재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전시되어 있다.

참고 자료

  • Avraham Biran and Joseph Naveh, “An Aramaic Stele Fragment from Tel Dan,” Israel Exploration Journal 43.2–3 (1993): 81–98
  • Avraham Biran and Joseph Naveh, “The Tel Dan Inscription: A New Fragment,” Israel Exploration Journal 45.1 (1995): 1–18
  • William M. Schniedewind, “Tel Dan Stela: New Light on Aramaic and Jehu’s Revolt,”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02 (1996): 75–90
  • Richard S. Hess, Israelite Religions: An Archaeological and Biblical Survey (Baker Academi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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