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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메르넵타 석비 — 성경 밖 문헌이 '이스라엘'을 언급한 최초의 기록

1896년 이집트 테베, 고고학자 플린더스 피트리(Flinders Petrie)의 발굴팀은 메르넵타 왕의 장제전(mortuary temple) 첫 번째 안뜰 남쪽 벽 인근에서 거대한 흑색 화강암 석비 하나를 찾아냈다. 높이 약 3.1미터(10피트)에 이르는 이 석비는 원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가 세운 것이었는데, 그의 후계자인 메르넵타(재위 기원전 1213경–1203경)가 뒷면에 자신의 승전 찬가를 새겨 재사용한 것이었다. 28행에 이르는 이 이집트 상형문자 찬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 밖 어떤 고대 문헌에도 등장한 적 없는 낯선 이름 하나가 발견됐다 — “이스라엘(Ỉsrỉȝr)”.

비문이 말하는 것

석비의 27행은 메르넵타가 가나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를 나열한다. “가나안은 온갖 재앙으로 포로가 됐고, 아스칼론은 끌려갔으며, 게젤은 붙잡혔고, 야노암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됐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으니 그 씨가 없다.” 이 구절은 기원전 1208년경(메르넵타 재위 5년)으로 연대가 매겨진다 — 성경 밖 문헌에서 “이스라엘”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결정사 하나가 만든 논쟁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명사 뒤에 그 대상의 범주를 알려주는 “결정사(determinative)“가 붙는다. 이 비문에서 가나안·아스칼론·게젤·야노암에는 모두 “성읍·지역”을 뜻하는 결정사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다른 결정사 — 앉아 있는 남녀와 복수를 뜻하는 세 개의 선 — 가 붙어 있다. 이는 이집트 서기관이 이스라엘을 특정 성읍이나 영토가 아니라 “사람 집단”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이집트학자 마이클 하셀(Michael G. Hasel)은 이 결정사 분석을 근거로 “이스라엘은 기원전 13세기 말 정착·농경 기반의 사회·종족 집단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296호, 1994). 이집트학자 케네스 키친(Kenneth A. Kitchen)도 “메르넵타 석비의 이스라엘은 그 명확한 결정사에 따르면 영토나 도시국가가 아니라 사람(부족) 집단이었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2003). 다만 일부 학자는 이 비문의 서기관들이 결정사 표기에서 종종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이 해석을 지나치게 확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르넵타 석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메르넵타 석비(Merneptah Stele), 기원전 1208년경, 화강암 ·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JE 31408) 소장 · Olaf Tausch 촬영, CC BY 3.0.

왜 중요한가 — 그리고 무엇을 증명하지 않는가

1896년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성경 밖 어떤 고대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 침묵을 근거로 일부 최소주의 학자들은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적 실재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메르넵타 석비는 적어도 기원전 13세기 말, 이집트인들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라 부를 만한 사회·종족 집단을 실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군사적 승리를 과장해 선전하는 파라오의 기념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지어내어 정복했다고 새길 이유는 없다.

동시에 이 비문이 증명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석비는 출애굽이나 가나안 정복의 구체적 사건을 서술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정확히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어떤 규모와 조직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 다수 학자는 중부 산지 어딘가로 추정할 뿐이다. 라리 브루스(Larry D. Bruce)가 지적하듯, 이 비문이 확립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체가 기원전 13세기 말 가나안에 존재했다”는 사실이지, 그 이상의 내러티브적 세부사항이 아니다(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62.3, 2019).

파라오의 자랑스러운 승전 찬가가 3,200년 뒤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실재했다는 가장 오래된 외부 증거가 됐다 — 텔 단 비문의 “다윗의 집”처럼, 적이 새긴 기록이 그 대상의 역사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메르넵타 석비 원본은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전시되어 있다.

참고 자료

  • Michael G. Hasel, “Israel in the Merneptah Stela,”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296 (1994): 45–61
  • Kenneth A. Kitchen,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3)
  • Larry D. Bruce, “The Merenptah Stele and the Biblical Origins of Israel,”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62.3 (2019): 46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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