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분석
이정규 목사의 설교 스타일 — 역사의 현장과 스크린 사이에서
시광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서울) 담임 이정규 목사는 언론 노출이 거의 없다. 유튜브 채널 @seetheglory에 매주 설교가 올라올 뿐, 인터뷰나 기사로 그를 접하기는 어렵다. 드물게 남은 인터뷰 중 하나에서 그는 오늘날 강단이 놓치는 것을 이렇게 짚었다.
“많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복음 중심이 아닌 경우 많습니다… 설교자들은 성경 본문을 충실하게 반영해서 본문대로 살라고 말합니다. 사역자가 윤리만 전하면 답이 없습니다. 복음이 스며들어야 그 능력 때문에 다음 세대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 고신뉴스 KNC, “이정규 목사 ‘청년들,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싶어 합니다’”
강단에서 그는 이 진단을 여러 방식으로 실천한다.
고대 세계로 들어가는 문 — 역사적 현장 재현
이정규 목사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경 본문을 읽기 전에 그 본문이 살았던 시대의 현장을 청중 앞에 펼쳐 보이는 방식이다. 이 현장 묘사는 단순한 배경 설명이 아니다. 논증의 첫 번째 돌이 되어, 그 위에 신학적 주장이 세워진다.
마가복음 43편 설교(2026년 5월)에서 그는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는 서기관 한 명에게서 출발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이 자꾸 세트로 나오니까 서기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다음 그는 서기관이 초년병에서 고급 연구자로 올라가는 직업적 계보, 모세 오경의 계명을 613개로 분류하는 랍비 전통, 그 분류 작업이 지닌 신학적 무게를 차례로 설명한다. 이 배경 위에서 예수님의 대답—“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이 단순한 윤리 강령이 아니라 613개 분류 작업 전체를 한 문장으로 해체하는 선언이 된다.
마가복음 5편 설교(2023년 4월)에서는 나병환자의 방문 장면을 다룬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나병환자들을 위한 예배는 있었을까요? 없었죠.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심지어 영적으로 철저한 고립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2020년대 코로나 격리 경험을 연결하며, 고대의 제의적 격리가 현대인의 경험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이 작법은 마가복음 밖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선지자들의 하나님” 시리즈 1편(2025년 9월)에서는 호세아서를 다루며 그 예언자가 아내를 실제로 되찾아야 했던 문화적·법적 맥락을 살핀다. “인생학교” 4편(2025년 11월)에서는 고대와 현대 사회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의 역전—과거에는 죽음이 일상 대화였고 성이 금기였다면, 지금은 반대—을 학술 자료와 함께 제시한다.
역사적 배경이 이 정도로 일관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이정규 목사에게 본문의 역사적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곧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배경 설명은 논증의 서론이면서 동시에 청중이 성경 세계에 발을 들여놓도록 이끄는 통로 역할을 한다.
강단 위의 서재 — 저자 직접 인용
이정규 목사는 개혁신학 전통의 저자들을 설교 안에서 직접 인용한다. 인용은 출처를 밝히고, 말을 길게 옮기며, 그 말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5편의 자막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찰스 스펄전이다. 5편에 걸쳐 서로 다른 주제로 인용된다. 마가복음 14편(2023년 6월)에서는 스펄전의 조언—“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도하고 자세요”—을 폭풍 속 제자들의 두려움을 다루는 설교에서 가져온다. 마가복음 23편(2024년 5월)에서는 스펄전이 설교자들에게 했던 경고—“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설교하지 말라,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를 인용해 죄책감과 자기 의의 관계를 논한다. 마가복음 27편(2024년 7월)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의 행위 중 최고의 것은, 십자가에 머무르신 것”이라는 스펄전의 말로 십자가의 의미를 정리한다. “선지자들의 하나님” 2편(2025년 9월)에서는 스펄전의 설교문 제목 “A Precious Drop of Honey”를 본인이 매일 새벽에 읽었다는 고백과 함께 소개하고, 4편에서는 스펄전이 구원의 확신을 배로 비유한 이야기를 구원론 논증에 끌어온다.
C.S. 루이스는 3편에서 인용된다. 마가복음 14편에서는 복음서를 신화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루이스가 제시한 두 가지 반론—기록 시기의 근접성과 신화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변증 근거로 사용한다. 마가복음 39편(2026년 4월)에서는 루이스의 만년 성찰—변증만 계속하면 기독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순종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을 하나님을 피고석에 세우는 현대인의 태도를 비판하는 데 쓴다. 은혜의 공동체 4편(2026년 3월)에서는 루이스의 찬양론—“언제나 찬양은 우리의 내적 건강이 밖으로 표출되는 소리”—을 예배론의 논증 중심에 놓는다.
팀 켈러는 4편에서 등장하는데, 주로 목회 현장의 일화를 통해서다. 켈러가 상담하던 자매의 이야기(Mark#19), 설교자가 설교로 의롭게 되려는 함정(Mark#23), 장로 후보를 세우는 회의에서 보여준 판단 기준(은혜공동체#1), 뉴욕 911 직후 교회 출석 폭증과 그 의미(인생학교#4)가 각각 다른 설교에서 다른 신학적 논점을 뒷받침하는 데 쓰인다. 마르틴 루터는 직업 소명론(인생학교#1)과 저항 정신(Mark#46)에서 인용되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겟세마네 고통의 신학적 의미(Mark#49)와 부활 몸의 감각(은혜공동체#6)에서 등장한다.
이 인용들의 공통점은 수사적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 인용은 자신이 세우려는 논점의 언어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배치되고, 인용이 끝나면 그 말이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풀어내는 작업이 따라온다.
스크린에서 강단으로 — 영화와 드라마 예화
25편 중 11편에서 영화가, 6편에서 드라마가 예화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대중문화 참조들을 분석해 보면, 단순한 흥미 유발용 삽화가 아닌 논증의 내부 구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마가복음 23편(2024년 5월)과 46편(2026년 6월), 두 편에 걸쳐 등장하는 매트릭스의 배신자 사이퍼가 대표적이다. 46편에서 그는 사이퍼의 서사를 꽤 길게 전개한다. 진실을 알고 기계와 싸우는 전사가 됐지만, 환상 속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다 결국 스미스 요원과 거래하는 장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렇게 한 입 딱 집어 먹는데…” 그리고 이 예화를 마가복음의 “깨어 있으라” 명령과 연결한다. 진리를 알면서도 편안함을 위해 그 진리를 포기하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사이퍼의 이야기가 성경 본문보다 먼저 청중의 감각에 박아 놓는다.
“선지자들의 하나님” 1편(2025년 9월)에서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하나님과의 관계 오해를 설명하는 예화로 등장한다. “나의 아저씨처럼 대합니다. 가끔만 만납니다. 가끔만 기도합니다.” 가끔 용돈 주는 동네 아저씨가 아니라 신랑이라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고, 드라마 제목이 그 오해의 감각적 이름이 된다. 7편(2025년 10월)에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시크한 레지던트가 구더기가 붙은 노숙인의 썩은 발을 정성껏 치료하는 장면—이 더러움을 통과한 아름다움, 즉 복음의 역설을 보여주는 예화로 쓰인다.
마가복음 27편(2024년 7월)에서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끌어들인다.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는 강해지고 강해져서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현대인이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영웅 서사이며, 예수님은 그 기대를 뒤집는다는 논증을 전개한다. 인생학교 2편(2025년 11월)에서는 1980년대 영화 “아버지의 황혼”—일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버는 게 나를 남자처럼 느끼게 만들어 줬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현대인의 일과 정체성 문제를 논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 예화들이 흥미로운 것은, 매번 전혀 다른 작품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특정 작품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경우는 매트릭스뿐이고, 나머지는 각 설교의 논점에 맞는 작품을 그때그때 선택하는 방식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관찰이 설교 작업의 배경 층으로 깔려 있는 셈이다.
“그죠?” “보십시오” — 설교자의 언어 리듬
이정규 목사의 설교를 읽으면 몇 가지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25편 전체에서 “보십시오”가 288회, “생각해 보십시오”가 78회, “들어보십시오”가 56회, “그렇죠?“가 134회, “그죠?“가 139회 등장한다. 이 표현들은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설교자가 논증의 한 단계를 마치고 청중에게 그것을 직접 점검하도록 초대하는 신호다.
자기노출도 일관된 패턴이다. 마가복음 34편(2026년 1월)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여러분들도 모르고 가족들도 모르는 저만의 어둠이 있습니다.” 설교 뒤에 찾아와 “그게 뭔데요, 저한테만 가르쳐 주세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꼭 있다고 덧붙이며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선지자들의 하나님” 4편(2025년 9월)에서는 쓸개 수술을 받을 때, 아버지가 입원할 때 “내가 어떤 짓을 했기 때문이야”라고 스스로를 의심했다는 고백을 한다. 마가복음 23편(2024년 5월)에서는 “저도 설교를 통해서 의롭게 되려고 하잖아요”라며 자신도 이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한다. 마가복음 46편(2026년 6월)에서는 “저라는 인간을 감당하기에는 이코노미석은 너무 작아요”라며 웃음과 함께 자신의 체격을 소재로 삼는다.
이 자기노출들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것이 계산된 겸손 수사가 아니라 논증의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놓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처럼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문맥에서 자기 이야기를 먼저 내놓는 방식이다. 그 결과 설교자와 청중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논점이 추상적인 신학 강의가 아닌 공통의 인간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회중의 반응도 설교 텍스트 안에 녹아 있다. “[웃음]” “[한숨]” “[헉 소리]“가 자막에 표기되는 지점들이 있다. 개혁주의 설교자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형태이면서도 청중의 웃음과 탄성을 예측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공존한다.
“첫 번째, 두 번째” — 흐름 속의 대지
25편 중 23편에서 “첫 번째/두 번째”가 두 번 이상 등장한다. 이는 이정규 목사의 설교가 명시적 대지 구조를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가복음 43편(2026년 5월)에서는 설교 시작 직후 구조를 선언한다. “첫 번째로는 이 질문 자체를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의 대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그런데 이 구조는 경직된 3대지 설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각 대지의 분량이 균형을 맞추지 않고, 때로는 두 개로 끝나고 때로는 한 개의 논점을 끝없이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변형된다. 마가복음 시리즈에서도, 선지자들 시리즈에서도, 인생학교에서도, 은혜의 공동체에서도 이 대지 구조가 나타나지만, 어느 편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세 개를 정확히 균형 잡아 마무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작법의 핵심은 명시적 안내다. 청중에게 지금 어느 단계를 듣고 있는지 알려주면서도, 그 단계 안에서의 이동 속도와 깊이는 본문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서기관 배경 설명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 있고, 영화 예화를 길게 전개하는 편이 있고, 저자 인용에서 시작해 현재 삶으로 직접 연결하는 편이 있다.
본문이 바뀌어도 붙어 있는 작법
복음서 내러티브든, 예언서 시가든, 서신서든, 삶의 주제를 다루는 설교든 본문의 종류가 달라져도 이정규 목사의 작법은 그대로 유지된다. 역사적 배경 재현, 저자 직접 인용, 영화·드라마 예화, “그죠?” “보십시오”의 리듬, 자기노출, 명시적 대지 구조가 어느 본문에서나 반복된다. 설교 작법은 본문의 형식에 종속되지 않고 설교자의 사유 방식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증의 자리 — 회의와 질문 앞에 서는 설교
이정규 목사가 밝힌 목회의 지향점 중 하나로 변증적 설교가 언급된 적이 있다. 한 인터뷰(리폼드지알, reformedjr.com)에서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강해적 설교·변증적 설교를 사역의 축으로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 다만 해당 페이지는 접속 오류로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이 글에서는 보도된 내용으로만 소개한다.
실제 설교 본문에서는 이 변증적 태도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마가복음 14편(2023년 6월)에서는 복음서를 신화로 치부하는 회의론에 정면으로 답한다. C.S. 루이스가 제시한 두 가지 반론 — 복음서 기록 시기가 신화가 형성되기에는 너무 가깝다는 점, 신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점 — 을 그대로 가져와 청중에게 제시하는 방식이다. 마가복음 39편(2026년 4월)에서는 반대 방향에서 접근한다. 루이스의 만년 성찰 — “변증만 계속하면 기독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순종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을 빌려 하나님을 논리의 피고석에 세우려는 현대인의 태도 자체를 문제 삼는다. 회의에 근거로 답하되, 답 자체가 신앙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균형이 두 설교 사이에 함께 놓여 있다.
디디모랩 자료집을 이정규 목사의 방식과 연결해 보면, 특히 역사적 배경 연구에서 시너지가 생긴다. 서기관 직업 분류, 나병환자 의례적 격리, 1세기 유대 랍비 아멘 관습 같은 내용은 설교 중에 길게 설명하기 어려운 연구 지점들이다. 자료집의 절별 주석과 역사적 배경 섹션은 설교자가 이 내용을 미리 확인하고 핵심만 골라 전달할 수 있게 해 준다. 저자 인용도 마찬가지다. 스펄전·루이스·에드워즈의 어떤 말이 어떤 본문에 어울리는지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자료집의 역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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