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앗수르 왕의 자랑 기록에도, 예루살렘 함락은 끝내 쓰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18:13은 간결하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그리고 19장은 예상 밖의 결말을 전한다. 185,000명의 앗수르군이 하룻밤 사이에 쓰러졌고, 산헤립은 예루살렘 함락 없이 니느웨로 돌아갔다.
이 기록을 비판적으로 읽는 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제기한 의문이 있었다. 세계 최강 제국의 군대가 그토록 극적으로 물러섰다면, 앗수르 측 기록에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 1830년 이라크 니느웨 유적에서 발굴된 육각형 점토 기둥 하나가 그 물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을 제공한다.
테일러 프리즘 · 기원전 691년경 · 대영박물관 소장(BM 91032) · Public Domain. 산헤립이 기원전 701년 유다 원정을 포함한 자신의 군사 전과를 새긴 앗수르 왕실 연대기 기둥이다.
산헤립이 자랑한 것들
테일러 프리즘(Taylor Prism, 대영박물관 BM 91032)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기원전 691년경 제작한 왕실 연대기다. 여섯 면에 기원전 701년 3차 원정을 포함한 여러 군사 작전의 전과가 새겨져 있다. 이 기둥의 이름은 1830년 니느웨에서 이것을 획득한 영국 외교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대령에서 유래했다.
제임스 프리처드(James B. Pritchard)가 편집한 Ancient Near Eastern Texts(ANET, 3판, Princeton, 1969)는 히스기야 원정에 관한 산헤립의 기록을 포함해 이 프리즘 본문을 상세히 수록한다. 산헤립은 유다 원정에서 46개의 요새화된 도시를 점령하고, 20만 명 이상의 포로를 끌어갔으며, 막대한 전리품을 약탈했다고 기록한다. 히스기야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히스기야)를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그의 왕성 예루살렘 안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이 없다.
유의미한 침묵
산헤립 프리즘에서 정복한 도시들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기록된다. 포위 → 함락 → 약탈 → 주민 추방·포로로 끌어가기 → 도시 파괴. 이 패턴이 46개 도시에 반복된다. 그런데 예루살렘 항목에서는 포위 기록까지는 있지만 함락·약탈·추방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새장 속에 가두었다고 쓴 다음, 히스기야가 엄청난 공물을 보내왔다고 기록하며 항목을 마친다.
역사학에서 이것을 “유의미한 침묵”(argumentum ex silentio)이라 부른다. 자랑할 만한 것을 자랑하지 않을 때, 그 침묵 자체가 정보가 된다. 브리바드 차일즈(Brevard S. Childs)는 Isaiah and the Assyrian Crisis(1967)에서 이 침묵을 앗수르 측 기록과 성경 기록을 교차 검토하는 맥락에서 분석하며, 예루살렘이 실제로 함락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앗수르 자체 자료가 지지한다고 논증한다.
”증명”이라는 말의 함정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단순화가 있다. “테일러 프리즘이 성경을 증명한다”는 표현이 종종 설교와 성경 강의에서 쓰이지만, 그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테일러 프리즘이 확인하는 것은 다음이다. 첫째, 기원전 701년 앗수르의 유다 원정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둘째, 예루살렘은 앗수르의 공격 대상이었다. 셋째, 산헤립의 기록에는 예루살렘 함락 장면이 없다.
이 세 번째 사실은 열왕기하 19:35-36의 결말, 즉 앗수르군의 갑작스러운 철수와 히스기야의 생존과 방향이 일치한다. 하지만 “방향이 일치한다”와 “성경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확인한다”는 다른 말이다. 185,000명의 죽음과 같은 기적적 사건의 세부 사항은 앗수르 프리즘에도, 현존하는 어떤 외부 자료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역사학의 역할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기록이 놓인 역사적 맥락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적의 기록이 남긴 것
그럼에도 테일러 프리즘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남긴 기록이 아니다. 그 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록한 연대기다. 앗수르는 침략자이고, 성공을 과장하고 실패를 은폐할 모든 동기를 가진 측이었다. 그 기록에서도 예루살렘 함락은 쓰이지 않았다.
자신의 승리를 최대한 과장하려는 왕의 공식 기록에 남겨진 빈칸 하나가, 성경이 전하는 결말의 역사적 가능성을 높이는 역설적 증거가 된다. 침묵은 때로 가장 솔직한 증언이다.
참고 자료
- James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3rd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pp. 287–288
- Brevard S. Childs, Isaiah and the Assyrian Crisis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Second Series 3; SCM Press, 1967)
- 열왕기하 18–19장, 마소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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