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아들이 없으면 종을 상속자로" — 누지 점토판이 증명한 줄 알았던 족장 시대의 진실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이라크 키르쿠크 인근 요르간 테페(고대 누지, Nuzi) 유적에서 미국동양연구학회(ASOR)와 하버드대 발굴팀이 후르리인 가정 문서고를 발굴했다. 에드워드 키에라(Edward Chiera)가 발굴을 시작했고, 1928년부터는 로버트 파이퍼(Robert Pfeiffer)가 이끄는 하버드-바그다드 스쿨이 이어받았다. 그 결과 나온 약 5,000점의 설형문자 점토판은 입양·혼인·상속 같은 BC 15세기 가정법 문서였다. 그런데 이 문서들이 창세기의 아브라함·야곱 이야기와 놀랄 만큼 비슷한 관행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세기 중반 성서학계를 뒤흔들었다.
성경과 닮은 세 가지 관습
가장 널리 인용된 것은 무자녀 부부의 입양 관행이다. 누지 계약서에는 아들이 없는 부부가 종을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세우되, 이후 친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이 우선 상속권을 갖는다는 조항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이것이 창세기 15장 2-3절에서 아브라함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내 집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말하는 대목과 유사하다고 봤다.
두 번째는 씨받이 출산 관습이다. 누지 혼인계약서 중에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한다는 조항이 명시된 사례가 있다. 이는 창세기 16장 하갈과 창세기 30장 빌하·실바 이야기와 나란히 놓인다.
세 번째는 가정 수호신상(드라빔)이다. 누지의 한 입양 문서는 가정신상을 소유한 이가 상속의 주도권과 가장 지위를 갖는다는 정황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창세기 31장 19절,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집을 떠나며 드라빔을 훔치는 장면과 연결됐다.
이 유사성을 학계에 각인시킨 이는 펜실베이니아대의 에프라임 스파이저(E. A. Speiser)였다. 그는 1930년 논문 “New Kirkuk Documents Relating to Family Laws”(AASOR 10)에서 누지 문서를 처음 소개했고, 1964년 앵커바이블 『창세기』(Anchor Bible Genesis, Doubleday) 주석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창세기 해석에 적용했다. 사이러스 고든(Cyrus Gordon) 역시 야곱-라반 이야기가 “누지 문서의 빛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고 단언하며 이 흐름에 힘을 실었다.
누지(요르간 테페) 출토 아카드어 점토판 — 토지 점유권을 둘러싼 재판 기록. BC 15~14세기 · 시카고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박물관(오리엔탈 인스티튜트) 소장 · CC0 / Public Domain.
반세기 뒤 — 학계가 스스로 되돌린 확신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1974년 토머스 L. 톰슨(Thomas L. Thompson)은 『족장 내러티브의 역사성: 역사적 아브라함을 찾아서』(The 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Abraham, Walter de Gruyter, 1974)에서 누지 자료를 다시 검토한 뒤, 스파이저가 제시한 것처럼 이 관습들이 BC 2000년경 “족장 시대”라는 좁은 시기로 연대를 좁혀 주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해 존 반 세터스(John Van Seters)도 『역사와 전승 속의 아브라함』(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Yale University Press, 1975)에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이것이다 — 문제의 관습들은 누지에서만이 아니라 고대 근동 전역에서, 그것도 수백 년에 걸친 훨씬 넓은 시대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즉 “이런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러므로 창세기가 BC 2000년경의 산물이다”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드라빔 사례는 특히 크게 흔들렸다. 반 세터스는 가정신상 소유가 상속권 증표였다는 전통적 해석 자체가 누지 문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모셰 그린버그(Moshe Greenberg)는 라헬의 드라빔 절도를 누지 관습이 아니라 요세푸스가 전하는 유사한 이야기로 설명하는 편이 낫다고 제안했다. 무자녀 입양 관행 역시 누지 밖 다른 고대 근동 문서에서도 발견되면서, “누지=족장 시대의 유일한 증거”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이 재평가가 누지 문서 자체의 가치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마틴 셀만(Martin J. Selman)은 1977년 Themelios 3.1호 논문 “Comparative Methods and the Patriarchal Narratives”에서, 문제는 비교 자료 자체가 아니라 방법론이었다고 정리한다. 개별 문서를 맥락 없이 떼어내 특정 연대에 못 박으려 한 것이 무리였을 뿐, 누지 문서는 여전히 창세기 족장 내러티브가 그려 내는 세계가 실제 고대 근동의 법·관습 세계와 낯설지 않다는 일반적 배경 증거로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다시 읽기
누지 문서는 한때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고고학적 증명”으로 소개됐다.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 대신 이 사례는 성서고고학사 자체가 주는 교훈을 보여준다 — 한 세대의 확신에 찬 결론이 다음 세대의 정밀한 재검토 앞에서 조정되는 과정도 학문의 정상적인 작동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오래된 설교 자료나 대중서에는 “누지 문서가 족장 시대를 증명한다”는 1960년대식 설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이해는 그보다 더 흥미롭다 — 창세기의 세계가 고대 근동의 실제 법 관습과 공명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지만, 그것이 특정 세기를 못박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 자료
- E. A. Speiser, “New Kirkuk Documents Relating to Family Laws,” Annual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0 (1930)
- E. A. Speiser, Genesis, Anchor Bible (Doubleday, 1964)
- Thomas L. Thompson, The 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Abraham (Walter de Gruyter, 1974)
- John Van Seters, Abraham in History and Tradition (Yale University Press, 1975)
- Martin J. Selman, “Comparative Methods and the Patriarchal Narratives,” Themelios 3.1 (September 1977):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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