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히스기야의 터널, 그리고 그 속에 새겨진 목소리
열왕기하 20:20은 히스기야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의 남은 사적과 그의 용사된 일과 또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중으로 인도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단 한 문장이다. 역대하 32:30은 같은 공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한다. “히스기야가 또 기혼 샘의 윗 근원을 막고 그 아래로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이끌었으니.” 그 공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1880년 예루살렘의 어느 소년이 터널 벽에서 발견한 6행짜리 비문이 2,700년의 세월을 건너 전해 준다.
실로암 비문의 19세기 탁본 복제본 · Public Domain. 1880년 터널 벽면에서 발견됐고 원본은 1890년 이스탄불로 반출됐다. 이 탁본은 반출 전 현장에서 제작된 초기 기록이다.
성벽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다
기원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 원정에 나섰다. 열왕기하 18–19장이 자세히 기록한 그 전쟁이다. 예루살렘을 포위당하기 전에 히스기야가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문제는 물이었다.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인 기혼 샘(Gihon Spring)은 성벽 바깥 기드론 골짜기 동쪽에 있었다. 성이 포위되면 적군이 수원을 장악하거나 차단할 수 있었다.
히스기야의 해법은 지하 터널이었다. 기혼 샘에서 성벽 안쪽의 실로암 못(Pool of Siloam)까지 바위를 뚫어 물길을 내는 공사였다. 완성된 터널의 길이는 약 533미터, 높이는 평균 2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직선 거리로 290미터 남짓한 구간에 S자 곡선을 이루며 뚫린 이 터널은, 현대 토목 공학으로 재현하더라도 정밀한 측량이 요구되는 수준의 공사다.
”뚫렸다! 곡괭이들이 맞닿았다”
1880년, 터널 내부를 탐험하던 한 소년이 입구에서 6미터쯤 되는 지점의 벽면에서 히브리어 글씨를 발견했다. 비문의 앞부분은 손상됐지만, 남아 있는 후반부는 공사 완공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비문이 전하는 내용은 이렇다. 반대 방향에서 각각 파 들어오던 두 작업조가 어느 순간 서로의 곡괭이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 방향을 맞추며 나아가다가 마침내 두 팀이 중간에서 만났다. 비문의 마지막 구절은 그 순간의 흥분을 담는다: “뚫렸다! 곡괭이들이 맞닿았다.” 이어 비문은 물이 샘에서 못까지 1,200큐빗(약 533미터)을 흘렀다고 기록한다.
가리 렌즈버그(Gary A. Rendsburg)와 윌리엄 슈니데빈드(William M. Schniedewind)는 2010년 Israel Exploration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서 비문의 언어적 특징을 분석했다. 그들은 비문이 기원전 8세기 후반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사용된 히브리어의 언어적·문자론적 특징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고 결론지었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역시 같은 결론을 지지한다. 도브-알솝(Dobbs-Allsopp)과 공동 저자들이 편집한 Hebrew Inscriptions(Yale, 2005)은 비문 전문을 수록하고 주요 히브리어 고비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비문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주목할 점이 있다. 비문은 히스기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왕이 아니라 작업자들의 목소리가 주어다. 왕의 명으로 이루어진 공사이지만, 그 완공의 순간을 기록한 사람들은 바위를 깎던 노동자들이었다.
성경의 기록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열왕기하 20:20과 역대하 32:30은 터널 공사를 히스기야 행정의 치적으로 요약하지만, 두 구절 모두 공사의 기술적 세부 사항이나 현장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비문이 보완하는 것은 바로 이 공백이다. 성경이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중으로 인도했다”고 한 줄로 전하는 그 공사의 현장 목소리가, 벽에 새겨진 히브리어로 남아 있다.
단 한 줄의 기록이 건넌 2,700년
비문 원본은 1890년 오스만 당국이 돌판을 터널 벽에서 절단해 반출했다. 이후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으로 이전돼 지금도 그곳에 보관돼 있다. 예루살렘에는 복제본이 전시돼 있다.
고고학이 성경을 “증명”한다는 표현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 비문이 확인하는 것은 기원전 8세기 예루살렘에 복잡한 수도 공사를 계획하고 실행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집단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작업자들이 공사 완공의 흥분을 바위에 새길 만큼 그 순간을 의미 있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열왕기하가 단 한 줄로 넘긴 그 공사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 증언하는 물증이, 2,700년 뒤 한 소년의 탐험으로 빛을 보았다.
참고 자료
- F. W. Dobbs-Allsopp, J. J. M. Roberts, C. L. Seow, and R. E. Whitaker, Hebrew Inscriptions: Texts from the Biblical Period of the Monarchy with Concordance (Yale University Press, 2005)
- Gary A. Rendsburg and William M. Schniedewind, “The Siloam Tunnel Inscription: Historical and Linguistic Perspectives,” Israel Exploration Journal 60.2 (2010): 188–203
- 열왕기하 20:20; 역대하 32:30, 마소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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