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72명이 72일 만에 완벽히 일치시켰다? — 칠십인역 탄생 전설과 실제 역사
72명의 학자가 서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 각자 방에 격리된 채 성경을 번역했는데, 72일 뒤 그 결과물을 맞춰보니 단어 하나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72명 모두가. 지금 들으면 명백한 전설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그리스어 구약성경의 기원을 설명하는 “표준 서사”로 통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그 번역본을 부르는 이름 자체에 흔적을 남겼다. 바로 “칠십인역(Septuagint)“이다.
아리스테아스 편지가 전하는 이야기
이 전설의 출처는 “아리스테아스 편지”(Letter of Aristeas)라는 문헌이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재위 기원전 285~246년)의 궁정 관리 아리스테아스가 자기 형제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인물이 쓴 것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익명의 유대인 저자가 쓴 위작(pseudepigraphon)이라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브루스 메츠거(Bruce M. Metzger)는 『외경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Apocrypha, Oxford University Press, 1957)에서, 이 저자가 자신이 자처한 인물일 수 없으며 히브리 성경의 권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쓴 허구적 서사라는 것이 다수 학자의 결론이라고 정리한다.
편지가 전하는 줄거리는 이렇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위해 히브리 율법서(토라)의 그리스어 역본을 갖추고 싶었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도서관 책임자 데메트리오스의 건의로 예루살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번역가 파견을 요청한다. 엘르아살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총 72명의 학자를 뽑아 보낸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 앞바다 파로스 섬에 격리되어 각자 독립적으로 번역에 착수했고, 72일 만에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대조해보니 72명이 내놓은 번역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전설이 필요했을까
이 이야기는 후대로 갈수록 더 극적으로 각색됐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은 『모세의 생애』(De Vita Mosis) 2권에서 이 사건을 아예 신적 영감에 의한 기적으로 묘사한다 — 학자들이 서로 다른 방에 갇혀 있었는데도 마치 보이지 않는 프롬프터가 불러주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단어, 똑같은 문장을 써냈다는 것이다. 요세푸스(Josephus)도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12권에서 아리스테아스의 서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 전하며 이 이야기에 더 큰 권위를 실어줬다.
이 전설이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이교도 왕이 먼저 나서서 유대 경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번역을 명했다는 설정, 그리고 72명이 개별적으로 작업했는데도 신적으로 일치했다는 설정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 이 그리스어 역본은 원문 히브리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카렌 조베스(Karen H. Jobes)와 모이제스 실바(Moisés Silva)는 『칠십인역 입문』(Invitation to the Septuagint, 2nd ed., Baker Academic, 2015)에서, 이 편지가 전설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당대 알렉산드리아 유대 공동체가 그리스어 성경에 부여하고자 했던 권위와 정당성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한다.
코덱스 바티카누스(Codex Vaticanus, Vat.gr.1209)의 시편 7편 페이지, 4세기 · 바티칸 도서관 소장 · Public Domain.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칠십인역 완본 사본 가운데 하나로, 아리스테아스 편지가 그리는 “72일의 기적”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필사·전승된 실제 칠십인역 본문의 모습을 보여준다.
’칠십인역’이라는 이름 자체가 전설의 흔적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 그리스어 구약성경을 부르는 이름 자체가 이 전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라틴어 “인테르프레타티오 셉투아긴타 비로룸(interpretatio septuaginta virorum)”, 즉 “칠십인의 번역”이라는 표현에서 “Septuagint”라는 이름과 약자 “LXX”(로마 숫자 70)가 나왔다. 그런데 아리스테아스 편지에 등장하는 번역가는 정확히 72명이다. 72명을 편의상 반올림해서 “70인”이라 부르게 된 것이 이 이름의 유래다. 즉 오늘날 신학교 강의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칠십인역”이라는 명칭 자체가, 실은 검증되지 않은 전설의 숫자를 반올림한 흔적이다.
실제 역사: 단일 사건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작업
그렇다면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에마뉘엘 토브(Emanuel Tov)는 『히브리 성경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Fortress Press, 1992)에서 칠십인역 연구의 핵심 결론들을 정리한다 — 오경(토라)이 기원전 3세기 초·중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먼저 번역됐다는 점은 언어학적 증거로 뒷받침되지만, 이것이 72명이 72일 만에 이뤄낸 단일 사건이라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조베스와 실바 역시 오경조차 한 사람이 아니라 최소 여러 명의 번역자가 나누어 작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탈무드 소논서 소페림(Massekhet Soferim 1:7-8)은 아예 다른 전승으로 5명의 번역자를 언급한다 — 참고로 바빌로니아 탈무드 본편(b. Megillah 9a-b)은 세부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72인 전승 쪽을 전한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나머지 책들에 있다. 오경 이후의 예언서·성문서들은 단번에 번역된 것이 아니라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번역자들이 개별적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표준적 재구성이다. 그 증거는 문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어떤 책은 히브리어 어순까지 그대로 따르는 극도로 직역적인 방식으로, 어떤 책은 상당히 자유로운 의역으로 옮겨져 있다. 72명이 한자리에서 72일 만에 만들어낸 균질한 결과물이라면 나올 수 없는 편차다. 칠십인역은 기적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무명의 번역자들이 남긴 누적된 노동의 산물이다.
참고 자료
- R.J.H. Shutt, trans., “Letter of Aristeas,” in James H. Charlesworth, ed.,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2 (Garden City, NY: Doubleday, 1985)
- Bruce M. Metzger, An Introduction to the Apocryph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7)
- Karen H. Jobes and Moisés Silva, Invitation to the Septuagint, 2nd e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5)
- Emanuel Tov, “The Septuagint,” in 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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