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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골리앗의 키, 성경 사본마다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누구나 안다. 어린 목동이 거대한 장수를 물리치는 이 이야기에서 골리앗의 키는 그 위협감을 측정하는 첫 번째 단서다. 그런데 사무엘상 17:4에 적힌 골리앗의 키, 어떤 사본을 펼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성경 본문은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낯선 사실이다. 이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두 본문, 두 수치

우리가 익숙한 개역개정 번역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을 따른다. 이 본문은 사무엘상 17:4를 “골리앗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기록한다. 고대 도량형에서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약 44-45cm다. 여기에 한 뼘(약 23cm)을 더하면 골리앗의 키는 대략 2.9~3m가 된다. 약 9피트 9인치에 해당하는 이 수치는 현대의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크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Septuagint, LXX)은 다른 수치를 전한다. 칠십인역의 골리앗은 “네 규빗 한 뼘”이다. 계산하면 약 2m, 약 6피트 6인치에 해당한다. 이 키는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 현대 농구 선수 수준이다 — 맛소라 본문의 약 3m와는 두 규빗, 약 90cm 차이가 난다.

더 주목할 것은 1947년 사해 인근 쿰란 동굴에서 발굴된 사해사본이다. 사무엘서 사본인 4QSamᵃ(쿰란 제4동굴 사무엘 사본 갑)은 현존하는 사무엘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이 사본 역시 골리앗의 키를 “네 규빗 한 뼘”으로 기록하며 칠십인역과 같은 수치를 전한다.

1QIsa, 대 이사야 두루마리(사해사본), 기원전 2세기경, 이스라엘 박물관 소장 1QIsa — 대 이사야 두루마리, 사해사본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두루마리 · 기원전 2세기경 · 이스라엘 박물관 · CC BY 4.0(레온 레비 사해사본 디지털 라이브러리). 골리앗 키의 대안 수치를 전하는 4QSamᵃ도 같은 쿰란 유적지에서 발굴된 사해사본이다. 이미지에 보이는 취소 표시들은 고대 필사자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작업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문(異文)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준다.

이문(異文)은 어떻게 생겼을까

왜 두 가지 수치가 존재하는가?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논의한다.

첫째, 필사 과정에서 수치가 달라졌을 가능성이다. J. 다니엘 헤이스는 2005년 논문에서 7절의 “육백”이 4절의 수치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는 오류 발생 경위에 대한 가설이며 직접 관찰된 사건은 아니다.

둘째, 두 독립 전통의 공존 가능성이다. 칠십인역과 4QSamᵃ이 같은 수치를 전하는 것은 이 두 자료가 공통의 히브리어 텍스트 전통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에마누엘 토브(Emanuel Tov)의 『히브리 성경의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3rd ed., Fortress Press, 2012)은 사무엘서가 맛소라 본문과 칠십인역 사이에 상당한 텍스트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 책이라는 사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 경우 두 수치는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한 두 다른 텍스트 계통을 대변한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수치가 원문에 가까운지는 증거를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J. 다니엘 헤이스는 2005년 논문에서 “네 규빗 한 뼘”을 더 유력한 원문으로 제안한다. 2007년에는 클라이드 빌링턴의 반론에 응답했다. 그를 “여섯 규빗”의 옹호자로 소개하는 것은 논문의 결론을 거꾸로 전달하는 것이다. 2005년 논문 결론.

짧은 수치를 선호하는 논증이 있다고 해서 실제 골리앗의 신장이 측정된 것은 아니다. 사본에 기록된 수치, 어느 독법이 더 이른지에 대한 판단, 규빗을 현대 단위로 환산하는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이 차이가 이야기의 핵심을 바꾸는가

골리앗이 3m든 2m든, 사무엘상의 이야기가 전하는 신학적 핵심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수치로도 골리앗은 소년 다윗 앞에서 압도적인 장수다. 사무엘상 17장이 강조하는 것은 골리앗의 키가 아니라,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17:45) 나갔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그러나 이 사본 차이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성경 본문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필사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 손으로 옮겨 적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수치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사실은 — 성경 전수의 역사가 얼마나 인간적인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준다. 칠십인역과 요세푸스의 다른 수치는 사해사본 발견 전에도 알려져 있었다. 사해사본은 여기에 오래된 히브리어 증언을 더했다. 이것이 본문비평학이 하는 일이고, 이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방식이다.

회화가 기억한 골리앗, 사본이 기록한 골리앗

페셀리노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1445–1455년경)는 한 화면에 다윗의 여러 행동을 이어 놓는다.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이 작품과 짝 그림이 혼인을 기념하는 실내 장식이었을 것으로 설명하며, 메디치 가문과의 관련성은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성경의 전투가 르네상스 가정의 공간에서 다시 읽힌 사례다. 소장처 해설.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자로 잰 키보다 목동과 무장한 적장의 대비다. 따라서 회화의 거대한 골리앗을 사본 수치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반대로 사본에서 수치를 확인했다고 해서 그림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쪽은 전해진 문장을, 다른 쪽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했는지를 묻는다. 두 자료를 함께 보면 익숙한 골리앗의 모습과 본문의 전승을 구분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P. Kyle McCarter Jr., I Samuel: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Notes and Commentary (Anchor Bible 8; Doubleday, 1980)
  • J. Daniel Hays, “Reconsidering the Height of Goliath,”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8.4 (2005): 701–714
  • J. Daniel Hays, “The Height of Goliath: A Response to Clyde Billingt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0.3 (2007): 509–516
  • Emanuel Tov, 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3rd ed. (Fortress Pres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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