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분석

문학과 말씀 사이: 김기석 목사의 시적·묵상적 설교

설교자의 초상 — 목사이자 문학평론가

교보문고와 알라딘 같은 서지 데이터베이스의 저자 직함란에 “문학평론가”라는 표기가 병기되어 있는 설교자. 이것은 데이터 오류가 아니다.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1997~2024 담임)가 수십 년에 걸쳐 스스로 만들어온 이중 정체성의 흔적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화여고 교목, 육군 군목을 거쳐 청파교회의 전도사와 부담임목사를 역임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청파감리교회는 1908년 창립된 유서 깊은 역사 교회다. 그가 담임으로 취임한 것이 1997년, 그리고 2024년 4월 7일 서울연회에서 공식 은퇴했다. 마지막 설교의 제목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막 1:14-15). 43년 사역의 마침표를 또 다른 출발의 언어로 찍은 이 선택은, 그의 설교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감수성을 암시한다.

은퇴 이후에도 감리교단 도서출판 KMC 주관 ‘설교자 글쓰기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며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설교단에서 내려왔지만 언어와의 관계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설교 구조: 시적·묵상적 내러티브

김기석 목사의 설교는 전통적인 3대지 구조나 교리적 강해보다 묵상적 내러티브에 가깝다. 성경 본문을 도착지로 삼기보다 출발점으로 삼아 사유가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그 자신이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글쓰기 자체가 나를 끌고 가는 방향이 생긴다. 시작할 때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이 발언은 단순한 창작론적 고백이 아니라 설교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논거로 뒷받침하는 연역적 전개 대신, 청중을 함께 사유의 길로 이끌어 그 끝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귀납적·개방적 구조다.

결말도 이 논리를 따른다. 선명한 교훈을 압인하기보다 여운과 질문을 남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설교학자 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은 이 특성을 이렇게 포착했다. “성서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을 찬탄한다. 독자들에게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언어 의식: ‘창문’으로서의 말

김기석 목사에게 언어는 부수적 도구가 아니라 신학적 과제 자체다.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창문. 내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언어의 창문이 다양할수록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롭게 다가온다.”

이 의식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낯선 우리말 단어를 수첩에 메모해두고 반복 학습하는 습관이 그것이다. 언어를 갈고닦는 행위가 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일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이 언어 철학은 성경 해석 방법론으로도 이어진다. 경향신문 인터뷰(2024)에서 그는 성경을 시인의 방법론으로 읽는다고 밝혔다.

“시인이 일상적 언어를 재배치함으로써 비일상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처럼, 성경도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을 잡아챈다.”

그리고 해석에 있어서도 단일한 의미의 고정보다 다원적 가능성을 강조한다.

“성경을 읽는 것은 언어화되지 않은 또 다른 경험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한일장신대 신학과 차정식 교수는 이러한 언어적 감수성의 결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성의 총기가 빛을 발하지만 지성에 머물지 않고, 감성의 심연을 서늘하게 우려내지만 감성에 갇히지 않으며, 영성의 날개를 활짝 펼치는 데까지 나아가 활공한다.”

인용의 폭: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지적 순례

김기석 목사의 설교에서 원어 분석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동서양 문화 자산 전체다. 실제 설교(“세 가지 반성”)에서 확인된 인용 출처만 해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자이나교의 아힘사(ahimsa) 개념,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생명 경외(Reverence for Life)”,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예언자 해석이 나란히 등장한다. 여기에 동아시아 고전과 현대 문학이 더해진다.

이 인용들의 기능은 성경 본문의 배경을 주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이 건드리는 인간 경험의 보편적 층위를 문학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다. 역사적 문맥은 그 자체로 주해적 목적보다 문학적 맥락으로 활용된다.

교보문고 공식 저자 소개는 이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시와 산문, 현대문학과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글쓰기로 신앙의 새로운 층들을 열어 보이되, 화려한 문학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삶의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

예언자 전통과 사회적 감수성

인문학적 내향성이 김기석 목사의 한쪽 면이라면, 예언자적 발언은 다른 한쪽이다. 광화문 촛불 집회 시기 그는 예언자 연속 설교를 진행했고, 이것이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예언자와 오늘의 시대정신』(2009, 한울)으로 출판됐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교회와 생태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어로 말했다.

“세상으로부터 한국 교회가 지탄받는 것은 욕망으로 집중되는 삶을 신앙생활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생태계 문제에 책임지지 않는 신앙은 진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설교 철학의 핵심 명제는 한 강연 제목에 압축되어 있다. “거룩의 본질은 타자의 고통 속에 들어가 함께하는 것.” 문학평론가 김응교(숙명여대 교수)는 이 예언자적 차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예언자적 담대함과 현실 교회의 피폐해진 정신에 대한 일깨움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힘에 끌린다.”

시적 묵상과 사회적 발언이 같은 설교자 안에 공존한다는 것은, 양자가 분리된 두 충동이 아님을 시사한다. 타자의 고통에 감응하는 감수성과 그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려는 충동이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일상 순례자의 영성

김기석 목사의 영성을 가장 잘 요약하는 표현 중 하나는 그의 묵상집 제목이기도 한 “일상 순례자”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산책으로 영감을 수집하는 생활 방식, 베란다의 호박이나 고추모 이야기를 설교 안으로 끌어오는 방식에서 이 감수성이 드러난다. 일상의 사소한 결에서 초월적 현실과의 접촉을 감지하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 그의 영성 훈련의 핵심이다.

이 감수성은 청중에게도 전달된다. 설교를 “일상에서 건져낸 시원한 냉수”라고 표현한 독자 평가, 설교 음성 파일을 들을 때 “은혜가 배가”된다는 반응은 그의 문어체가 구술성의 생동감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성은 그의 저서 목록에도 투영된다. 설교집 『말씀 등불 밝히고』(꽃자리, 2023), 43년 사역을 성찰한 『고백의 언어들』(복 있는 사람, 2024), 은퇴 후 첫 성경 주석적 에세이인 전도서 묵상 『지혜의 언어들』(복 있는 사람, 2025), 예언자 연속 설교집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한울, 2009)이 그 계보를 이룬다.

설교 공부에서 주목할 점

김기석 목사의 설교 방법에서 설교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언어 감각의 의도적 훈련. 낯선 단어를 수첩에 수집하는 습관은 설교언어의 어휘 폭을 넓히는 구체적 실천이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사유 자체이기도 하다. 언어를 갈고닦는 것은 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방형 구조의 선택. 결론을 미리 제시하는 연역적 구조 대신, 사유의 과정을 함께 걷는 개방적 내러티브는 청중을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동반자로 전환시킨다.

인용의 기능 재정의. 인용은 논거를 보강하기 위한 권위 제시가 아니라, 본문이 인간 경험의 어떤 층위를 건드리는지 드러내는 문학적 조명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생활 속 관찰. 설교 재료는 서재와 도서관만이 아니라 산책로와 베란다에도 있다. 일상에 대한 의도적 주목이 설교의 구체성을 만든다.

김기석 목사의 설교는 학문적 깊이, 문학적 상상력, 예언자적 감수성이 하나의 목소리 안에서 만나는 특이한 지점을 보여준다. 이는 어느 한 가지 기술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문학·일상 모두에 대한 오랜 주목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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