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분석

교회력을 따라 걷는 설교자 — 최주훈 목사의 예전적 설교

교회력과 함께 걷는 설교자

서울 중앙루터교회 담임 최주훈 목사는 2010년부터 이 교회를 이끌어 왔다. 그는 루터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루터 신학으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하다. 루터 교리문답과 95개 논제를 번역하고, 설교학·예배학 저서를 직접 써낸 그의 이력은 설교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의 설교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전적 설교(liturgical preaching)‘다. 이 개념이 낯설게 들린다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전적 설교’란 무엇인가

개신교 강단의 설교 본문은 대개 목사가 스스로 선택한다. 관심 있는 본문, 교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이 주일에 어울린다고 여기는 구절 — 이 모든 판단은 설교자 개인의 신학적 취향과 목회 감각에 달려 있다.

예전적 설교는 다른 출발점에 선다. ‘성서정과(Lectionary, 聖書定課)‘라 불리는 교회력 달력을 따라, 미리 지정된 본문들을 순서대로 읽는다. 에큐메니컬 교회들이 공통으로 채택한 ‘개정 공동 성서일과(RCL, Revised Common Lectionary)‘는 3년 주기로 구약·서신서·복음서 본문을 순환시키며, 전 세계 루터교·성공회·장로교·감리교 등 여러 교단의 강단을 같은 본문으로 묶는다.

최주훈 목사는 RCL을 지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서 정과가 제공하는 매주의 본문은 교회 강단을 목사 개인의 편향에서 벗어나 복음 전체의 지형 위를 걷게 만든다.”

그는 한국 개신교가 “교회력이라는 유산을 받지 못한 채 출발했다”고 보며, 그로 인해 구조적 문제가 생겼다고 짚는다. 어떤 목사가 바울 서신을 좋아하면 교회는 몇 년간 바울만 듣고, 구약에 관심이 적으면 구약이 강단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성서정과는 이 편향을 구조적으로 막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는 이 점을 덧붙인다.

“[RCL을 따르면] 서울에 있는 중앙루터교회와 뉴욕의 감리교회, 런던의 한 성공회 성당이 같은 주일에 같은 성경 본문을 읽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이 구절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예전적 설교자에게 교회력은 개별 회중을 넘어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와 연결되는 신학적 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설교자가 보이지 않는 설교

최주훈 목사의 설교론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주제는 ‘설교자 비가시성’이다. 이는 그가 뉴스앤조이에 연재한 ‘명화 이야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화가 게리 멜쳐스(Gari Melchers)의 1886년 작품 《설교(The Sermon)》를 분석하면서, 그는 이 그림의 가장 눈에 띄는 구도 — 화면 안에 설교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 를 주목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건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은총입니다. 그 은총이 죄인을 구원합니다.”

루터를 인용하며 그는 “거룩한 것, 가장 귀한 것은 숨겨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설교자가 전면에 드러날수록 말씀보다 화자가 부각된다. 설교자의 개인적 카리스마, 연설 기술, 감동적 어조가 설교의 내용을 압도할 위험이 있다. 이 역설을 그는 중세 그림 한 장으로 설명한다.

이런 방식이 최주훈 목사 설교론의 구조적 특징이다. 교리적 명제를 직접 선포하기보다, 그림이나 역사 사건을 경유해 신학적 통찰에 도달한다.

명화 도상학 — 그림으로 신학하기

‘명화 이야기’는 단순히 미술 감상 코너가 아니다. 그는 도상학(iconography), 즉 미술 작품 안에 숨겨진 상징 체계를 읽어내는 방법론을 신학 전달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림도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도상학을 통해 미술작품 안의 상징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신학을 설명한다.”

기독교 미술에는 수백 년에 걸쳐 쌓인 상징 언어가 있다. 붉은 망토는 순교를 가리키고, 비둘기는 성령을 가리키며, 특정 손 모양은 축복이나 지시를 나타낸다. 이 언어를 알면 그림은 신학 교과서가 된다.

최주훈 목사는 이 도상학적 독해를 뉴스앤조이 연재에서 꾸준히 실천했고, 이 연재는 이후 단행본 《최주훈의 명화 이야기》로 묶여 나왔다. 설교 현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 미술 작품이나 역사적 장면을 입구로 삼아 — 신학적 논점으로 진입하는 패턴이 관찰된다.

이는 텍스트 해설 중심의 강해 설교와는 다른 언어 감각이다. 그림을 읽고, 역사를 추적하고, 그 안에서 신학의 층위를 발굴하는 작업은 일종의 문화적 주석(cultural commentary)에 가깝다.

역사를 통과하는 신학 해설

최주훈 목사는 루터 신학을 교리 명제로 선포하지 않는다. 대신 항상 역사적 맥락을 동반한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본다면 ‘오직’이라는 구호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칭의론도 정의 대신 기능으로 설명한다.

“칭의론의 기능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인간적 왜곡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의 루터 해석에서 특이한 것은, 루터를 무비판적으로 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민전쟁에서 루터가 쓴 ‘폭도들에게 고함’에 대해 “루터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명시하면서도, 동시에 “루터 자신도 시대의 아들이라는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역사적 맥락을 함께 제시한다. 영웅도 악당도 아닌, 시대 속 인물로서의 루터를 그린다.

사회 비평을 다루는 방식

최주훈 목사는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 직접적인 비평 발언을 해 왔다. 이 시리즈의 서술 방식에 따라, 그 비평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방법론을 관찰한다.

그가 사용하는 주된 수사 전략은 역사 유비다. 루터가 비판했던 중세 가톨릭의 구조적 문제 — 성직자와 교인의 이분, 성서 해석의 사제 독점, 공의회 소집권 문제 — 를 한국교회와 비교한다.

“루터는 세 가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성직자와 교인을 나눈 점, 성서 해석을 사제가 독점한 점, 교황이 공의회 소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 — 한국교회도 이와 유사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적 공격 대신 역사적 거울을 드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재의 문제를 역사적 반복 구조 속에 위치시킨다. 비판의 주체를 루터와 종교개혁 역사에 분산시키는 수사적 효과도 있다.

성속 이분법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성스러운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과 이 시간이 제일 거룩하다.”

만인사제론의 공공신학적 확장

그의 신학적 강조점 중 하나인 만인사제론(priesthood of all believers)은 단순한 교회 내부 원리를 넘어 사회·정치적 함의로 확장된다. 그는 이를 “민주주의의 기틀”로 연결하고, 본회퍼의 히틀러 암살 음모 참여를 루터 신학의 실천적 귀결 사례로 제시한다.

2025년 뉴스앤조이 이사장 취임 소감에서 그는 루터를 다시 인용했다.

“진실이 위험에 처한다면 평화보다 진실을 선택하라.”

신학적 자원을 저널리즘 원칙으로 전환하는 이 방식은, 그의 설교와 강연 전반에서 루터가 단순한 역사적 신학자가 아니라 윤리적·공민적 행동 모델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일의 윤곽

최주훈 목사의 설교 방법론을 몇 가지 좌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본문 선정: 성서정과(RCL) — 개인 선택이 아닌 교회력의 순서를 따른다.

언어와 매체: 신학 교리보다 역사 서사와 미술 도상학을 경유한다. 그림 한 장이 서론이 되고, 역사 사건이 본론의 통로가 된다.

설교자의 위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중심에 말씀이 있고, 설교자는 그 말씀에 이르는 경로를 닦는 역할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비평의 수사: 현재의 문제를 직접 공격하기보다 역사적 유비를 통해 독자·청중이 스스로 연결하도록 유도한다.

신학적 확장: 교회 안의 교리적 논의를 사회·정치적 공론장으로 연장한다. 만인사제론이 민주주의로, 본회퍼가 시민 저항의 모델로 연결된다.

이 스타일은 루터교 예전 전통과 독일 학문적 신학 훈련, 그리고 한국 공론장에서의 기독교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가 합쳐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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