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분석
공학박사에서 강단으로: 박광리 목사의 설교 스타일
공학자에서 강단으로
박광리 목사(57세, 2026년 기준)의 이력은 한국 목회자 가운데서도 드문 편에 속한다. 연세대학교 의공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공학박사(Ph.D.)를 취득한 뒤, 용인송담대학교에서 의료정보학과 병원정보시스템을 가르치는 교수로 약 10년을 보냈다. 그가 신학에 입문한 것은 40세 무렵으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M.Div.를, 이후 강남대학교 실천신학대학원에서 Th.M.을 취득했다.
신학 수업 전후로 그는 분당우리교회에서 찬양 인도자 겸 교구 담당 사역자로 약 11년을 사역했다(2004년~). 그러다 2016년 분당우리교회로부터 분립개척 형태로 경기도 성남에 우리는교회를 설립했다. 개척 당시 26명에서 시작해 2019년 기준 주일 출석 인원 약 450명 규모로 성장했다.
공학 박사 출신이 설교자가 된 이 경로는 설교 방식에도 반영된다. 원어 분석이나 역사·문화적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는 주석적 접근보다, 본문의 논리 구조를 자기 언어로 재구성한 뒤 신학적 명제로 압축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설교를 여는 방식: 교독과 첫 번째 예화
우리는교회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주일설교(야고보서·룻기·요한계시록·사사기 시리즈, 2025년 4월~2026년 7월, 29편)를 자막으로 분석하면, 박광리 목사의 설교에는 거의 빠짐없이 반복되는 두 가지 도입부 의식이 있다.
첫째, 교독(交讀)으로 시작한다. 29편 중 24편에서 “제가 먼저 ○절 읽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아멘” 형식의 교독이 설교 첫머리에 자리했다. 목사가 홀수 절을 읽고 회중이 짝수 절을 이어받거나, 목사가 일부를 읽은 뒤 “함께 읽습니다”로 합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절차는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말씀이 내려오는 형식이 아니라, 회중이 먼저 본문 안으로 들어온 상태에서 설교가 시작되도록 배치한다.
둘째, 아멘 직후 일상 사물이나 현대 인물 이야기로 바로 진입한다. 이 패턴이 안정적이어서, 성경 봉독 직후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연결될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야고보서 1장 도입부에서 그는 원어인 그리스어 τέλειος(텔레이오스)를 꺼내지 않고 사과·피아노·물고기라는 세 가지 물건을 먼저 늘어놓는다.
“사과가 온전하다 —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피아노가 온전하다 — 음정이 잘 맞도록 조율되어 있어서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물고기가 온전하다 — 물에서 헤엄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기능을 한다는 얘기예요.” — 「온전함을 향한 신앙의 여정」, 야고보서 1장, 2025년 4월 13일
룻기 2장 도입부에서는 박진영을 끌어들인다. 박진영이 자신의 성공 인생을 적어 내려갔더니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어그러졌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며 자기 노력은 30%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믿음의 사람들은 알죠. 이 운이라는 용어는 당연히 은혜입니다”라고 받은 뒤, 룻기 2장의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른 대목을 펼친다.
— 「지독히 운 좋은 모압 여인」, 룻기 2:1-7, 2025년 9월 21일
야고보서 1:5-8의 기도 설교에서는 신문 기사 제목 “지나치게 신앙적으로 살다가 강박증에 빠지는 사람들”을 도입부로 쓴다. 루터가 수도원에서 “만일 내가 계속 수도 생활을 오래 했더라면 철야와 기도, 독서와 기타 노동들 때문에 실제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회고록에 적었다는 대목을 더한 뒤, “그래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분이에요? 전혀 아니죠”로 꺾는다. — 2025년 4월 27일
이 도입부 예화들의 공통점은 신학 개념을 먼저 직관화한다는 점이다. ’온전함’이라는 개념을 원어로 접근하기 전에 냉장고 속 썩은 사과로 먼저 느끼게 하고, ’은혜’를 루터의 수도원 자기 학대 실패 스토리로 먼저 체감하게 한다. 본문 강해는 그 다음에 온다.
신학의 핵심축: 율법주의 비판과 무조건적 은혜
29편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강한 신학적 축은 율법주의에 대한 반복적 비판과 은혜의 무조건성 선언이다. ’은혜’라는 단어는 29편 전체에서 총 792회, 29편 중 27편에 등장한다.
이 두 주제는 늘 세트로 작동한다. 은혜에 조건이 붙는 순간 은혜가 아닌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은혜라고 하면 조건 달지 마세요. 내가 기도해서 은혜 받았어, 내가 뭘 했더니 은혜를 주셨어 — 은혜는 그런 용어가 아닙니다. 은혜라고 하면 따라할까요? 그냥 은혜. 은혜는 그냥 은혜예요. 앞에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의 조건이 딸려 있으면 그건 은혜가 아니고 보상이죠. 은혜라는 건 그냥 은혜입니다. 우린 인과보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너무 강하니까 뭐 좋은 거 받으면 내가 뭘 해서 받은 줄 압니다. 뭘 해서 받으면 그건 보상이에요, 그건 종교입니다. 그건 율법이죠.” — 「영웅 만들지 않기」, 사사기 3:7-11, 2026년 5월 17일
이 선언은 야고보서·룻기·사사기 어느 시리즈에 있어도 형태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 야고보서 5:12-18 설교에서는 “거짓말한다”는 표현까지 동원한다.
“한국 교회는 자꾸 거꾸로 가르칩니다. 네가 자격을 갖추라고. 네가 완벽해지라고. 네가 완전해지라고,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자꾸 거짓말한다는 얘기입니다.” — 「맹세 말고 기도」, 야고보서 5:12-18, 2025년 8월 3일
이 신학적 입장은 기도론에도 이어진다. 그는 기도를 “하나님께 구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구하라”로 압축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향한 방향 전환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와의 지속적 대화
분석한 29편 가운데 16편에서 “한국 교회”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단순 언급이 아니라 대부분 진단·비판의 맥락이다.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한국 교회는 뭔가 본질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복음보다 오직 하나님보다 무언가가 얹어지고 더해져서 복음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야고보서 4:7-10, 2025년 7월 6일
비판의 내용은 설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야고보서 1:9-11에서는 “콘스탄티누스주의” — 교회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며 지배적 종교가 된 것에 환호하는 문화를 비판하고, 야고보서 3:13-18에서는 교회 내부의 경쟁과 파당 문제를 지적하며, 사사기 시리즈에서는 영웅·스타 목회자를 구하는 심리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그는 늘 자신을 그 비판의 대상 안에 함께 넣는다.
“제가 한국 교회를 비판한다고 해서 거기서 벗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역시 그 안에 있는 개혁의 대상 중 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비판하는 이유는 비판을 해야 개혁되기 때문이에요.” — 「지혜를 구하는 공동체」, 야고보서 1:5-8, 2025년 4월 20일
이 패턴이 일관되는 이유는 설교의 수신자 설정과 관계가 있다. 그는 한국 교회의 문제를 “저쪽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로 다루면서, 우리는교회를 그 대안을 추구하는 공동체로 위치시킨다.
“진짜 vs 가짜”의 설교 프레임
29편 중 25편에서 “진짜”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총 132회 쓰인다. 이 단어는 대부분 진짜 신앙/진짜 믿음과 가짜 신앙/가짜 믿음을 대조하는 문맥에서 등장한다.
야고보서 1:16-25 설교에서 그는 야고보의 서술 방식 자체에 공명한다고 말한다.
“야고보가 쓴 이 글의 필체가 참 마음에 듭니다. 설명하는 방식이 진짜-가짜를 대조해서 가짜는 걷어내고 진짜만을 보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쓴 글이에요. 저 역시 늘 신앙생활하면서 대충 ’좋은 게 좋은 거지’보다는 거짓된 건 좀 걷어내 버리고 진짜를 진짜로 여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신앙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 야고보의 글이 공감이 될 때가 참 많습니다.” — 「진짜를 향한 신앙여정」, 야고보서 1:16-25, 2025년 5월 25일
야고보서 2:14-26 설교에서는 이 프레임을 안전벨트로 풀어낸다. 안전벨트가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지 않는 것은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주장을 일상 경험으로 직결시킨다. — 2025년 6월 15일
“진짜를 추구한다”는 이 서술적 자기 정체화는 설교 논지를 판단이나 정죄가 아니라 ’같이 진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포지셔닝한다. 회중은 꾸중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기체교회’와 설교의 기능
박광리 목사의 목회 철학에서 가장 독특한 개념은 기체교회다. 고체교회(예배당 중심)·액체교회(미셔널처치) 구분을 넘어, 성도들이 각자의 삶터에 스며들어 복음을 퍼뜨리는 기체 상태의 교회를 지향한다고 직접 밝혀 왔다.
이 개념이 설교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룻기 2:14-17 설교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탁을 차린 이야기를 설명한 뒤, 그는 회중에게 묻는다.
“우리가 기체교회가 된다는 게 뭐고, 우리가 움직이는 교회가 된다는 게 뭡니까? 그것은 오늘 말씀으로 비유하자면 예수의 식탁을 제언하는 거예요. 여러분 누구랑 밥 드세요? 누구랑 커피 한 잔 마주하고 합니까? 늘 끼리끼리잖아요. … 요즘 한국 교회는 동그라미·세모·네모 못 들어와요. 우리 교회는 별이야 — 별인데 이런저런 별도 아니고 엄청 복잡한 별, 톱니바퀴 같은 거기에 몸을 맞춰서야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놨어요. 세상의 식탁보다 더 차별 있는 것 아닙니까?” — 「Boaz의 식탁」, 룻기 2:14-17, 2025년 10월 5일
사사기 9장 설교에서는 불가사리 비유를 쓴다. 머리를 자르면 죽는 거미의 중앙 집권 구조 대신, 머리 없이도 각 절지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불가사리처럼 교회가 움직이기를 소망한다.
“내 삶의 일터가, 학교가, 또 가정이 사역지고 선교지고, 다 일상의 선교사들 아닙니까? 그게 돼야 돼요.” — 「가시나무는 그늘이 없습니다」, 사사기 9장, 2026년 6월 21일
찬양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설교에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도 이 구도에서 읽힌다. 성도가 삶터로 나가기 위해서는 복음을 단단히 붙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원어 대신 한국어 재개념화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다른 설교자들과 비교할 때, 박광리 목사의 설교에서는 그리스어·히브리어 어근 분석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본문의 핵심 개념이 미끄러지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그 개념을 한국어로 재개념화하는 작업을 한다.
’온전함(τέλειος)’은 사과·피아노·물고기로, ’헤세드(חֶסֶד)’는 “포기하지 않는 신실함”으로, “계약으로 생각하면 편한데 지금만 잘해 주는 게 아니고 끝까지 잘해 주자”는 구어체 설명으로 풀어낸다. 룻기 시리즈에서 ’헤세드’는 29편 자막 전체에서 103회 등장하며, 이 단어 자체가 설교의 반복 모티프가 된다.
사사기에서는 독특한 일상 비유가 등장한다. 피아노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 주는 ’페이지 터너’가 연주자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페이지 터너의 탁월함은 오직 연주자의 연주를 완성시키는 돕는 자로서의 탁월함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연주하고 계시다, 우리 인생을 오케스트라로 지휘하고 계시다. 그분이 연주자이십니다.” — 「과도한 베팅 하지 않기」, 사사기, 2026년 7월 5일
같은 사사기 시리즈에서는 물고기 비유가 나온다.
“물고기는 물을 잘 모릅니다. 너무 당연하니까 물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자꾸 어디에 마음을 써요? ‘물 밖에는 뭐가 있을까, 물 밖에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물 밖으로 튀어나가는 거예요. 죽죠.” — 「가시나무는 그늘이 없습니다」, 2026년 6월 21일
이 비유들은 야고보서·룻기·사사기 어느 책에서 본문을 다루든 일관된 방식으로 등장한다. 한국어 직관 언어가 주석 언어를 대체하는 이 선택은 공학 박사로서 오랫동안 개념을 현실 언어로 번역해 온 훈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수로 충분하다” — 공동체 신앙고백
설교 클로징 방식에서도 일관된 패턴이 있다. 야고보서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절정 표현이 있다.
“예수로 충분하다. 예수로 충분하다. 나의 영혼아 잘 들으라, 너 예수로 충분하다. 다른 것 붙잡았던 너의 손을 거두어, 예수 예수의 옷자랑만 붙잡아.” — 「무엇을 자랑하는가가 곧 나다」, 야고보서 1:9-11, 2025년 5월 11일
이 고백은 찬양 가사처럼 운율이 있어서, 회중과 함께 선포하는 형태로 사용된다. 야고보서 5장 설교에서는 교회 정체성 선언으로 쓰인다.
“주구장창 예수만,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 교회는 이거 외칠 겁니다. 성도들이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그래서 성도들이 더 온다고. 불편하면 떠나겠죠. 그 불편함을 채워 줄 생각은 없습니다. 예수로 충분하고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 「맹세 말고 기도」, 2025년 8월 3일
클로징 기도 직전에는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 형편에 맞도록 이 말씀에 반응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거의 매주 반복된다. 설교자가 마지막 말을 다 하지 않고 회중 각자의 상황에 맡긴다는 점에서, 클로징 자체도 ’기체교회’의 원리와 닮았다.
설교 준비에 주는 시사점
박광리 목사의 사례는 설교 준비 과정에서 몇 가지 실천적 질문을 던진다.
직관 언어가 먼저냐, 주석 언어가 먼저냐. 그는 설교마다 신학 개념을 먼저 일상 사물이나 현대 이야기로 직관화한 뒤 본문으로 돌아오는 순서를 택한다. 원어 설명 없이도 ’온전함’이라는 개념의 무게가 회중에게 전달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역순 구성은 원어 강해 설교와 결이 다르지만, 청중이 본문 안으로 진입하는 데는 다른 방식으로 효과적이다.
비판과 소속을 동시에 유지하는 법. 그는 한국 교회를 매 설교에서 진단하면서도 “저도 그 안에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비판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함께 앓는 형태가 될 때, 회중은 지적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찰하는 감각을 갖게 된다.
강해의 방법론과 신학적 강조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그는 야고보서·룻기·사사기를 각각 처음부터 끝까지 강해하면서도, 은혜 신학이라는 일관된 렌즈로 본문을 읽는다. 어느 본문이든 본문 자체가 설교 방향을 잡아 주면서, 동시에 설교자의 은혜 신학이 본문 읽기를 안내한다. 방법론과 신학이 서로를 제약하면서 강화하는 방식이다.
디디모랩 자료집은 이런 설교자에게도 유용하다. 원어와 배경을 강단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설교자가 은혜·율법주의·교회론 같은 큰 신학 명제를 본문 안에서 얼마나 정당하게 끌어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별 주석과 학술 논의 섹션은 설교자의 신학적 비전이 본문을 압도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확인표가 되고, 적용 섹션은 “일상의 선교사”라는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참고 문헌
- 국민일보, 2026년 2월 23일 (기체교회 개념 인터뷰)
- 국민일보, 2019년 5월 30일 (기자 김동우, 개척 3년 차 소개)
- 박광리, 『당신이 새롭게 믿는다면』, 패스오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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