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이 돌들이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 — 마태복음 24:2와 성전 붕괴의 고고학
마태복음 24장 1–2절은 짧지만 묵직하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보이려고 가까이 왔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말씀이 선포된 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원후 30년경 유월절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40년 후, 기원후 70년에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David Roberts · The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Romans Under the Command of Titus, A.D. 70, 1850 · Public Domain. 로마군의 예루살렘 포위와 성전 파괴 장면에 대한 화가의 상상화입니다.
기원후 70년의 붕괴
기원후 66년에 시작된 유대-로마 전쟁은 4년 만에 예루살렘 포위전으로 이어졌다. 70년 여름, 로마 장군 티투스(나중에 황제가 된)가 지휘하는 군대가 성벽을 뚫고 성전산을 장악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에서 성전이 불탔을 때 거대한 돌들이 아래 거리로 쏟아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성전은 완전히 무너졌다. 헤롯 대왕이 기원전 20년경부터 수십 년에 걸쳐 확장하고 정비한 그 성전 건물이, 불과 한 세대 만에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라는 표현이 문자적으로 성립하는가 — 지금도 서쪽 성벽(통곡의 벽) 일부가 남아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다. 신약 학자들은 이 표현이 성전 건물 자체(신전 구조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서쪽 성벽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 성전산 광장을 둘러싼 외벽 기초 부분이다. 성전 건물 자체는 예수님 말씀대로 붕괴됐다.
1968년, 나팔 부는 곳
기원후 70년의 그 붕괴 현장을 물리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유물 하나가 있다. 1968년, 고고학자 벤야민 마자르(Benjamin Mazar)가 예루살렘 성전산 남서쪽 모서리 아래 발굴에서 큰 석회암 블록을 발견했다.
블록 표면에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었다: לבית התקיעה — “나팔 부는 곳으로(레베이트 핫테키아).” 세 번째 단어는 훼손으로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마자르는 “선포하기 위하여”라는 뜻의 단어였을 것으로 제안했다.
이것은 방향 표지석이었다. 성전산 남서쪽 탑 꼭대기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제사장이 그 꼭대기에서 나팔을 불어 안식일의 시작과 끝을 예루살렘 시내에 알리던 장소가 어디인지를 가리키던 안내 역할을 했다. 요세푸스도 이 관행을 기록했다. 유대 전쟁사 4권 582절에서 그는 제사장이 탑 꼭대기에서 나팔을 불어 안식일 개시를 알렸다고 기술한다.
이 방향 표지석이 왜 거리 바닥에 있었는가.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성전 건물을 파괴할 때 탑 꼭대기에 있던 이 돌이 아래 거리로 떨어진 것이다. 2천 년 가까이 땅 아래에 있다가 마자르의 발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원본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복제본은 발굴 현장 인근에 전시되어 있다.
마자르는 이 발굴을 The Mountain of the Lord(1975)에서 상세히 기술했다. 나흐만 아비가드(Nahman Avigad)도 Discovering Jerusalem(1983)에서 이 발굴 결과를 다루었다.
예언과 역사의 접점
마태복음 24장은 흔히 “감람산 강화”라 불리는 긴 종말론적 담화의 시작이다. 이 담화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 2절의 예언이 기원후 70년의 사건만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더 넓은 종말론적 사건까지 포함하는가 — 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복잡한 주제다. R.T. 프랑스, W.D. 데이비스와 D.C. 앨리슨 같은 주석가들은 2절 자체는 70년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 예언으로 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러나 해석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든, 70년의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는 포위전의 경과와 성전 파괴를 목격자에 가까운 수준의 상세함으로 기록한다. 마자르의 나팔 표지석은 그 파괴의 물리적 증거다. 탑 꼭대기에서 떨어진 돌 하나가, 방향 표지석으로서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그 붕괴의 사실을 2천 년 동안 품고 있었다.
참고 자료
- Benjamin Mazar, The Mountain of the Lord: Excavating in Jerusalem (Doubleday, 1975), pp. 148–152
- Nahman Avigad, Discovering Jerusalem (Thomas Nelson, 1983), pp. 128–131
- Flavius Josephus, Jewish War 4.582 (안식일 나팔 관행 기록); 6.249–280 (성전 파괴 장면)
- R.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NICNT; Eerdmans, 2007), pp. 893–898 (마태복음 24:2 주석)
- W.D. Davies and Dale C.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3 (ICC; T&T Clark, 1997), pp. 33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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