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대제사장 — 그 이름이 새겨진 유골함이 1990년 예루살렘에서 발굴됐습니다
복음서 수난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공식 재판을 이끈 인물은 대제사장 가야바다. 마태복음 26장 57절은 예수님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갔다고 기록하고, 요한복음 18장 13절은 그가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다고 덧붙인다. 그 가야바가 역사의 인물이었다는 것은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그리고 1990년, 예루살렘 땅 아래에서 한 유골함이 그 이름을 다시 꺼내 올렸다.
Gerard van Honthorst · Christ before the High Priest(대제사장 앞의 그리스도), 1617 · National Gallery, London · Public Domain. 가야바 앞에 선 예수님 장면에 대한 화가의 상상화이며, 당시의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1990년 11월, 예루살렘 남쪽
1990년 11월, 예루살렘 남쪽 평화 공원(Peace Forest) 인근 공사 현장에서 공사 중 석회암 동굴 하나가 드러났다. 이스라엘 고고학청(IAA)의 즈비 그린후트(Zvi Greenhut)가 발굴을 담당했다. 동굴 안에는 1세기 유대인 유골함(ossuary) 열두 개가 있었다. 유골함은 당시 유대인들이 시신을 1년가량 안치한 후 뼈만 모아 재안치하던 석회암 상자다.
열두 개 중 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유골함(길이 75cm)에는 아람어로 두 번 새겨져 있었다: יהוסף בר קפא — “카파의 아들 요셉(요셉 바 카파).” 안에는 60세 전후 남성의 유골이 담겨 있었다. 유골함의 정교한 장식과 석회암 품질은 제사장 가문 또는 예루살렘 상류층 묘역에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그린후트는 1992년 이 발굴을 ‘Atiqot 21호에 보고했다. 같은 호에서 에피그래퍼 로니 라이히(Ronny Reich)가 명문 분석을 발표했다.
요세푸스와 이름의 수렴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18.35와 18.95에서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을 기원후 18–36년 재임한 “요셉 카야파스(Ἰώσηπος ὁ Καϊάφας)“라고 기록한다. 빌라도 총독이 재임하던 기간(26–36년)과 정확히 겹치는 재임 기간이다.
유골함의 이름(יהוסף — 요셉), 가족명(קפא — 카파), 매장 시기(1세기), 묘역의 성격(제사장 계층 수준의 장식)이 요세푸스의 기록과 수렴한다. 그린후트는 이것이 가야바 가문의 무덤이며 가야바 자신의 유골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유골은 감정 후 감람산에 재안치됐고, 유골함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James Tissot · Annas and Caiaphas(안나스와 가야바), c. 1886–1894 · Brooklyn Museum · Public Domain. 요한복음 18장 13절에 등장하는 두 대제사장에 대한 화가의 상상화입니다.
학계의 신중한 유보
라이히는 명문 분석에서 동일 가족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일인 확정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아람어 표기 “카파”(קפא)와 신약 헬라어 “가야바”(Καϊάφας)·요세푸스 헬라어 “카야파스”(Καϊάφας) 사이의 음운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아람어의 음운이 헬라어로 전사될 때 얼마든지 변형이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표기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둘째, “요셉”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흔한 남성 이름 중 하나였다. 단순한 이름 일치만으로 동일인을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얇다.
그럼에도 이름·가족명·시기·매장 장소의 격식이 한꺼번에 수렴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라이히를 비롯한 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을 “가야바 가문의 무덤”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되, 가야바 본인의 유골함인지를 확정하는 것은 가용한 증거의 범위를 넘는다는 입장이다.
”그 이름이 새겨진 유골함”의 의미
이 발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이름의 일치 때문만이 아니다. 빌라도의 돌(1961년, 가이사랴에서 발견), 갈리오의 델포이 비문(1905년, 사도행전 18장의 갈리오 재임 연도 확인), 그리고 이 유골함까지 — 신약의 인물들이 하나씩 고고학적 증거와 만나는 패턴이 이어진다.
신약 본문은 역사적 진공 속에 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체적인 인물, 구체적인 시간,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전개된 사건들이다. 유골함이 가야바 본인의 것인지 그 가문의 것인지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 이름이 새겨진 돌 상자가 예루살렘 땅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은 1세기의 현실 밀도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참고 자료
- Zvi Greenhut, “The ‘Caiaphas’ Tomb in North Talpiot, Jerusalem,” ‘Atiqot 21 (1992): 63–71
- Ronny Reich, “Ossuary Inscriptions from the Caiaphas Tomb,” ‘Atiqot 21 (1992): 72–77
- Flavius Josephus, Jewish Antiquities 18.35, 18.95 (대제사장 요셉 카야파스 재임 기록)
- Craig A. Evans, Jesus and the Ossuaries: What Jewish Burial Practices Reveal about the Beginning of Christianity (Baylor University Pres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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