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낙타 열 마리의 물 — 리브가의 '드리겠습니다'가 얼마나 큰 말이었는지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가에서 기도했습니다. 긴 여행 끝에 낙타 열 마리를 이끌고 하란 땅 성문 밖 우물 곁에 선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제 내가 이 우물 곁에 섰사오니 성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소서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우리이다 하면 그는 주께서 당신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하오리니”(창 24:13-14).
기도의 핵심은 낙타에게도 물을 먹이겠다고 자청하는 여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는, 낙타 한 마리가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는지 알아야 제대로 보입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 1660년경 · Public Domain.
탈수된 낙타가 마시는 물의 양
낙타는 사막을 오가며 체내 수분을 빠르게 잃습니다. 핵심 실험을 수행한 연구자는 덴마크 태생 동물생리학자 크누트 슈미트-닐센으로, 그의 1956년 논문 “Water Balance of the Camel”(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 185권 1호)은 낙타 수분 대사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장거리를 걸어 탈수된 낙타는 한 번의 음수(飮水)에 약 100리터에서 최대 200리터까지 마실 수 있습니다.
열 마리라면 어떻게 됩니까? 단순 계산으로도 1,0002,000리터, 즉 12톤에 달합니다. 고대 근동의 우물에서 물을 긷는 방식은 오늘날처럼 펌프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죽 두레박이나 토기로 한 번에 수 리터씩 퍼 올리고 물통에 채우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습니다. 물 2톤을 퍼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몇 시간이 걸리는 고된 노동입니다.
리브가가 자청한 것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려 종에게 마시게 한 뒤 말합니다.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물을 길어 그것들로 마음껏 마시게 하리이다”(창 24:19). 본문은 리브가가 “급히” 물통에 다시 물을 채우러 달려갔다고 전합니다(20절).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가 자기 발로 나서서 열 마리 낙타 전부에게 실컷 마실 물을 긷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친절이 아닙니다. 낯선 여행자 한 명의 갈증을 축이는 것과, 그가 끌고 온 짐승 열 마리에게 수 톤의 물을 길어 먹이는 것 사이에는 사무치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묵묵히 있다가 그녀가 낙타에게 마시울 것이 다하기를 기다렸다”고 성경은 전합니다(21절). 기다림 자체가 그 노동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암시합니다.
기도에 담긴 논리
아브라함의 종이 이 조건을 기도로 삼은 것은 즉흥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낙타에게도 마음껏 물을 먹이겠다고 자청하는 여자는, 요청받지 않은 무거운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는 종에게, 그것은 성품의 표지였습니다. 말 한 마디가 아니라 몇 시간의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표지.
창세기 24장을 다시 읽는 방법
창세기 24장은 긴 장면입니다. 67절이나 되는, 구약에서 가장 긴 장들 중 하나로, 종이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러 여행하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서술합니다. 이 장을 읽을 때 14절의 기도와 19절의 리브가의 대답 사이에서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물어보십시오. “낙타 열 마리에게 마음껏 마시게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그 질문의 무게를 느낄 때, 리브가의 “드리겠습니다”가 우리 귀에 다르게 들립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수고, 계산하지 않은 섬김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성품을 드러내는가를 이 장은 낙타 열 마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참고 자료
- Knut Schmidt-Nielsen, “Water Balance of the Camel,” 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 185.1 (1956): 18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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