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과부의 두 렙돈 — 실제 동전으로 읽는 마가복음 12장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헌금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정작 그 동전이 얼마나 작고 얇은 것이었는지를 실감한 적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두 렙돈”은 막연하게 “아주 적은 돈”으로 이해되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유통된 동전이었고, 마가는 그 동전의 가치를 로마 화폐로 직접 환산해 독자에게 알려줄 만큼 그 작음을 강조했습니다.
렙돈 — 가장 작은 유대 동전
렙돈(λεπτόν, 복수형 λεπτά)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유통된 가장 소액의 청동 동전이었습니다. 이 명칭 자체가 “얇은”, “작은”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근에서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렙돈은 하스몬 왕조 시대부터 주조됐습니다. 알렉산더 얀네우스(재위 기원전 103–76년)가 대량으로 발행한 렙돈은 가장 잘 알려진 유형 가운데 하나로, 예수 시대에도 계속 유통됐습니다. 이 동전들은 한 면에 닻이나 별 모양이, 반대 면에 히브리어 또는 그리스어로 왕의 이름과 직함이 새겨진 작고 납작한 청동 주화였습니다.
랜디 벤지, 고대 유대 렙돈(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종류의 소형 청동 동전), 연도 미상 — 개인 소장. CC0 1.0.
마가의 환산 — 두 렙돈 = 한 콰드란스
마가복음 12:42에는 눈에 띄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마가는 유대의 두 렙돈을 로마의 한 콰드란스(고드란트)로 환산해 줍니다. 이것은 마가가 로마 독자를 위해 현지 화폐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콰드란스는 로마 청동 동전 가운데 가장 소액에 속하는 것으로, 한 데나리온의 약 1/64에 해당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 하루 품삯 정도였으니, 두 렙돈은 하루 임금의 64분의 1이었던 셈입니다. 문헌에 따라 이 환산 비율에 차이가 있어 1/64에서 1/128로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어느 쪽이든 극히 작은 금액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작자 미상, 아우구스투스 치세 로마 콰드란스(기원전 9년경),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IMP-4434). Public domain.
왜 두 닢인가
과부가 두 렙돈을 넣었다는 사실도 의미 있습니다. 렙돈이 두 닢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선택지가 있었음을 뜻합니다. 적어도 한 닢은 남겨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었지만, 그녀는 두 닢 모두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마가는 이 장면 바로 앞에서 예수가 서기관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장면(막 12:38–40)을 배치합니다. 과부 이야기는 그 대조를 완성합니다.
예수의 역전된 평가
예수는 이 장면에서 부자들이 넣는 많은 것보다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막 12:43–44).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평가의 기준이 다릅니다. 절대 금액이 아니라 “전부를 드렸는가”입니다. 두 렙돈이 하루 품삯의 64분의 1이라는 사실을 알수록, 이 역전의 무게가 실감됩니다.
본문을 다시 펼치면
마가복음 12:41–44를 다시 읽을 때, 헌금함 앞에 선 예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주목해 보세요. 그는 헌금 장면 전체를 지켜보다가(막 12:41),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과부 한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두 렙돈 — 가장 작은 동전 두 닢 — 이 그 시선을 끌었습니다.
동전의 크기를 알수록 예수의 평가가 더 날카롭게 들립니다.
참고 자료
- Kenneth W. Harl, Coinage in the Roman Economy, 300 B.C. to A.D. 700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6)
- Anchor Bible Dictionary, “Money, Coins”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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