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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⑨ 벨라스케스 — 「엠마오의 저녁 식사」와 부엌에 놓인 계시

부엌 한쪽, 어린 흑인 하녀가 식탁 위 그릇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습니다. 그의 표정은 분명치 않은 상념에 잠긴 듯합니다. 정작 그림의 제목이 가리키는 사건—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빵을 나누며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은 화면 왼쪽 위 구석, 벽에 뚫린 작은 창(또는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서만 겨우 보입니다. 왜 벨라스케스는 그림의 주인공이어야 할 사건을 이렇게 작게, 구석으로 밀어냈을까요. 화가들의 성서해석 연재, 이번 회차는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로 넘어갑니다.

벨라스케스는 누구인가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는 세비야에서 태어나 화가이자 인문학자였던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그는 당대 스페인 회화에서 드물었던 장르, 이른바 ‘부엌화’(bodegón)—평범한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는 장면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린 정물 겸 풍속화—를 개척했습니다. 「엠마오의 저녁 식사」(Kitchen Maid with the Supper at Emmaus)는 이 부엌화 장르와 성서화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태어난, 그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약 1617-1618년). 이듬해인 1618년, 그는 파체코의 딸 후아나와 결혼했고, 1623년에는 마드리드로 불려가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평생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본문 — 누가복음 24장 30~31절

부활하신 예수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동행하지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식사 자리에 이르러서야 상황이 바뀝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누가복음 24:30-31)

누가복음 본문의 핵심은 “눈이 밝아져”(διηνοίχθησαν οἱ ὀφθαλμοί, 눈이 열리다)라는 구절입니다—몸으로는 줄곧 함께 있었지만, 인식의 문이 열리는 것은 빵을 떼는 그 순간입니다.

그림 분석 — 전경의 하녀, 배경 속의 계시

디에고 벨라스케스, 「엠마오의 저녁 식사」(부엌 하녀), 1617-18년경,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디에고 벨라스케스, 「엠마오의 저녁 식사」(부엌 하녀), 1617-18년경, 캔버스에 유채, 55×118cm — 아일랜드 국립미술관(더블린).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expired, 저자 1660년 사망).

화면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부엌에서 일하는 어린 흑인 하녀입니다. 항아리와 그릇, 마늘 몇 쪽이 놓인 식탁 앞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은 파체코 공방 특유의 강한 측광 아래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이상화되지 않은, 실제 세비야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입니다. 정작 그림의 제목이 가리키는 사건, 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 앞에서 빵을 떼는 장면은 화면 왼쪽 위, 벽에 뚫린 작은 사각형 틀(하인들이 요리를 나르던 배선구 또는 벽에 걸린 그림으로 추정되며 미술사가들 사이에 해석이 갈립니다) 안에 작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33년 세정(洗淨) 작업 중에야 배경의 성서 장면이 드러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오랫동안 먼지와 니스에 가려 단순한 부엌 풍속화로만 여겨졌던 셈입니다.

같은 구도, 같은 인물이 등장하되 배경의 성서 장면이 없는 자매작 「부엌의 하녀」(시카고 미술관 소장)도 존재합니다. 두 그림의 관계—어느 쪽이 먼저이고 어느 쪽이 벨라스케스의 원작인지—는 여전히 미술사학계의 논쟁거리이지만, 적어도 더블린 소장본에서는 벨라스케스(혹은 그의 공방)가 세속적 부엌 풍속화 위에 의도적으로 성서적 층위를 겹쳐 놓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신학적 해석 — 누구의 눈이 열리는가

미술사가 타냐 티퍼니(Tanya J. Tiffany, 위스콘신대학교 밀워키캠퍼스)는 2008년 『아트 히스토리』(Art History) 논문에서 이 그림을 17세기 세비야라는 구체적 역사적 맥락 안에 놓습니다. 당시 세비야는 스페인 최대의 노예무역 항구 중 하나였고, 도시의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개종과 “영적 조명”(illumination)을 둘러싼 신학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습니다—피부색의 어두움과 영혼의 구원 가능성을 어떻게 연결 지을 것인가 하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불편한 신학적 수사였습니다. 티퍼니는 이 그림의 구도 자체가 그 논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고 읽습니다: 화면을 압도하는 것은 이름 없는 흑인 소녀의 얼굴이고, 그 뒤편 작은 창 너머에서는 빛이 “열리는” 순간—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순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본문이 “눈이 밝아졌다”고 말하는 주체는 엠마오의 두 제자입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의 구도는 그 질문을 조용히 화면 앞으로, 그림을 보는 우리 앞에 서 있는 하녀에게로 옮겨 놓습니다. 그는 배경의 사건을 보고 있을까요, 아니면 등지고 있을까요. 그의 고개 숙인 자세와 상념에 잠긴 표정은 답을 명확히 주지 않습니다—그리고 바로 그 모호함이, 반종교개혁 시대 신학자들이 씨름했던 질문, 즉 “빛”과 “구원”이 누구에게 어떻게 임하는가라는 질문을 그림 밖으로 끌고 나옵니다. 벨라스케스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성서적 계시를 화면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놓음으로써, 계시가 누구를 향하고 누구를 비껴가는지를 묻는 그림을 그린 셈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프랑스 로렌 지방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를 다룹니다. 촛불 하나로 화면 전체를 밝히는 그의 명암법과, 목수 요셉을 그린 그림 속 인간적인 성가정을 살펴봅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자닌 바티클(Janine Baticle), 『벨라스케스 —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시공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999)

영미권

  • Jonathan Brown, Velázquez: Painter and Courtier (Yale University Press, 1986) — 벨라스케스 연구의 표준 학술서
  • Tanya J. Tiffany, “Light, Darkness, and African Salvation: Velázquez’s Supper at Emmaus,” Art History 31, no. 1 (2008): 33-56 — 이 그림을 17세기 세비야의 흑인 노예 개종 논쟁과 연결한 핵심 논문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학술지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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