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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⑧ 루벤스 — 「십자가를 세움」과 반종교개혁 성서의 극장성

십자가가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향해 세워지고 있습니다. 아홉 명의 근육질 인부들이 밧줄과 온몸의 힘을 다해 그 무게를 밀어 올리고, 관객의 눈은 그 인물들의 발치, 그러니까 무대 아래 객석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낮은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극장의 1층 앞자리에 앉아 배우들의 몸짓을 올려다보는 듯한 이 구도는 우연이 아닙니다 — 루벤스는 훗날 실제로 도시의 개선문과 축제 무대를 설계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루벤스 2편은 「십자가를 세움」을 통해 반종교개혁 시대 성서 회화가 어떻게 ’무대’로 연출되었는지를 읽습니다.

본문 — 누가복음 23장 33절

십자가 처형의 순간, 누가복음은 짧게 서술합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누가복음 23:33)

복음서 본문은 십자가를 “세우는” 육체적 행위 자체를 거의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화가의 몫입니다.

그림 분석 — 낮은 시점, 그리고 무대 위의 몸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1610-11년,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삼면화 중앙 패널), 1610-11년, 패널에 유채, 462×341cm —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 저자 1640년 사망).

「십자가에서 내림」보다 2년 앞서 그려진 이 그림은 성 발부르가 성당(현재는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이전 소장)의 주제단화로, 안트베르펜 귀환 후 루벤스가 받은 첫 대규모 종교 주문이었습니다. 중앙 패널의 구도는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솟구치는 강한 대각선을 축으로 삼습니다. 아홉 명의 인부가 온몸을 뒤틀며 십자가를 밀어 올리는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체의 근육질 조형을 연상시키고, 어둠 속에서 인물들만 도드라지는 명암 처리는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을 반영합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관객의 시점입니다 — 화가는 관객을 인물들보다 훨씬 낮은 위치, 마치 무대 앞 객석 첫 줄에 앉아 배우들을 올려다보는 자리에 놓습니다. 이 낮은 시점은 관객을 사건의 방관자가 아니라 그 무게를 함께 느끼는 참여자로 끌어들입니다.

좌우 날개 패널도 이 극적 연출에 동참합니다. 왼쪽에는 슬픔에 잠긴 마리아와 요한, 애도하는 여인들이, 오른쪽에는 함께 처형될 두 행악자와 말을 탄 로마 병사들이 배치되어, 중앙의 격렬한 사건을 좌우에서 감싸는 무대 세트처럼 기능합니다.

신학적 해석 — 루벤스, 실제로 무대를 설계한 화가

이 그림의 ’극장성’은 비유가 아닙니다. 1635년, 루벤스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동생이자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추기경왕자 페르디난트가 안트베르펜에 입성할 때 도시 곳곳에 세워질 임시 개선문과 무대 장치를 실제로 설계했습니다 — 이 작업은 이후 『페르디난트의 개선 입성』(Pompa Introitus Ferdinandi, 1641–42년 간행)이라는 화집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세움」보다 20여 년 뒤의 일이지만, 루벤스가 평생에 걸쳐 회화적 상상력과 실제 무대·건축적 상상력을 함께 훈련해 온 화가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종교화에서 인물을 배치하고 관객의 시선을 계산하는 방식은, 실제 도시 공간에 임시 건축물을 세워 군중의 시선과 동선을 연출하던 그의 또 다른 직업적 감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술사가 베르너 바이스바흐(Werner Weisbach)는 1921년 저서 『반종교개혁의 예술로서의 바로크』(Der Barock als Kunst der Gegenreformation)에서, 바로크 양식 전체를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가 신자의 감각과 감정을 직접 움직여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채택한 설득의 예술로 규정했습니다. 이 도식은 이후 지나치게 단순화된 일반화라는 비판도 받아 왔지만—바로크 양식이 곧바로 반종교개혁의 산물이라 단정하기엔 세속 후원과 지역별 편차가 크다는 지적입니다—「십자가를 세움」이 걸렸던 실제 물리적 위치를 보면 그 통찰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제단화는 성당 안에 복원된 ‘성묘 경당’ 위쪽 높은 곳에 배치되어, 순례자들이 실제로 그 아래를 지나 걸으며 올려다보도록 설계된 공간 연출의 일부였습니다. 그림은 벽에 걸린 이미지가 아니라, 신자의 몸이 통과하는 예배 공간 전체의 무대 장치 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다음 편 예고

루벤스 2부작은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스페인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임영방, 『바로크 — 17세기 미술을 중심으로』 (한길아트, 2011)

영미권

  • John Rupert Martin (ed.), Rubens: The Antwerp Altarpieces — The Raising of the Cross and The Descent from the Cross (W. W. Norton, 1969)
  • Anna C. Knaap and Michael C. J. Putnam (eds.), Art, Music, and Spectacle in the Age of Rubens: The Pompa Introitus Ferdinandi (Brepols, 2013) — 루벤스가 설계한 1635년 개선문 연작을 다룬 연구서

독일어권

  • Werner Weisbach, Der Barock als Kunst der Gegenreformation (Paul Cassirer, 1921) — 바로크를 반종교개혁의 설득 예술로 규정한 고전적 명제(이후 학계의 비판적 재검토 대상이기도 함)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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