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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⑦ 루벤스 — 「십자가에서 내림」과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들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몸이 하얀 천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옵니다. 그를 받쳐 든 사람들의 몸이 대각선을 그리며 화면을 가로지르고, 그 대각선의 끝에서 시신을 감싸는 새하얀 수의가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냅니다. 이 그림이 걸린 안트베르펜 대성당 제단화의 좌우 날개를 열면, 전혀 다른 두 장면—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장면과, 아기 예수가 성전에 봉헌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왜 이 세 장면이 한 제단화로 묶였을까요. 화가들의 성서해석 연재는 이번 회차부터 페테르 파울 루벤스로 넘어갑니다.

루벤스는 누구인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오늘날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활동한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대표 화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8년(1600-1608)을 보내며 티치아노의 색채, 카라바조의 명암, 고전 조각의 인체 표현을 흡수했고, 귀국 후에는 화가이자 외교관으로서 유럽 여러 궁정을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림」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배운 것들을 한 화면에 종합한, 안트베르펜 귀환 후 첫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그림은 1611년 안트베르펜의 화승총 사수 조합(Confraternity of the Arquebusiers)이 대성당 제단화로 주문한 작품으로, 1612년부터 1614년까지 제작되었습니다. 조합의 수호성인은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us)—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성인입니다. 루벤스는 이 이름을 삼면화 전체를 묶는 열쇠로 삼았습니다: 왼쪽 날개는 마리아가 태중의 예수를 안고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방문」, 중앙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시신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내리는 「강하」(降下), 오른쪽 날개는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봉헌」입니다. 세 장면 모두, 누군가 그리스도를 몸으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본문 — 요한복음 19장 38~40절

십자가 처형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빌라도에게 구하니 이 사람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서 은밀히 하는 자라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요한복음 19:38-40)

두 사람 모두 복음서 안에서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공개적으로 따르지 못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십자가 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에 예수의 몸을 직접 짊어지고 내려옵니다.

그림 분석 — 대각선의 몸, 그리고 삼면화 전체의 구조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 1612-14년,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삼면화 중앙 패널), 1612-14년, 패널에 유채, 421×311cm —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 저자 1640년 사망).

중앙 패널의 구도는 위쪽 십자가 가로대에서 아래쪽 두 손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대각선을 축으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붙든 인물들—사다리 위에서 수의 자락을 입에 문 사람, 몸통을 받치는 요한(붉은 옷), 발치의 니고데모와 막달라 마리아—이 이 대각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창백한 몸을 감싼 새하얀 수의는 캔버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밝은 색면으로,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며 시선을 붙듭니다. 이 구도는 다니엘레 다 볼테라의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십자가에서 내림」의 극적인 자세와 어두운 배경 처리를 반영하면서도, 루벤스 특유의 절제된 고전적 균형으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날개 패널까지 함께 보면 이 그림의 구조가 더 분명해집니다. 왼쪽 「방문」에서 임신한 마리아는 태중에 그리스도를 짊어지고, 오른쪽 「봉헌」에서 시메온은 팔에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에서 요한과 니고데모는 죽은 그리스도의 몸을 짊어집니다. 생명의 시작에서 죽음까지, 세 장면 모두가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라는 하나의 모티프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 크리스토포로스라는 수호성인의 이름이 곧 이 삼면화 전체의 신학적 프로그램입니다.

신학적 해석 —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눈물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결정에 따라 성화(聖畫)가 지켜야 할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공의회는 성상이 신자의 신심을 자극하고 교리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규정했고,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릴 때는 구세주의 몸을 영웅적이고 위엄 있게, 마리아를 슬픔에 잠기되 믿음으로 의연히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릴 것을 요구하는 신학적 기조가 반종교개혁 화단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루벤스의 그림 속 마리아는 실제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 두 손을 그리스도의 몸에 얹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지만, 자세는 곧고 의식은 또렷합니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신앙이 한 몸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종교개혁적 도상 관습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동시에 이 그림은 종교개혁이 우상 숭배라 비판했던 성상 자체를 정면으로 옹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개신교 성상파괴 운동(iconoclasm)이 네덜란드 지역을 휩쓴 지 불과 수십 년 뒤, 가톨릭 진영의 화가가 그린 이 압도적인 제단화는 이미지가 신앙의 적이 아니라 통로일 수 있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두려움 때문에 숨어 지내던 은밀한 제자들—가 가장 위험한 순간에 그리스도의 몸을 공개적으로 짊어지고 나서는 이 장면은,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격랑 속에서 신앙을 공개적으로 짊어져야 했던 반종교개혁 시대 가톨릭 신자들 자신의 상황과 조용히 겹쳐집니다.

다음 편 예고

루벤스 2편에서는 이 그림을 포함한 안트베르펜 대성당 제단화 전체를 통해, 반종교개혁 시대 성서 회화가 어떻게 “무대 위의 드라마”처럼 구성되었는지—빛과 몸짓, 관객의 시선을 계산한 연출 전략—을 살펴봅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야콥 부르크하르트, 최승규 옮김, 『루벤스의 그림과 생애』 (한명출판, 1999) — 스위스 문화사가 부르크하르트가 쓴 루벤스 회고록의 국역본

영미권

  • John Rupert Martin (ed.), Rubens: The Antwerp Altarpieces — The Raising of the Cross and The Descent from the Cross (W. W. Norton, 1969) — 이 두 제단화만을 다룬 표준 연구서
  • Kristin Lohse Belkin, Rubens (Phaidon, Art & Ideas, 1998)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의 축소본(1280px)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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