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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

화가들의 성서해석 ① 카라바조 — 「성 마태오의 소명」과 빛의 신학

어두운 세관 사무실. 동전을 세던 남자들이 문 쪽에서 들어온 낯선 빛에 고개를 든다. 그 빛과 함께, 화면 오른쪽에서 뻗어 온 손 하나가 그들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이 정확히 누구를 향하는지는 400년 넘게 논쟁거리였다 — 턱을 만지며 자신을 가리키는 듯한 수염 난 남자인지, 그 옆에서 여전히 동전만 세고 있는 젊은이인지. 카라바조는 성서의 한 문장을 그림 하나로 압축했고, 그 압축이 지금까지도 정확히 풀리지 않는다.

이 연재에 대하여

이 글은 새 연재 「화가들의 성서해석」의 첫 회입니다.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까지, 화가들이 성서의 한 장면을 어떻게 “읽고” 캔버스에 옮겼는지를 따라가는 시리즈입니다. 신학자만이 아니라 화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본문을 주석해 왔다는 전제 위에서, 화가의 생애·시대적 맥락·그림의 도상학을 함께 살펴봅니다. 유명한 화가는 최대 3부작까지 다루며, 그중에서도 카라바조와 렘브란트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룰 예정입니다. 전체 회차는 시리즈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누구인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밀라노에서 태어났고, 집안의 연고지였던 인근 소읍 카라바조의 지명을 이름으로 쓰게 된 화가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밀라노에서 도제 수업을 받은 뒤, 1590년대 초 로마로 건너와 정물화와 풍속화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림만큼이나 극적이었습니다 — 잦은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고, 1606년에는 결투 끝에 사람을 죽여 로마에서 나폴리·몰타·시칠리아로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가 1610년 38세의 나이로 객사했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 화단에서 일으킨 변화는 폭력적인 삶과는 대조적으로 정교했습니다. 카라바조는 이상화된 인체 비례나 우아한 구도 대신, 길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과 몸을 그대로 성서의 인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 두고, 화면 밖에서 들어오는 듯한 강렬한 빛줄기 하나로만 비췄습니다. 이 급진적 명암 대비를 미술사에서는 흔히 ‘테네브리즘’(tenebrism, 라틴어 tenebrae — 어둠)이라 부르는데, 단순한 명암 대비를 넘어 어둠 자체를 화면의 주역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키아로스쿠로와 결이 다릅니다.

「성 마태오의 소명」은 1599년, 카라바조가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콘타렐리 예배당 벽화 연작을 의뢰받으면서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예배당은 마태오의 생애 세 장면(소명·영감·순교)을 다루도록 설계되었고, 카라바조에게는 사실상 첫 대형 공공 위탁 작업이었습니다. 이 그림 이후 그는 로마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가장 수요가 많은 화가가 됩니다.

본문 — 마태복음 9장 9절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복음 9:9)

세 공관복음 모두 이 장면을 짧게 기록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이 세리의 이름이 “레위”로 나오지만, 마태복음은 그를 “마태”로 부릅니다. 전통적인 마태 저자설을 따르면 이를 저자가 자기 이름을 밝힌 대목으로 읽을 수 있지만, 현대 연구에서 복음서의 저자 문제는 별도의 논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본문 자체는 극히 짧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보시고, 부르시고, 마태가 일어나 따른다 — 세 동작이 한 문장 안에 다 들어갑니다. 카라바조가 캔버스에 옮긴 것은 정확히 이 압축성, 곧 부르심과 응답 사이에 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림 분석 — 빛이 하는 신학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1599–1600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콘타렐리 예배당(로마) 소장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1599–1600년, 캔버스에 유채, 322×340cm —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콘타렐리 예배당(로마).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 / CC0).

화면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왼쪽에는 당대 로마 거리의 옷차림을 한 다섯 남자가 탁자에 둘러앉아 동전을 세고 있고,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와 베드로로 보이는 두 인물이 화면 안으로 막 들어선 참입니다. 카라바조는 성서 속 인물들에게 후광이나 이상화된 옷차림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 그리스도조차 맨발에 수수한 옷을 입은, 세관 사무실에 불쑥 들어온 낯선 이방인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빛의 출처와 방향입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쏟아지는 빛은 실제 예배당 안에서 그림을 비추던 창문의 방향과 거의 일치하도록 계산되었다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 즉 이 빛은 그림 속 허구의 빛일 뿐 아니라, 예배당에 실제로 앉은 신자가 체험하는 빛과 겹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림과 예배 공간이 하나의 신학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둘째는 손짓의 모호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오른손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아담의 창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손짓을 명백히 인용하고 있습니다 — 다만 여기서는 생명을 주는 손이 아니라 부르는 손입니다. 문제는 탁자에 앉은 다섯 명 중 누가 마태인가입니다. 오랫동안 표준적으로는 턱수염을 기르고 자기 가슴을 가리키는 듯한 중년 남자(화면 왼쪽에서 두 번째)를 마태로 보아 왔지만, 최근 연구들은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동전만 세고 있는 맨 끝의 젊은이를 마태로 보는 편이 도상학적으로 더 설득력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카라바조가 의도적으로 이 모호함을 남겨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부르심의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전에, 먼저 부르심 자체의 충격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학적 해석 — 부르심의 즉각성과 어둠 속의 인간

이 그림이 신학적으로 하는 일은 마태복음 9장 9절의 압축성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시고 이르시되… 일어나 따르니라”는 사이에 아무런 망설임의 시간이 없듯, 그림 속 인물들도 아직 놀람의 몸짓 한가운데 얼어붙어 있습니다 — 아무도 아직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카라바조는 회심의 완료된 결과가 아니라, 결정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정지된 순간을 그렸습니다. 이것이 이 그림의 가장 독창적인 신학적 선택입니다.

빛과 어둠의 배치도 단순한 극적 효과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9장의 세관이 있던 가버나움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지였으므로, 마태를 로마 점령군이 직접 고용한 세금 징수원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통행세나 관세를 거두던 세리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럼에도 세리는 로마의 피후견 통치 질서와 연결된 데다 부정한 이익을 취한다는 의심을 받아 죄인의 표상으로 여겨졌고, 복음서에서는 창녀와 나란히 거론되기도 합니다. 그런 어둠 속의 인물들에게 빛이 임한다는 구도는, 은총이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라 죄인에게 찾아온다는 바울 신학(롬 5:8)과도 공명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감각적 이미지를 통한 신앙 각성을 적극 장려하던 반종교개혁의 흐름 속에서, 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성인을 이상화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경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다음 편 예고

카라바조 2편에서는 같은 콘타렐리 예배당 연작이 아니라, 그의 후기작 「의심하는 도마」(c. 1601-1602)를 다룹니다. 도마가 손가락을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 직접 찔러 넣는 이 그림은, “보지 않고 믿는” 신앙과 “만져야 믿는” 신앙 사이에서 카라바조가 후자 쪽에 얼마나 대담하게 섰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고종희,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한길사, 2023) — 카라바조가 거쳐간 이탈리아 현지를 직접 답사해 쓴 국내 대표 단행본 연구

영미권

  • Howard Hibbard, Caravaggio (Harper & Row, 1983)
  • Catherine Puglisi, Caravaggio (Phaidon, 1998)
  • Helen Langdon, Caravaggio: A Life (Chatto & Windus, 1998)
  • John T. Spike, Caravaggio (Abbeville Press, 2001)
  • Andrew Graham-Dixon, Caravaggio: A Life Sacred and Profane (Allen Lane, 2010)

독일어권

  • Sybille Ebert-Schifferer, Caravaggio: Sehen – Staunen – Glauben (C.H. Beck, 2009; 영역 Caravaggio: The Artist and His Work, Getty Publications, 2012)

이탈리아어권

  • Roberto Longhi, Caravaggio (Editori Riuniti, 1952) — 20세기 카라바조 재발견을 이끈 고전적 연구
  • Walter Friedlaender, Caravaggio Studi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5)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고해상도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 목록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이며, 본문의 도상학적 논쟁(마태의 정체 등)은 위 문헌들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지는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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