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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전도서의 '헛되다'는 '무의미하다'가 아닙니다 — 히브리어 원어는 '숨결'입니다

전도서 1:2는 한국어 독자에게 익숙한 구절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개역개정). 같은 선언이 12:8에서 반복되며 책 전체를 감싼다. 이 반복 구조 때문에 전도서는 종종 염세주의 혹은 허무주의의 성경적 표현으로 읽힌다. 삶은 의미가 없고, 모든 노력은 공허하며,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 한 단어를 들여다보면, 전도서가 말하는 것이 그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년경, 쿤스트할레 함부르크 Caspar David Friedrich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 1818년경 · 쿤스트할레 함부르크 · Public Domain. 손에 쥐려 해도 잡히지 않는 안개 앞에 선 인물의 모습은 헤벨이 담은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헤벨(הֶבֶל)이라는 단어

전도서 1:2에서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벨(הֶבֶל)이다.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숨결, 수증기, 안개다. 내뱉으면 이미 사라지고, 손에 쥐려 하면 잡히지 않는 것. 겨울 아침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이 헤벨의 가장 직관적인 이미지다.

헤벨이 “무의미(meaninglessness)” 혹은 “무가치(worthlessness)“를 뜻한다는 이해가 번역 전통에서 굳어졌지만, 이 두 개념은 헤벨이 실제로 담고 있는 것과 다르다. 무의미는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헤벨은 가치의 부재가 아니라, 붙잡을 수 없음을 말한다. 아름다운 것, 사랑하는 것, 애써 이룬 것이라도 그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성질을 가리킨다. 덧없음(transience), 포착 불가능함(elusiveness)이 더 가깝다.

아벨이라는 이름

헤벨은 전도서 안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창세기 4:2는 카인의 동생 이름을 히브리어로 헤벨이라고 쓴다. 우리가 “아벨”이라 부르는 그 이름이다.

이 연결은 단순한 언어적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아벨은 성경에서 가장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진 인물이다. 태어났고, 살았고, 제물을 드렸고, 형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름 헤벨이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셈이다. 숨결처럼 왔다가 사라진 존재. 전도서 저자가 이 연결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를 읽는 독자에게 헤벨이라는 단어는 아벨을 떠올리게 한다.

학자들의 번역 논쟁

코헬렛(Qohelet, 전도서 저자) 연구에서 헤벨의 최선 번역을 찾는 작업은 오래된 논쟁이다.

마이클 폭스(Michael V. Fox)는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Up(Eerdmans, 1999)에서 헤벨을 “부조리(absurd)“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 폭스가 말하는 부조리는 사르트르나 카뮈 식의 실존주의적 무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기대와 현실 사이의 구조적 간극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받고, 선하게 살면 형통하며, 악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기대한다. 전도서는 세상이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한다. 그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가 폭스가 말하는 헤벨의 핵심이다.

트렘퍼 롱맨 3세(Tremper Longman III)는 The Book of Ecclesiastes(NICOT, Eerdmans, 1998)에서 “수수께끼 같음(enigmatic)“을 선호한다. 헤벨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삶이 우리가 파악하려는 방식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

두 학자는 번역어에서는 다르지만 한 가지 결론을 공유한다. 전통적 번역어 “헛됨(vanity)” 또는 “무의미”는 히브리어 헤벨이 실제로 가리키는 의미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전도서는 허무주의 책인가

헤벨을 “무의미”로 읽으면 전도서는 허무주의 문학이 된다. 어차피 다 헛되니 아무것도 의미 없다. 그런데 전도서는 그런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12:13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것은 허무주의의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역방향이다. 덧없음을 직시했기 때문에, 영원한 것 앞에 서야 한다는 결론이다. 헤벨을 인정하는 것이 경외의 출발점이 된다.

마이클 폭스의 언어로 말하면, 전도서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도 그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책이다. 롱맨의 언어로 말하면, 수수께끼 같은 세상 안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 책이다. “헛되다”를 “무의미하다”로 읽으면 이 물음이 사라진다. “덧없다”로 읽으면 물음이 살아난다.

참고 자료

  • Michael V. Fox,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Up: A Rereading of Ecclesiastes (Eerdmans, 1999)
  • Tremper Longman III, The Book of Ecclesiaste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Eerdmans, 1998)
  • 전도서 1:2; 12:8; 12:13; 창세기 4:2, 마소라 본문 (헤벨 용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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