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451년 칼케돈 공의회 —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정의한 날, 교회는 갈라졌다
니케아(325년)와 콘스탄티노플(381년)은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렸다. 그런데 더 까다로운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라면, 그 신성과 인성은 한 인격 안에서 대체 “어떻게” 결합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던 시도가 도리어 교회를 갈라놓았다면 믿어지는가. 451년 칼케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강도 회의” — 칼케돈 이전의 혼란
칼케돈보다 2년 앞선 449년, 에베소에서 열린 공의회는 같은 질문을 다뤘지만 전혀 다른 결론을 냈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디오스코루스가 좌장을 맡은 이 회의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된다”고 가르친 수도사 유티케스를 복권시키고, 그의 반대자였던 콘스탄티노플 주교 플라비아노스를 폐위시켰다(플라비아노스는 이 회의 중 폭행을 당해 얼마 뒤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의 레오 대교황은 유티케스를 논박하며 보낸 자신의 서신, 이른바 “교서”(Tome of Leo)조차 이 회의에서 낭독이 거부됐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는 이 회의를 라틴어로 “라트로키니움”(latrocinium), 곧 “강도 회의”라 불렀다. 이 판정은 2년 뒤 완전히 뒤집힌다.
칼케돈의 답 — “혼합없이, 변함없이, 나뉨없이, 분리됨없이”
450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낙마 사고로 죽자 국면이 바뀌었다. 그의 누이 풀케리아와 새 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즉위했고, 마르키아누스는 451년 칼케돈에서 새 공의회를 소집했다. 사료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대체로 500~600명대의 주교가 모인, 그때까지 가장 큰 규모의 공의회였다. 이번에는 레오의 교서가 낭독되고 토론을 거쳐 공의회의 신학적 토대로 채택됐다. 칼케돈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닌 “한 인격, 한 위격”이며, 두 본성이 “혼합없이(without confusion), 변함없이(without change), 나뉨없이(without division), 분리됨없이(without separation)” 결합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 네 표현은 사실 양극단을 동시에 겨냥한다. “혼합없이·변함없이”는 두 본성이 뒤섞여 제3의 무언가가 된다고 본 유티케스 계열을, “나뉨없이·분리됨없이”는 그리스도를 사실상 두 인격으로 쪼갰다고 여겨진 네스토리우스 계열의 해석을 함께 배격하는 것이다.
왜 이 정의가 교회를 갈랐는가
문제는 알렉산드리아 자체의 신학 전통이었다. 양측 모두가 권위자로 인정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일찍이 “성육신하신 하나님 말씀의 한 본성”(미아 퓌시스, mia physis)이라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단일성을 강조해왔다. 디오스코루스를 포함한 이 계열은 칼케돈의 “두 본성” 정식이 키릴로스의 언어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실질적으로 둘로 쪼갠다고 받아들였다. 그 결과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정교회, 인도 말랑카라 정교회가 칼케돈을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다. 오늘날 이 여섯 교회를 통틀어 “동방 정교회(Oriental Orthodox)“라 부르는데, 이는 칼케돈을 받아들인 그리스·러시아 정교회 등 비잔틴 계열의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교회군이다. 두 명칭이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비슷해 혼동되기 쉽지만, 신학적 계보와 교회 조직은 451년부터 갈라진 독립된 전통이다.
1,500년, 아직 봉합되지 않은 균열
이 분열은 로마 제국의 정치·교회 지형까지 바꿔놓았을 만큼 파장이 컸고, 놀랍게도 오늘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화해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브리스톨(1967년)·제네바(1970년)·아디스아바바(1971년)의 비공식 대화를 거쳐, 1989년 이집트 성 비쇼이 수도원에서 열린 1차 합의에 이어, 1990년 스위스 제네바 인근 샹베시(Chambésy)에서 열린 정교회-동방정교회 공동위원회 2차 합의에서 양측은 “동일한 정통 그리스도론 신앙을 각기 다른 용어로 충실히 지켜왔다”는 공동 선언에 합의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도 같은 시기 콥트·시리아 정교회 등과 유사한 그리스도론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신학적 합의는 성찬 교류를 포함한 교회 조직의 완전한 일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두 교회군은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갈라선 채로 남아 있다.
참고 자료
- Richard Price and Michael Gaddis, trans., The Acts of the Council of Chalcedon, 3 vols. (Liverpool University Press, 2005)
- Leo I, Tomus ad Flavianum (Epistle 28), 449
- W. H. C. Frend, The Rise of the Monophysite Movement: Chapters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in the Fifth and Sixth Centuri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2)
-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Vol. 1: The Emergence of the Catholic Tradition (100–60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1)
- Joint Commission of the Theological Dialogue between the Orthodox and Oriental Orthodox Churches, “Second Agreed Statement” (Chambésy,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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