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 전통을 다 버리자는 말이 아니었다
‘오직 성경’은 오늘날 개신교 정체성을 요약하는 대표적인 표어다. 흔히 말하는 종교개혁의 ‘5대 솔라’도 이러한 주제들을 후대에 묶어 정리한 표현이지, 16세기 개혁자들이 하나의 다섯 항목 선언문을 함께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직 성경은 신조와 공의회, 신앙의 스승들에게 아무 권위도 없다는 뜻일까. 루터와 칼빈의 실제 글을 읽으면 더 세밀한 구분이 보인다.
오늘날의 통념과 원래 의미 사이의 간극
결론부터 말하면, 이 통념은 루터와 칼빈이 의도한 솔라 스크립투라와 거리가 있다. 루터와 칼빈은 교회의 전통·교황의 교령·공의회의 결정을 성경에 의한 교정 너머에 두는 것으로 자신들이 이해한 권위 주장에 반대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을 설명하는 말이며, 가톨릭의 자기 이해를 중립적으로 요약한 문장과는 구별해야 한다. 루터가 1521년 보름스 의회에서 “성경이나 명백한 이성으로 내가 설득되지 않는 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거부한 것은 교황과 공의회가 성경과 무관하게, 심지어 성경에 반해서까지 최종 권위를 행사하는 구조였지, 신조나 교부의 가르침 자체가 아니었다.
가톨릭은 이 관계를 다르게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Dei Verbum) 10항은 교도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섬긴다고 말하며, 성경·성전·교도권의 상호 연관을 강조한다. 양쪽의 차이는 실제적이지만 ‘가톨릭은 전통을 성경 위에 둔다’만으로 그 차이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최종 권위”라는 뜻 — norma normans
이 구분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라틴어 신학 용어가 “norma normans”(규범을 규정하는 규범)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교의학』(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2권, Baker Academic, 2003)에서, 개혁파 정통주의가 성경을 “규범을 규정하는 규범”(norma normans)으로, 신조·신앙고백·교부들의 가르침을 “규정된 규범”(norma normata) — 곧 성경에 종속되지만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한 2차적 규범 — 으로 구분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신조는 폐기 대상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최종 심판대 아래서 계속 참조되는 권위 있는 안내서였다. 성경이 신조를 판단할 수 있지만, 신조가 성경과 무관하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루카스 크라나흐(대) 공방, 1529년 유화 · 우피치 미술관(피렌체) ·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보름스 의회에서 “성경이나 명백한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 한” 철회할 수 없다고 선언한 루터는, 그럼에도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을 평생 존중했다.
이 구분이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루터와 칼빈의 실제 저작에서 확인된다. 루터는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을 평생 존중했고, 자신의 교리문답에서 사도신경을 근간으로 삼아 신앙의 기본 틀을 가르쳤다. 칼빈 역시 『기독교강요』 전반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교부들을 수백 차례 인용하며 자신의 논증을 전개했고, 초대 교회 공의회들의 삼위일체론·기독론 정식을 정통 신앙의 유효한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 모두 “성경만 있으면 신조는 필요 없다”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 오히려 신조와 전통이 성경을 올바로 읽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라고 보았다.
매티슨의 구분 — 솔라 대 솔로
이 원래의 솔라 스크립투라가 후대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학자가 키이스 매티슨(Keith A. Mathison)이다. 그는 『The Shape of Sola Scriptura』(Canon Press, 2001)에서, 오늘날 일부 복음주의권에 퍼진 “성경만 있으면 된다, 신조나 전통은 불필요하다, 각 개인이 아무런 해석 전통 없이 성경을 직접 읽어내면 된다”는 태도를 종교개혁자들의 솔라 스크립투라와 구분해 “솔로 스크립투라”(solo scriptura) 또는 “누다 스크립투라”(nuda scriptura, “벌거벗은 성경”)라고 명명했다. 매티슨에 따르면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이 경계했던 개인주의적 해석 태도에 더 가깝다. 교회의 신조·공의회·해석사를 무시한 채 “나와 성경만 있으면 된다”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지키려 했던 교회적 성경 읽기와 충돌한다.
전통과 성경의 건강한 관계
이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일은 단순히 용어를 바로잡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최종 권위를 지키면서도 교회가 축적해 온 신조와 해석의 역사를 존중하는, 균형 잡힌 읽기 방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신조는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함께 읽어온 교회 공동체의 축적된 지혜였다.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교회사 2000년을 통째로 건너뛰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논박했던 태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디디모랩은 교리와 성경 해석의 역사를 함께 살피는 설교 준비 자료집을 제공한다.
참고자료
- Keith A. Mathison, The Shape of Sola Scriptura (Canon Press, 2001).
-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Vol. 2: Holy Scripture: The Cognitive Foundation of Theology (Baker Academic, 2003)
- Martin Luther, 보름스 의회 진술 (1521), Luther’s Works 32:112–113; 역사학자 Matthew Phillips의 인용 자료.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 Second Vatican Council, Dei Verbum 10 (1965).
댓글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도 있어요
성경, 알고 보니
원죄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과 동서방의 차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를 설명하는 언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서방을 비교하려면 교리의 연대와 유전된 상태, 개인의 잘못을 구별해야 한다.
성경, 알고 보니
연옥은 언제 하나의 장소로 그려졌을까
중세의 연옥 지리와 사후 정화 신앙은 같은 시기에 시작되지 않았다. 교리의 형성과 오늘날 가톨릭의 설명을 구별해 살펴본다.
성경, 알고 보니
비밀 휴거는 1,800년 교회에 없던 개념이었다
살전 4:17의 '공중에서 주를 영접'은 초대교회부터 알려진 본문이지만, 이것을 가시적 재림과 분리된 비밀 사전 사건으로 읽는 전환난 휴거 시나리오는 1830년대 존 넬슨 다비의 세대주의 신학에서 처음 등장한 근대적 제안이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