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정원 무덤과 성묘교회 — 고고학이 더 신뢰하는 쪽은 어디인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개신교 순례객 상당수가 “정원 무덤(Garden Tomb)“을 찾는다. 다마스쿠스 문 북쪽, 조용한 동산 안의 바위 동굴 무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눈물 흘린다. “이곳이 예수님이 묻히신 자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이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하게, 그리고 증거를 가지고.
정원 무덤의 기원
이 장소가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1883년에 시작됐다. 영국 군인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 장군이 다마스쿠스 문 북쪽의 암벽이 두개골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이 일대를 골고다(해골의 곳)로 지목했고, 근처의 동굴 무덤을 요한복음 19:41의 “동산 안 새 무덤”으로 주장했다. 이것이 개신교 순례 문화에서 “고든의 갈보리(Gordon’s Calvary)“와 “정원 무덤”으로 자리잡은 계기다.
Freres 촬영 ·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장군 초상 · c. 1880년대 · Public Domain. 1883년 “정원 무덤”을 예수님의 매장지로 처음 주장한 영국 군인.
고든의 주장은 성경 본문 읽기에서 나온 것이었지, 고고학 발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후 이 장소를 실제로 학술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고고학의 답
이스라엘 고고학자 가브리엘 바르카이(Gabriel Barkay)는 1986년 학술지 Biblical Archaeology Review에 발표한 논문에서 정원 무덤의 내부 구조를 상세히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분명했다: 이 무덤의 내부 배치—삼면 벽 쪽에 배치된 낮은 벤치와 낮은 진입로—는 1세기 유대식 무덤이 아니라 철기시대 II, 즉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사이의 무덤 양식이다.
요한복음 19:41은 이 무덤을 “새 무덤”이라고 명시한다. 그런데 정원 무덤의 고고학적 연대는 예수님의 죽음보다 약 700~900년 앞서 있다. “새 무덤”이 되기에는 너무 오래된 무덤이다.
신약학자 제롬 머피-오코너(Jerome Murphy-O’Connor)는 예루살렘 고고학 안내서(The Holy Land: An Oxford Archaeological Guide)에서 정원 무덤에 대해 “그리스도가 매장된 곳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전 예루살렘 도시 고고학자 단 바하트(Dan Bahat)도 같은 해 동일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같은 결론에 이른다.
성묘교회 쪽의 증거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무덤과 골고다로 여겨지는 장소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다. 이 부지에 대한 역사적·고고학적 증거는 여러 층위에서 축적돼 있다.
우선 로마 측 기록이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135년에 예루살렘을 로마식 식민 도시(아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하면서 이 부지에 비너스 신전을 세웠다. 로마인이 기독교 성지를 이교 신전으로 덮으려 한 것—오히려 이것이 그 장소의 기억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역설적 증거다. 바하트는 이 패턴을 주목한다: 적이 지워버리려 했던 곳이 진짜 장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David Roberts 화·Louis Haghe 석판 ·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예루살렘 · c. 1843 · Public Domain. 19세기 화가의 묘사이며 교회 현재 외관과 세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325년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가 이 신전을 허물고 아래에서 무덤을 찾아냈다. 에우세비우스가 그 발굴 과정을 기록했다. 이로부터 성묘교회 건설이 시작됐다. 바하트의 발굴은 이 부지에서 1세기 이전의 채석장과 무덤군을 확인했다—1세기 예루살렘의 외벽 바깥쪽에 위치한 무덤 지역이었다는 것, 즉 요한복음 19:41의 조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정직한 결론
성묘교회 쪽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증거를 갖는다는 데 대해 성서 고고학자들 사이에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하트 자신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이 부지가 확실히 맞다”는 최종 고고학적 확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고학이 역사적 가능성과 설득력을 말해줄 수는 있지만, 특정 장소가 2천 년 전 특정 사건의 현장이라는 것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은 그 성격상 불가능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정원 무덤 협회(Garden Tomb Association)의 공식 입장이다. 이들은 현재 “우리는 이 무덤이 부활의 장소라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장소에서의 예배와 묵상을 장려하지만, 고고학적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어느 부지에서 기도드리든 부활의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것이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증거를 직면하면서도 신앙이 선다는 것이 더 단단한 믿음의 자리다.
참고 자료
- Gabriel Barkay, “The Garden Tomb: Was Jesus Buried Her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2/2 (March/April 1986): 40–57
- Dan Bahat, “Does the Holy Sepulchre Church Mark the Burial of Jesu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2/3 (May/June 1986): 26–45
- Jerome Murphy-O’Connor, The Holy Land: An Oxford Archaeological Guide from the Earliest Times to 1700, 5th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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