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고고학자들이 찾은 오디세우스의 신전 — 이것이 신약과 무슨 상관일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국내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기며 화제인 가운데, 같은 해 봄 그리스에서는 실제 오디세우스 숭배의 흔적이 땅속에서 나왔다. 이타카 섬 북쪽, 19세기부터 “호메로스의 학교”로 불려온 아기오스 아타나시오스 유적에서, 2018년부터 발굴을 이어온 명예교수 얀노스 롤로스(Giannos G. Lolos) 팀이 오디세우스의 이름이 새겨진 지붕 기와와 청동 소상(小像)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 발견은 성서고고학 뉴스는 아니다. 그런데도 신약을 읽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가 있다.
세이렌 화가(Siren Painter),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기원전 480~470년경 아티카 적색상 스탐노스 — 영국박물관(GR 1843.11-3.31). Public domain.
무엇이 나왔나
세 개의 기와 조각에 오디세우스의 이름이 도장으로 찍히거나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오디세우스의 것”으로, 다른 하나는 “오디세우스에게”로 번역되는 문구다 — 신이나 영웅에게 바치는 봉헌물에 흔히 쓰이는 형식이다. 롤로스 교수는 이 기와들과 봉헌 문구, 청동 소상을 두고 이곳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오디세이온(Odysseion)’, 즉 오디세우스를 기리는 영웅 사당이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아키올로지(Archaeology)> 매거진 2026년 5·6월호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사당의 존재는 이미 문헌으로도 뒷받침돼 있었다 — 소아시아 마그네시아에서 나온 기원전 2세기 결의문에 오디세이온과, 그를 기리는 체육·문화 경기 ‘오디세이아’가 함께 언급되어 있다.
물론 이 발굴이 오디세우스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고고학자들도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이 발견이 보여주는 것은 신화 속 인물이 지역 공동체에서 오랜 세월 실제로 예배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영웅 숭배를 전공한 고고학자 카를라 안토나치오는 자신의 저서 「선조들의 고고학: 초기 그리스의 무덤 숭배와 영웅 숭배」(1995)에서 이런 ‘영웅’을 특정 지역과 결부된 반신적(半神的) 존재로 정의한다 — 그의 무덤이나 연고지로 여겨지는 곳에 사당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제의가 열리는 방식으로 숭배됐다는 것이다. 이타카에서 나온 기와는 정확히 이 정의에 들어맞는 물증이다.
이것이 신약과 만나는 지점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발견은 그레코-로만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신약 본문과 맞닿는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치자 무리가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부르며 제사장까지 데려와 제사를 드리려 한 장면(행 14:11-13)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이 그럴듯하게 읽히려면, 신화 속 영웅이나 신이 실제 제단과 사제와 봉헌 절차를 갖춘 지역 신전에서 예배받는 세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타카에서 나온 기와가 바로 그 세계의 물증이다 — “오디세우스에게”라고 새긴 기와를 굽고 봉헌하던 사람들의 손은, 무리를 몰고 나와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물을 바치려던 루스드라 사람들의 손과 같은 종교적 습관 속에 있었다.
지역 전설 속의 제우스와 헤르메스
루스드라 사람들이 하필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 8권(611-724행)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사람의 모습으로 프리기아 지역을 찾아왔지만 어느 집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다가 가난한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집에서만 환대받았다는 전설을 전한다. 루스드라는 바로 이 프리기아와 맞닿은 리카오니아 지역에 있었다. 이 전설이 그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면,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의 기적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14:11)고 외친 반응은 막연한 미신이 아니라, 지난번처럼 신을 몰라보고 홀대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구체적인 지역 정서였던 셈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공방,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집에 온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 1620~1625년경 — 빈 미술사박물관. Public domain (PD-Art).
아덴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이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고 말할 때 전제하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도시마다 저마다의 영웅과 신을 모신 제단이 촘촘히 들어차 있고, 그 봉헌 문화가 도시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놓고 실용적인 목회 지침을 내려야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 이런 지역 숭배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시장에서 파는 고기 한 점까지 얽혀 있는 생활 종교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경로 지도(구브로·밤빌리아·비시디아·루스드라 포함) — 「Oxford and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cts of the Apostles」(1894). No known copyright restrictions.
배경을 안다는 것
이타카의 오디세이온은 신약 본문이 아니다. 하지만 신약이 쓰인 세계의 종이 위가 아니라 흙 속에서 나온 조각이라는 점에서, “온 성이 소동하니”(행 19:29) 같은 구절 뒤에 있던 구체적인 풍경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관에서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보고 나온 관객이 다음 주일 사도행전 본문을 펼친다면, 그 사이의 거리는 우리 생각보다 가까울지 모른다 — 둘 다 같은 지중해, 같은 신전과 제단이 늘어선 세계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Giannos G. Lolos 발굴팀 발표, Archaeology 매거진 2026년 5·6월호, “Odysseus’ Original Fan Club”
- Carla M. Antonaccio, An Archaeology of Ancestors: Tomb Cult and Hero Cult in Early Greece (Lanham: Rowman & Littlefield, 1995)
- Ovid, Metamorphoses 8.611-724 (필레몬과 바우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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