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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에덴동산을 왕의 정원과 성소의 이미지로 읽기

에덴동산이라고 하면 대개 순진무구한 목가적 풍경을 떠올린다. 강이 흐르고, 나무마다 열매가 맺히고, 사람이 짐승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노니는 곳. 그런데 성경 자체가 에덴동산을 그렇게만 읽지 않는 대목이 있다. 에스겔 28장이다. 그곳에서 에덴은 목가적 풍경이 아니라 왕의 형상과 결부된다.

두로 왕에 대한 애가, 그런데 왜 에덴인가

에스겔 28장은 두로 왕에 대한 애가(哀歌)다. 예언자는 두로 왕의 교만을 책망하면서 뜻밖의 이미지를 끌어온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었도다”(겔 28:13). 이어지는 구절은 그를 “덮는 그룹”(겔 28:14)으로, 즉 성소를 지키는 천상적 존재의 지위에 놓인 인물로 묘사한다.

왜 이방 왕을 책망하면서 에덴동산을 끌어오는가? 이를 이해하는 한 방법은 에덴을 하나님의 임재와 왕권 이미지가 연결되는 공간으로 읽는 것이다. 예언자는 두로 왕의 몰락을 묘사하기 위해 에덴에 있던 원초적 존재의 추락이라는 익숙한 틀을 사용한다. 창세기의 독자에게는 아담의 추락이, 에스겔의 독자에게는 왕의 추락이 같은 이미지 위에서 겹쳐지는 것이다. 이는 성경 자체가 에덴동산 모티프를 왕권 이미지와 결부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왕실 정원의 정치적 의미

이 연결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근동에서 ’정원’은 흔히 왕권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상징이었다.

아시리아의 왕들, 특히 산헤립은 니느웨의 궁전에 정교한 정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지에서 진귀한 식물을 옮겨 심고 관개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먼 지역에 대한 영향력과 기술, 왕실의 부를 드러냈다. 이런 정원은 권력과 풍요를 눈에 보이게 표현했으며, 정원의 정치적 상징을 연구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아시리아 궁전 정원 부조, 니네베 출토, 주전 645-640년경, 대영박물관 소장 아수르바니팔 북궁(Room S) 정원 부조의 일부. 나무와 새가 있는 정원 사이로 경비병이 서 있는 장면 — 니느웨 출토, 석고, 주전 645-640년경 · 대영박물관 소장 · 사진: Allan Gluck · CC BY 4.0 · 커먼즈 원본.

여기에 더해, 신전 정원은 신성한 공간, 곧 성소의 상징으로도 기능했다. 신전 경내에 조성된 정원은 신이 거하는 공간이 곧 생명과 풍요의 원천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왕실 정원과 신전 정원이 공유하는 이 상징 체계 안에서, 에스겔이 에덴을 왕의 형상과 연결하는 것은 결코 자의적인 비유가 아니라 고대 근동 독자에게 낯설지 않은 관념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작하다’와 ‘지키다’ — 제사장의 언어

이 왕권-성소 연결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단서가 창세기 2장 안에 있다. 15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신 목적을 두 개의 히브리어 동사로 서술한다. 아바드(עָבַד, ‘경작하다’ 또는 ‘섬기다’)와 샤마르(שָׁמַר, ‘지키다’ 또는 ‘보호하다’)다.

이 두 단어는 농사와 관련된 일상 어휘로도 쓰이지만, 성경 다른 곳에서는 성막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도 나타난다. 민수기는 레위인이 성막에서 “봉사하며”(아바드) “지키는”(샤마르) 임무를 반복해서 서술한다(민 3:7-8; 8:26; 18:5-6 등). 즉 창세기 2:15에서 아담에게 부여된 임무를 묘사하는 바로 그 두 동사가, 후대 이스라엘의 제의 제도 안에서는 성소를 섬기고 지키는 제사장적 직무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이런 언어적 겹침을 근거로 여러 학자는 에덴동산을 원형적 성소(archetypal sanctuary)로, 아담을 그 안에서 섬기고 지키는 제사장-왕적 인물로 읽는다.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에덴동산 이야기에 나타나는 성소 상징을 다룬 논문에서 에덴의 지리적·제의적 요소들이 훗날의 성막·성전 구조와 상응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테르예 스토르달렌(Terje Stordalen)은 히브리 성경 전반에서 에덴동산 모티프가 남긴 흔적을 추적하면서, 에덴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학적 상상력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상징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연결은 두 개의 전문 용어가 제공하는 확증이라기보다 여러 상징을 함께 읽는 해석이다. 아바드와 샤마르는 일상적 용례도 많은 동사이므로, 그것만으로 아담의 제사장직을 증명할 수는 없다. 에스겔 28:14에도 본문과 번역의 문제가 있다. 그 인물을 그룹으로 읽는 번역과 그룹과 함께 있었던 인물로 읽는 번역이 나뉜다. 왕실 정원 해석 전체를 이 논쟁적 한 구절에 의존시켜서는 안 된다.

이 배경이 본문을 더 깊이 읽게 해준다

이렇게 놓고 보면 창세기 2-3장과 에스겔 28장은 서로 멀리 떨어진 본문이 아니라, 같은 상징 체계를 공유하는 하나의 신학적 그물망 안에 있다. 이 해석에서 에덴동산은 왕권의 이미지와 성소의 성격을 함께 지닌 공간으로 읽힌다. 아담의 농사일에 위임된 직무라는 상징적 차원을 더해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창세기 본문이 아담에게 제사장-왕이라는 직함을 직접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직무를 저버렸을 때 찾아오는 추방은, 에스겔 28장에서 두로 왕이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취하려다 성소에서 쫓겨나는 것과 같은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

왕실 정원의 이미지와 성소 봉사의 언어는 아담에게 맡겨진 책임을 탐구하는 한 방법을 제공한다. 에스겔의 두로 왕 애가와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동산 이야기의 상징적 차원을 이렇게 살피면서, 각각의 연결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구체적인 본문 증거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디디모랩(https://didymuslab.com)은 이런 고대 근동 배경 연구와 원어 분석을 포함한 설교 준비 자료집을 CC-BY·CC0·PD 학술 자료만으로 만들어 제공한다.

참고자료

  • Terje Stordalen, Echoes of Eden: Genesis 2-3 and Symbolism of the Eden Garden in Biblical Hebrew Literature (Leuven: Peeters, 2000)

  • Gordon J. Wenham,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Proceedings of the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9/A (1986): 19-25

  • 에스겔 28:11-19; 창세기 2:8-15; 민수기 3:7-8; 8:26; 18:5-6

  • British Museum, “Paradise on earth: the gardens of Ashurbani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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