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십계명의 두 돌판이 필요했던 이유 — 고대 조약 문서로 읽는 출애굽기
하나님이 두 장의 돌판에 십계명을 쓰신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은 “내용이 많아서” 또는 “하나님 관계 계명과 이웃 관계 계명을 나눠서”라고 답한다. 어느 쪽이든 두 돌판은 하나의 계명 목록을 단순히 둘로 나눈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성경학자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Kline)은 고대 근동 문서 연구에서 전혀 다른 설명을 제안했다. 이 가설은 영향력 있는 학설로 자리 잡았지만, 동시에 모든 학자가 채택하는 것도 아니다.
Rembrandt van Rijn · Moses with the Ten Commandments(십계명을 든 모세), c. 1659 · Public Domain · Gemäldegalerie, Berlin. 이 작품은 성경 장면에 대한 화가의 상상화이며, 사건에 대한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수즈레인 조약
기원전 2천 년대부터 1천 년대 사이, 히타이트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은 속국과 조약을 맺을 때 일정한 형식을 따랐다. 이른바 수즈레인 조약(suzerainty treaty, 종주권 조약)이다. 강국(수즈레인, 종주)과 약소국(봉신국) 사이에 체결된 이 조약에는 서문, 역사적 서술, 계약 조항, 축복과 저주, 증인 목록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관행이 하나 있었다. 동일한 조약 내용을 두 부 작성해, 하나는 종주국 신전에, 다른 하나는 봉신국 신전에 보관했다. 각자의 신 앞에 보관함으로써 조약의 법적 구속력을 신성화한 것이다.
클라인은 1960년 논문 “언약의 두 돌판”(The Two Tables of the Covenant)에서 이 관행에 주목했다. 같은 해 출간한 저서 『위대한 왕의 조약』(Treaty of the Great King)에서 그는 신명기 전체가 이 수즈레인 조약 형식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음을 보였다. 전문, 역사 서술, 계명, 축복과 저주, 증인 조항이 히타이트 조약 문서의 구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틀에서 보면 십계명은 단순한 계명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수즈레인)과 이스라엘(봉신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 문서 자체다.
두 돌판 = 두 사본?
클라인의 핵심 제안은 이것이다. 수즈레인 조약의 관행대로, 두 돌판은 서로 다른 내용을 담은 분리된 계명 목록이 아니라 동일한 내용의 두 사본이라는 것. 하나는 하나님 측 보관본, 하나는 이스라엘 측 보관본이다.
이 틀에서 신명기 10장 2-5절이 새롭게 읽힌다. 모세는 두 번째 돌판을 받은 뒤 “그것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다”고 기록한다(신 10:5). 두 돌판 모두 언약궤 안에 보관된 것이다. 일반적인 수즈레인 조약이라면 두 사본은 각각 종주국과 봉신국 신전에 따로 보관되어야 한다. 왜 두 사본이 같은 장소에 있는가? 클라인의 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종주국과 봉신국이 실질적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상황이므로 두 보관본이 모두 같은 성소에 있게 된다. 언약궤는 단순히 법 조항을 담은 상자가 아니라, 조약의 신성한 저자가 거하시는 왕좌의 의미를 가진다.
이 가설은 통상적인 두 설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내용 분량” 설명으로는 왜 하나님이 정확히 두 판에 나눠 쓰셨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하나님 계명/이웃 계명 분리” 설명은 성경 본문이 명시하지 않는 구분을 독자가 도입하는 것이다. 반면 클라인의 틀은 문서 형식 자체에서 이유를 찾는다.
합의가 아니라 가설
이 해석이 영향력 있다는 사실은 신명기 연구에서 폭넓게 인정된다. 그러나 모든 학자가 클라인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 성경 본문 어디에도 두 돌판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명시적 언급이 없다. 많은 주석가는 두 돌판을 분량 문제나 내용 분리로 이해하는 방식을 유지한다. 수즈레인 조약 형식이 신명기와 유사하다는 클라인의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두 돌판 = 두 사본”이라는 구체적 결론에 대해서는 가설 단계에서 유보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클라인의 작업이 열어놓은 독법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십계명을 처음 받은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 조약 문화 안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두 돌판을 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법 조항 목록을 한 세트 받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대왕(하나님)과의 언약을 체결한 것으로 이해했을까? 수즈레인 조약 형식으로 읽으면, 십계명은 의무 목록이기 이전에 관계의 선언이다.
참고 자료
- Meredith G. Kline, “The Two Tables of the Covenant,”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22 (1960): 133–146
- Meredith G. Kline, Treaty of the Great King: The Covenant Structure of Deuteronomy (Eerdmans, 1963)
- 출애굽기 31:18; 신명기 10:1–5, 마소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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