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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

성서 해석으로서의 성화: 간음한 여인(요한복음 8장), 네 화가의 시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장 1~11절,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이야기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 율법(레위기 20:10)대로 돌로 쳐야 하는지 묻습니다. 대답에 따라 예수님을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궁지에 몰 수 있는 함정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시고, 침묵 끝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십니다. 고발자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둘 자리를 뜨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이 본문(요 7:53–8:11)은 파피루스 66, 75번이나 시내산 사본·바티칸 사본 같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신약 사본들에는 나오지 않고, 이후 서방 사본 전통(베자 사본 등)에서부터 등장해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비평상 후대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자주, 가장 강렬하게 그려진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화가들은 무엇에 이끌렸을까요? 그리고 시대마다 무엇을 다르게 보았을까요?

르네상스 — 티치아노,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c. 1508–1510년경)

티치아노,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c. 1508–1510년, 켈빙그로브 미술관(글래스고) 소장 티치아노(귀속),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c. 1508–1510년 — 켈빙그로브 미술관(글래스고).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

티치아노가 20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현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켈빙그로브 미술관에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그림의 화가가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조르조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로마니노 등 여러 화가에게 번갈아 귀속되었다가 현재는 티치아노의 초기작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입니다. 누가 그렸는지조차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온 셈입니다.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구도로, 인물들이 화면 앞쪽 가까이 반신상으로 배치되어 관람자와 거의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합니다. 극적인 몸짓이나 소란스러운 군중 대신,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과 시선에 집중하게 만드는 초상화적 접근입니다. 여인은 수치심에 짓눌리기보다는 담담한 얼굴이고,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는 동작 중입니다. 르네상스 회화가 이 사건을 심리적 순간의 정지 화면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너리즘 — 피터르 브뤼헐 1세, 그리자유 (1565)

피터르 브뤼헐 1세,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1565년, 코톨드 갤러리(런던) 소장 피터르 브뤼헐 1세,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그리자유), 1565년 — 코톨드 갤러리(런던).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

브뤼헐이 단색조(그리자유) 기법으로 작은 패널에 그린 이 작품은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 있습니다. 그리자유는 회화를 마치 돌에 새긴 부조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으로, 이 장면에 어딘가 기념비적이고 정적인 느낌을 부여합니다.

브뤼헐은 평소 농민의 풍속을 익살스럽고 현실적으로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이례적으로 여인을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예수님이 몸을 굽혀 땅에 글을 쓰는 순간, 고발자들이 하나씩 흩어지는 서사의 시간 경과 자체가 화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1982년 도난당했다가 1992년에 회수된 이력이 있습니다 — 그림의 운명 자체도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바로크 — 렘브란트,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1644)

렘브란트,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1644년, 내셔널갤러리(런던) 소장 렘브란트 판레인,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1644년 — 내셔널갤러리(런던).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

렘브란트의 이 작품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습니다. 바로크 회화의 특징인 극명한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이 이 장면에서 신학적 장치로 쓰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여인만 빛 가운데 있고, 나머지 군중은 어두운 실루엣 속으로 물러나 있습니다.

여인은 화면 중앙 전경에서 몸을 낮춘 채 수치심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흰 옷이 고발자들의 어두운 옷과 대비됩니다. 렘브란트는 빛의 위계를 통해 “누가 심판대에 서 있고 누가 자비 안에 있는가”를 구도만으로 말합니다. 도덕적 판단이 언어가 아니라 빛과 어둠의 배치로 시각화된 사례입니다.

19세기 사실주의 — 바실리 폴레노프, 「그리스도와 죄인」 (1888)

바실리 폴레노프, 「그리스도와 죄인」, 1888년, 러시아 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장 바실리 폴레노프, 「그리스도와 죄인」, 1888년 — 국립 러시아 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

러시아 이동파(페레드비즈니키) 화가 폴레노프의 이 작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동파는 팔레스타인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정확성을 추구했고, 인물보다 넓은 야외 공간을 화면에 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여인은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나듯 위축된 자세로 배치되어 있어, 관람자가 넓은 군중 속에서 여인을 직접 “찾아야” 하는 구도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여인과 그리스도를 화면 중심에 클로즈업했다면, 폴레노프는 오히려 여인을 주변부로 밀어내면서 “이 여인이 지금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가”를 공간적으로 체감하게 만듭니다.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특유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민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같은 본문, 다른 시대: 종합 비교

네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흐름이 보입니다.

  • 르네상스(티치아노): 인물 개개인의 심리적 초상에 집중 — 사건보다 사람
  • 매너리즘(브뤼헐): 서사의 시간성 — 고발자들이 흩어지는 정적의 순간
  • 바로크(렘브란트): 빛과 어둠의 신학 — 구도 자체가 도덕적 선언
  • 19세기 사실주의(폴레노프): 공간과 사회 — 고립된 개인을 넓은 배경 속에 배치

흥미롭게도 신고전주의나 인상파 화가가 이 장면을 그린 대표작은 뚜렷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인상파는 애초에 종교적 서사화 자체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빛과 색채라는 형식적 실험에 몰두했습니다. 대신 이 장면은 귀스타브 도레가 1866년에 새긴 성경 삽화 판화를 통해 오히려 더 폭넓게 대중화되었습니다. 고급 회화가 아니라 대량 인쇄된 삽화가 이 장면의 “대중적 이미지”를 만든 셈입니다 — 성화의 역사에서 흔히 잊히는 지점입니다.

같은 열한 구절이 화가마다 다르게 읽혔다는 사실은, 결국 성경 해석이 신학자만의 몫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캔버스 앞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할지 고민한 화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 본문을 “주석”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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