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연구
성경 본문 주해 5단계: 주석 없이 먼저 본문과 씨름하는 법
한국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0%가 강해설교를 지향한다고 답했지만, 설교 준비 시 주석(Commentary)에 가장 먼저 손을 뻗는다고 인정하는 비율은 84%에 달합니다. 이 두 수치 사이의 간극이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목회자들이 강해설교를 원하지만, 본문을 직접 파고드는 개인적 석의(exegesis) 방법론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고든 피(Gordon Fee)는 《신약 석의: 학생과 목사를 위한 핸드북》(New Testament Exegesis, Westminster John Knox, 3rd ed.)에서, 더글러스 스튜어트(Douglas Stuart)는 《구약 석의: 학생과 목사를 위한 핸드북》(Old Testament Exegesis, Westminster John Knox, 5th ed.)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합니다. 주석을 열기 전에 먼저 본문과 충분히 씨름해야 한다. 주석은 내가 본문에서 발견한 것을 확인하고 심화하는 도구여야지, 본문 이해 자체를 대신하는 지름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은 주석을 펴기 전에 설교자가 본문에서 직접 캐내야 할 것들을 다섯 단계로 정리합니다.
왜 주석보다 본문이 먼저인가
월터 카이저(Walter Kaiser)는 《설교를 위한 석의신학》(Toward an Exegetical Theology, Baker Academic)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설교자의 유일한 과제는 저자가 기록한 당시에 의도한 바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주석에 먼저 손을 뻗으면, 다른 학자의 관점을 내 귀로 먼저 듣게 됩니다. 그것은 본문이 직접 말을 걸어올 기회를 차단합니다.
고든 피는 좋은 석의의 핵심을 “본문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질문을 먼저 던지지 않으면, 주석이 주는 답변이 마치 내 질문에 대한 답인 양 착각하게 됩니다.
1단계: 관찰 —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
반복해서, 천천히, 여러 번 읽으십시오.
피의 단기 설교 석의 가이드(Short Guide for Sermon Exegesis)는 첫 번째 과제를 이렇게 명시합니다. 더 넓은 문맥을 읽고, 본문 자체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라. 이것은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석의 오류는 본문을 충분히 읽지 않은 데서 비롯됩니다.
장르를 먼저 확인하라
스튜어트는 석의의 초기 범주로 “형태(Form)“를 제시합니다. 본문이 어떤 장르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잘못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내러티브: 플롯·등장인물·시점·아이러니에 주목합니다.
- 서신: 논증의 흐름과 수신자의 구체적 상황에 주목합니다.
- 시편·지혜문학: 병행법, 이미지, 감정의 곡선에 주목합니다.
- 예언서: 심판-구원 패턴과 성취 방식에 주목합니다.
- 복음서: 사건의 배치와 편집 의도에 주목합니다.
구조를 표시하라
단락 경계를 확정하십시오(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가). 그리고 반복되는 단어·구절, 대조(“그러나/하지만”), 결과 접속사(“그러므로/따라서”), 목적 접속사(“위하여/하려고”)에 표시하세요. 이것이 저자의 논리 지도입니다.
핵심 관찰 질문들
- 이 단락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단어·주제는 무엇인가?
- 저자가 대조시키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
- 이 단락의 동사들은 어떤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가?
- 예상치 못한 반전이나 이상한 요소가 있는가?
2단계: 문맥 파악 — 본문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
스튜어트가 구별하는 세 층위의 문맥을 차례로 검토하십시오.
직접 문맥
바로 앞 단락과 뒤 단락을 꼼꼼히 읽으십시오. 이 본문은 앞에서 무엇이 나온 후에 등장합니까? 다음에는 무엇이 옵니까? 설교자들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해석 오류는 한 단락을 문맥에서 분리해 읽는 것입니다.
광범위 문맥
이 책 전체에서 이 단락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고든 피는 큰 구조(large structure)를 먼저 파악하라고 강조합니다. 로마서 8장을 이해하려면 1–7장의 논증 전개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맥락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경 문맥
이 본문은 구속사 전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합니까? 쾨스텐베르거(Andreas Köstenberger)의 ‘해석학적 삼중 축’이 여기서 유용합니다. 역사적·문학적·신학적 문맥이 모두 맞물려야 합니다. 특히 구약 본문을 다룰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3단계: 원어 분석 — 본문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원어를 모르는 목회자도 이 단계를 충분히 실행할 수 있습니다.
번역본 비교로 쟁점 단어 찾기
개역개정, 새번역, NIV, ESV, NASB 등 서너 개의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읽으십시오. 번역이 서로 다른 단어를 선택한 곳에 주목하세요. 그 차이가 바로 원어에서 해석적 판단이 개입된 지점입니다. 그 단어가 바로 핵심 단어입니다.
동사의 시제·태 분석
스튜어트는 “문법 데이터(Grammatical Data)“를 별도 석의 범주로 둡니다. 그만큼 동사 분석이 중요합니다.
- 완료시제(헬라어 perfect): “과거에 완료되어 현재까지 영향이 지속되는” 행위를 뜻합니다.
- 명령형(imperative): 단호한 요청인가, 권고인가를 구분합니다.
- 수동태: 누가 실제 행위의 주체인가를 드러냅니다.
원어를 모른다면 Blue Letter Bible의 스트롱 번호 기능, Logos의 원어 분석 도구, 혹은 HELPS Word Studies를 활용하세요. 이 도구들은 원어 훈련 없이도 핵심 단어의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핵심 단어 심층 연구
카이저는 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 저자 당대의 용법
- 저자가 본문에서 직접 정의하는 방식
- 해당 문맥 안에서의 사용
- 대조적 용법
- 병행 용법
단어 하나에 이 다섯 질문을 던지면, 주석을 펴기 전에도 상당한 깊이에 이를 수 있습니다.
4단계: 해석 —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이 단계에서 처음으로 중심 사상(Big Idea)을 정리합니다.
저자 의도를 확정하라
카이저는 E. D. 허쉬(E. D. Hirsch)의 구분을 따릅니다. **의미(Meaning)**는 저자에 의해 고정되고, **의의(Significance)**는 독자와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석의의 과제는 전자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독자의 공명이나 적용 가능성은 그 다음 작업입니다.
중심 명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
카이저의 “구문-신학적 방법(Syntactical-Theological Method)“의 핵심은 각 단락에서 **주제 명제(Theme Proposition)**를 추출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단락에서 단 하나의 말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예시: 로마서 8장 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 중심 명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서 유죄 선고를 받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이 확정되면 설교의 중심축이 생깁니다.
이제 주석을 여십시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주석을 참고하되, 읽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과 주석의 견해를 비교하십시오. 주석이 제안하는 다른 해석 가능성이 있다면, 그 근거를 검토하세요. 고든 피는 이 과정에서 최소 세 가지 다른 해석을 들어 보라고 권고합니다.
5단계: 적용 — 오늘의 청중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석의는 설교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용은 반드시 석의 이후에 옵니다.
시대 초월적 원리 추출
카이저가 “원리화(Principlization)“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저자의 명제·논증·이야기·예화를 시대를 초월하는 항구적 진리로 재진술하는 것입니다.
- 역사적·문화적 특수성을 제거하면 어떤 보편적 원리가 남는가?
- 이 원리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예시: 빌립보서 4장 11절 — “나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 원리: 만족(contentment)은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형성되는 덕목이다.
현대적 적용으로 나아가기
이 원리가 오늘 내 회중의 구체적 삶의 맥락(결혼·직장·질병·경제적 불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를 물으십시오. 스튜어트는 “모든 석의는 신학적이며, 모든 신학은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적용이 없는 석의는 박물관의 유물과 같습니다.
전체 흐름 요약
| 단계 | 핵심 질문 | 주요 도구 |
|---|---|---|
| 1. 관찰 |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 | 반복 독해, 장르 파악, 구조 표시 |
| 2. 문맥 | 이 본문이 어디에 위치하는가? | 성경 개론, 책 전체 개요 |
| 3. 원어 분석 | 정확히 무슨 뜻인가? | 번역본 비교, 원어 사전 도구 |
| 4. 해석 |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 중심 명제 작성, 주석 비교 검토 |
| 5. 적용 |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 원리 추출, 회중 맥락 분석 |
자주 묻는 질문
Q. 원어(헬라어·히브리어)를 전혀 모르는 목회자도 이 방법을 쓸 수 있나요?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3단계에서 번역본 비교와 Blue Letter Bible, Logos Starter 같은 스트롱 번호 기반 도구를 활용하면 원어 훈련 없이도 핵심 단어의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고든 피도 원어를 모르는 학생과 목회자를 위한 ‘단기 가이드’를 별도로 제시했습니다.
Q. 이 다섯 단계를 다 밟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처음에는 한 본문에 3–5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론이 몸에 배면 1–2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설교를 위한 ‘단기 석의(Exegesis for Preaching)’ 버전을 따로 제공합니다. 전통적 학술 논문용 전체 석의보다 훨씬 압축된 형태입니다. 핵심은 완벽한 학술 석의가 아니라, 본문과 직접 씨름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Q. 주석은 언제 여는 것이 적절한가요?
4단계(해석) 이후가 이상적입니다. 1–3단계에서 내가 본문에서 직접 발견한 것이 충분히 쌓인 다음, 주석을 열어 내 해석을 검증하고 심화하세요. 이렇게 하면 주석을 훨씬 비판적으로, 그리고 생산적으로 읽게 됩니다.
Q. 이 방법이 강해설교에만 적용됩니까?
아닙니다. 주제설교나 강의식 설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제를 다루더라도 각 지지 본문을 이 5단계로 분석하면, 주제를 성경 본문 위에 억지로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주제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설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주석은 위대한 선물입니다. 수백 년에 걸친 학자들의 통찰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든 피와 더글러스 스튜어트가 공통적으로 경고하듯, 주석이 내 본문 읽기를 대체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설교자가 본문과 직접 씨름하지 않으면, 결국 주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다섯 단계는 복잡한 학술 석의 과정을 단순화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을 먼저 사랑하고, 본문과 먼저 씨름하고, 그다음 도움을 구하라는 원리입니다. 그때 주석은 경쟁자가 아닌 대화 상대가 됩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도 있어요
설교 준비
성경 주석,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주석 의존에서 본문 탐구로
한국 목사의 84%가 주석을 주요 설교 자료로 사용합니다(한목협 설문). 주석을 언제,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주석 읽기의 함정도 안내합니다.
방법론
강해설교 작성법: 본문을 충실히 따르는 설교
강해설교(expository preaching)의 의미와 작성 방법을 단계별로 설명합니다. 본문 중심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달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설교 준비
개혁주의 전통으로 설교한다는 것
TULIP을 암기한다고 개혁주의 설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칼뱅에서 채플, 그레이더너스, 로이드 존스까지 — 개혁주의 설교가 무엇인지를 신학적·실천적으로 살펴봅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