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

개혁주의 전통으로 설교한다는 것

한국 교회에서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말은 흔하다. 장로교단 교회 현판에, 신학교 교과목 이름에, 설교 제목에.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늘 따라다닌다. 개혁주의 설교는 무엇이 다른가.

TULIP을 암기하면 개혁주의 설교자가 되는 걸까. 칼뱅을 인용하면 될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혁주의 설교는 특정 교리 목록의 합산이 아니라, 성경을 이해하고 회중에게 전달하는 근본 방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출발한 흐름은 제네바의 칼뱅에 이르러 신학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칼뱅의 핵심 관심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었다. 창조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이 유일한 주권자라는 것.

그 위에서 다섯 개의 기둥이 세워졌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 종교개혁의 다섯 솔라(Five Solas)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신학의 좌표계다.

17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이 이 전통을 집대성했다. 한국의 장로교회들은 대체로 이 전통을 계승하며 스스로를 ‘개혁주의’로 정체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생긴다. 칼뱅주의(TULIP이라는 약어로 알려진 구원론 체계)와 ‘더 넓은 의미의 개혁주의’는 다르다. 더 넓은 개혁주의는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 예배론, 교회론,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관과 설교론을 포함한다. 개혁주의 설교를 이해하려면 이 더 넓은 지형을 봐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의 이야기다

개혁주의 설교를 다른 복음주의 설교와 구별 짓는 첫 번째 원리는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확신이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는 것, 그 이야기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

칼뱅은 구약의 제사와 율법을 설명할 때마다 항상 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주석들은 본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성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통일된 계시라는 확신이 그의 설교 전체를 관통했다.

이 원리를 현대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정식화한 사람이 코버넌트신학교의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이다. 그의 저서 Christ-Centered Preaching(Baker Academic, 2005)은 개혁주의 설교학의 고전이 되었다. 채플은 “타락한 조건 초점(Fallen Condition Focus, FCF)“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모든 성경 본문은 인간의 타락한 조건의 어떤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설교는 그 조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 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FCF 개념은 설교가 도덕적 처방전(moralism)으로 흐르거나 감정 위로(therapeutics)로 얕아지지 않도록 막는 장치다.

구약 설교에서 이 원리를 더 깊이 탐구한 이가 성경신학자 시드니 그레이더너스(Sidney Greidanus)다. 그의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Eerdmans, 1999)는 구약 본문에서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일곱 가지 해석학적 경로를 제시한다 — 예표론, 약속-성취, 유비, 주제 연결, 대조, 신약 인용, 구속사적 진행. 그레이더너스에게 개혁주의 설교란 구속사(redemptive history) 안에서 본문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알레고리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내러티브 안에서 각 본문을 읽는 훈련이다.

율법과 복음: 설교 구조를 결정하는 긴장

개혁주의 설교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축은 율법과 복음의 역동이다. 율법은 우리의 무능과 죄를 드러내고,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을 선포한다.

개혁주의 설교자는 이 긴장을 유지할 줄 안다. 복음 없이 율법만 선포하면 회중은 짓눌린다. 율법 없이 복음만 선포하면 은혜가 값싸게 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이 기독교 신앙을 ‘비참—구원—감사’의 순서로 구조화한 것은 단순한 교육 구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과 설교의 형태를 동시에 담은 것이다.

D.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는 20세기 영어권에서 개혁주의 설교의 가장 강력한 실례였다. 웨일스 출신의 의사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수십 년 이끈 그는 설교를 가리켜 **“불타는 논리(Logic on fire)“**라고 불렀다. 엄밀한 사유와 뜨거운 확신이 하나로 융합된 행위. 그의 로마서·에베소서 강해는 개혁주의 강해설교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불타는 논리」는 그의 저서 《Preaching and Preachers》(Zondervan, 1971)에 나오는 표현이다.)

개혁주의 설교의 실천적 특징 다섯 가지

신학은 강단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1. 본문이 설교를 결정한다

개혁주의 설교는 강해적(expository)이다. 설교자의 주제가 본문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설교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먼저 물어야만, 설교자가 무엇을 선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2. 교리를 피하지 않는다

개혁주의 설교자는 교리를 얕은 물에 담가 전달하지 않는다. 선택, 속죄의 본질, 믿음과 행위의 관계 — 이런 주제들이 강단에서 명료하게 다뤄진다. 지적 명료성은 부담이 아니라 회중을 향한 예의다.

3. 선언(Indicative) 다음에 명령(Imperative)이 온다

개혁주의 설교의 윤리적 요청은 항상 “그러므로”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선언)를 먼저 선포한 후에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명령)를 말한다. 팀 켈러(Tim Keller)는 이를 “복음의 논리(Gospel logic)“라 불렀다. 명령만 있는 설교는 도덕주의가 되고, 선언만 있는 설교는 추상적 감상이 된다.

4.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개혁주의 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회중의 필요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Expository Exultation(Crossway, 2018)에서 설교를 “경배(worship)“로 정의한다. 설교자가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스스로 압도되어, 그 환희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것.

5. 준비는 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

칼뱅은 설교가 효력을 갖는 것은 설교자의 웅변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때문이라고 믿었다. 최선의 준비를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신뢰. 이것이 개혁주의 설교자의 자세다.

나가며

개혁주의 설교는 특정 교단의 상표가 아니다.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를 향한 구속사로 읽고, 율법과 복음의 역동 안에서 회중을 다루며,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설교의 목적으로 삼는 방식이다.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17세기 청교도 목사의 삶을 정리한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or, 1656)에서 한 문장으로 설교자의 자세를 담아냈다. “죽어가는 자로서, 죽어야 할 사람들에게 설교하라(Preach as a dying man to dying men).” 개혁주의 전통이 설교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리의 암기가 아니라, 선포할 것이 있는 사람의 절박함이다.

그 절박함은 신학에서 나온다. 죄인이 은혜로만 구원받고, 구약의 그 모든 약속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면 — 그 소식을 강단에서 밋밋하게 전할 수는 없다.


참고 자료

  • Bryan Chapell, Christ-Centered Preaching: Redeeming the Expository Sermon, Baker Academic, 2005
  • Sidney Greidanus,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A Contemporary Hermeneutical Method, Eerdmans, 1999
  • D. Martyn Lloyd-Jones, Preaching and Preachers, Zondervan, 1971
  • Tim Keller, Preaching: 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 Viking, 2015
  • John Piper, Expository Exultation: Christian Preaching as Worship, Crossway, 2018
  • Richard Baxter, The Reformed Pastor, 1656 (한국어판: 《참된 목자》,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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