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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선악과는 사과였을까, 복숭아였을까 — 성경이 말하지 않은 그 열매

창세기 3장 6절은 하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함직한 나무”라고만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도 그냥 페리(פְּרִי), 즉 “열매”입니다. 사과라는 단어는 본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과 그림을 문 채 있는 아담과 하와의 이미지는 너무나 익숙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익숙함”이 문화마다 다르게 고정됐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은 사과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복숭아를 떠올려 온 역사가 있습니다.

왜 사과가 됐을까 — 실제로는 히에로니무스의 말장난이 아니다

선악과가 사과로 굳어진 계기로 흔히 이런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가 구약을 라틴어로 옮기며 이 열매를 ’사과’를 뜻하는 말룸(mālum)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공교롭게도 라틴어에는 ’악(惡)’을 뜻하는 말룸(malum)이 발음·표기가 거의 같게 존재해서 ’선악과 = 사과’라는 등식이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불가타(Vulgata) 창세기 3장 원문을 확인해보면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히에로니무스는 창세기 3:6, 3:12에서 히브리어 페리(פְּרִי, “열매”)를 malum이 아니라 fructus(열매)로 옮겼습니다. 그가 참고한 이전 라틴어역 베투스 라티나(Vetus Latina) 역시 fructus를 씁니다. 즉 히에로니무스가 창세기 본문 안에 직접 사과-악 말장난을 심은 적은 없습니다. 이는 흔히 인용되지만 성경학계에서는 도시전설(urban myth)로 분류되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말장난의 재료 자체는 실제로 라틴어 안에 있었습니다. 사과를 뜻하는 말룸(mālum, 장모음)과 악을 뜻하는 말룸(mălum, 단모음)은 표기가 동일하고 발음도 거의 구분되지 않는 진짜 동음이의어였습니다. 어원학적으로 둘은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단어지만(mālum은 그리스어 멜론(μῆλον)에서, mălum은 라틴어 고유어에서 왔다는 것이 학계 다수설입니다), 이 우연은 히에로니무스와 무관하게 로마 시대부터 이미 라틴어 안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번역자가 창세기에 말장난을 심었다”는 서사는 후대에 덧붙은 통속 어원(folk etymology)이고, 실제로는 성경 본문이 아니라 이후 중세 라틴어권의 도상 관습과 대중적 어원 이야기가 이 기존의 언어적 우연을 창세기 이야기에 갖다 붙이면서 “선악과 = 사과”라는 등식을 굳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이미지는 뒤러의 1504년 판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등 르네상스 미술을 거치며 서양 문화 전체에 새겨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하와〉 (1504) 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하와〉(1504년 판화) · National Gallery of Art 소장본 · CC0, Wikimedia Commons

미술사를 넘어 언어와 대중문화 속으로

이 언어유희의 힘은 그림 몇 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어에는 아예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는 표현이 남아 목에 튀어나온 후두융기를 가리키는데, 민간 어원에 따르면 아담이 급히 삼키던 금단의 열매 조각이 목에 걸려 남긴 자국이라고 합니다(성경 본문에는 물론 이런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건네는, 반은 하얗고 반은 새빨간 독사과 역시 겉으로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죽음에 이른다는 점에서 같은 상징 계보를 잇습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1964)에서 중절모 쓴 남자의 얼굴을 가리는 초록 사과도, 미술비평에서 종종 창세기의 유혹과 원죄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힙니다.

흥미로운 건 이 흐름이 21세기 로고에서도 뒤집힌 형태로 확인된다는 점입니다. 애플(Apple)사의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를 보고 많은 사람이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자동으로 떠올리지만, 정작 로고를 디자인한 로브 야노프는 이 해석을 여러 차례 명시적으로 부인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베어문 자국은 그저 사과를 체리 같은 다른 둥근 과일과 구분해 작은 크기에서도 알아보기 쉽게 하려는 순전히 실용적인 장치였을 뿐입니다. 즉 애플 로고 자체는 성경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베어 문 사과”라는 형태만 보면 반사적으로 에덴동산을 연상한다는 사실 — 이 자체가 라틴어 말장난 하나가 서양인의 시각적 상상력에 얼마나 깊이 새겨졌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한국은 왜 복숭아를 떠올렸을까

정작 사과는 동아시아의 전통 과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서양 품종 사과는 19세기 말에서야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반면 복숭아는 훨씬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신화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도교 전통에서 서왕모(西王母)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반도(蟠桃)라는 복숭아를 키우는데, 이 열매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합니다. 동방삭이 이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만 팔천 년)를 살았다는 설화는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그러나 먹으면 특별한 능력을 주는 신성한 열매”라는 이미지의 자리에, 한국인의 상상력이 사과보다 먼저 떠올린 과일은 복숭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한국 무속 전통에서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나무로 여겨져 제사상에는 절대 올리지 않습니다. 신성함과 금기가 동시에 들러붙은 과일이라는 점에서, 복숭아는 사과보다 오히려 “선악과”라는 자리에 더 잘 들어맞는 후보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복숭아를 금기시한 종교

이 이미지가 단순한 민간 상상에 머물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박태선이 세운 천부교(옛 전도관)는 신도들에게 돼지고기·장어와 함께 복숭아를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하고 금지했는데, 그 근거가 바로 “창세기의 선악과가 사실은 복숭아”라는 교리적 해석이었습니다. 나무위키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박태선은 이 믿음에 따라 복숭아밭을 통째로 사들여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고도 전해집니다. (다만 이 구체적 일화는 나무위키류 기록 외에 별도의 언론·학술 출처로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해, 정설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전해진다” 정도로 소개합니다.) 안상홍 역시 1976년 《선악과와 복음》이라는 책을 따로 써서 인간이 왜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는지를 다뤘을 만큼, 한국 신흥종교사에서 “선악과의 정체”는 결코 가볍게 지나간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

정리하면, 성경 본문 자체는 열매의 식물학적 정체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창세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먹지 말라”는 명령과 그것을 어긴 불순종이지, 그 열매가 사과인지 복숭아인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본문에 없는 빈칸을, 각자에게 가장 익숙한 “특별한 열매”의 이미지로 채워 넣었다는 사실입니다. 사과든 복숭아든, 그건 번역과 신화가 본문 위에 덧입힌 상상력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굳어진 이미지를 걷어내고 본문과 원어가 실제로 말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일은, 설교 준비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자주 건너뛰는 단계입니다. 디디모랩은 본문의 원어 주해와 고대 근동·유대 배경, 학술 자료를 근거로 이런 통념을 하나씩 점검한 자료집을 만들어 드립니다. didymuslab.com에서 확인해보세요.

참고 자료

  • 창세기 3:6 (히브리어 원문 페리 פְּרִי)
  • 히에로니무스, Biblia Sacra Vulgata, 창세기 3:6, 3:12 — malum이 아닌 fructus 사용 확인 (불가타 원문)
  • 사과와 무화과의 원산지와 선악과(mālum)의 의미 변용에 대한 어원학적 고찰, DBpia/KCI 논문
  • 그림 형제, 《백설공주》(초판 1812, 최종판 1854)
  • 애플사 로고 디자이너 로브 야노프(Rob Janoff) 인터뷰 관련 보도(BGR 등)
  • 경향신문, “[종교와 음식] (34) 도교와 복숭아”, 2017. 11. 9.
  • 자본시장뉴스, “[기획] 신앙과 자본 (7) 전도관(현 천부교) 박태선, 신앙촌으로 구축한 폐쇄형 경제 공동체”
  • 나무위키, “천부교” 항목 (복숭아=선악과 교리 및 복숭아밭 매입·벌목 서술)
  •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선악과와 복음”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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