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다 — 그렇다면 누가 만들었을까
교회에서 자주 고백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표현. 그런데 이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것이 교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실인가? 아니면 교리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인가? 그 답을 얻으려면 이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
성경은 아버지·아들·성령을 함께 언급하는 구절들을 곳곳에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셨다. 고린도후서 13:13은 세 분이 함께 언급되는 삼중 축도로 끝난다. 에베소서 2:18은 성도들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을 아들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이 셋은 성경 안에서 함께 등장하고, 함께 역사하고, 함께 예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셋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단어—“삼위일체(Trinity, Trinitas)“—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단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
이 라틴어 용어 Trinitas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는 사람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의 신학자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c. 155–240 CE)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정력적인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의 저술 “프라크세아스 반박(Adversus Praxean, c. 213–218 CE)“은 양태론(modalism)—아버지·아들·성령이 하나님의 세 ‘역할’이나 ‘가면’에 불과하다는 이단 사상—을 반박하는 논문이다. 이 저술에서 터툴리아누스는 라틴어 Trinitas를 사용하며, 동시에 “하나의 본질(una substantia), 세 위격(tres personae)“이라는 공식도 제안했다. 이 언어는 이후 기독교 신학의 핵심 어휘가 된다.
조금 앞선 시기, 그리스어로는 안디옥의 테오필루스(Theophilus of Antioch, c. 180 CE)가 변증서 “아우톨리쿠스에게(Ad Autolycum)” 2.15에서 Τριάς(트리아스, “셋”)라는 단어를 신학적 맥락에서 사용했다. 다만 테오필루스가 묶은 셋은 “하나님·그의 말씀·그의 지혜”였고, 터툴리아누스가 “아버지·아들·성령”으로 확정한 삼위일체 공식과는 세부가 다르다. 신학 언어가 점진적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325년으로 가는 길
터툴리아누스의 언어는 이후 교회사의 결정적 사건들로 이어진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ὁμοούσιος, 호모우시오스)“임을 확정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령의 위격을 공식화했다. 두 공의회가 다룬 것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었다. 이미 성경에 있는 것—아버지·아들·성령의 함께함—을 이단의 도전에 맞서 정확하게 표현할 언어를 확정하는 작업이었다.
작자 미상 · 제1차 에큐메니컬 공의회(니케아 공의회, 325 CE) · Google Art Project 소장 · Public Domain. 후대 화가의 상상화이며 공의회 당시의 기록 이미지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신학 언어를 공식화한 역사적 사건의 도상적 표현입니다.
단어와 실재를 구별하기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것이 교리의 뿌리가 성경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역방향이 사실이다. 마태복음 28:19의 삼중 이름, 요한복음 1:1-14의 말씀의 선재, 고린도후서 13:13의 삼중 축도, 에베소서 2:18의 삼위의 역할—이 내용들이 먼저 성경 안에 있었다. 신학자들은 이 내용을 이단의 도전에 맞서 정확하게 말하기 위한 언어를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Trinitas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J.N.D. 켈리(J.N.D. Kelly)는 “초기 기독교 교리(Early Christian Doctrines)“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다. 2세기 신학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언어의 한계에 부딪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아들을 아버지보다 낮은 존재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을 같은 ‘역할’로 만들지도 않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의 본질, 세 위격”이라는 공식이었다.
언어가 진리를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
성경의 진리가 먼저 있었고, 그것을 정확하게 담을 신학 언어가 나중에 생겨났다는 것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중요한 교훈이다. 교회가 성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확보하는 데 약 2세기가 걸렸다. 그 2세기는 논쟁과 이단과 공의회의 연속이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이것이 교리를 흔드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교리의 깊이를 보여주는 사실임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언어가 성경이 말하는 실재를 온전히 담기 위해 그 시간이 필요했다.
참고 자료
- Tertullian, Adversus Praxean, ed. and trans. Ernest Evans (SPCK, 1948)
- Theophilus of Antioch, Ad Autolycum 2.15, trans. Robert M. Grant (Oxford Early Christian Texts; Clarendon Press, 1970)
-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5th ed. (Harper & Row, 1978), pp. 109–137
댓글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도 있어요
성경, 알고 보니
비밀 휴거는 1,800년 교회에 없던 개념이었다
살전 4:17의 '공중에서 주를 영접'은 초대교회부터 알려진 본문이지만, 이것을 가시적 재림과 분리된 비밀 사전 사건으로 읽는 전환난 휴거 시나리오는 1830년대 존 넬슨 다비의 세대주의 신학에서 처음 등장한 근대적 제안이다.
성경, 알고 보니
폭풍 속의 배 — 사도행전 27장과 고대 항해 서사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배가 난파하는 장면은 고대 독자에게 익숙한 클리셰였다. 사도행전 27장은 그 틀을 그대로 쓰면서도, 정확히 그 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성경, 알고 보니
고고학자들이 찾은 오디세우스의 신전 — 이것이 신약과 무슨 상관일까
이타카에서 '오디세우스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와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성서고고학은 아니지만, 사도행전이 태어난 세계의 종교적 공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발견이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