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연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언제나 '함께' 등장하는 부부 사역자
신약성경 속 많은 인물이 홀로 등장하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다릅니다. 신약 전체에서 이 두 사람이 언급되는 여섯 번 모두, 예외 없이 함께 등장합니다. 한 사람만 따로 언급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로마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 부부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8장 2절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려(주후 49년경,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황제열전」에서 언급하는 사건과 같은 것으로 널리 추정됩니다) 이들은 고린도로 이주해 있었고,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해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18:3)고 기록됩니다. 바울과 이들 부부는 천막 제조라는 실용적인 공통점으로 처음 연결됩니다.
이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이 부부도 동행하고(18:18), 거기서 이들은 이집트 출신의 학식 있는 유대인 설교자 아볼로를 만납니다.
아볼로를 “더 정확하게” 가르치다
사도행전 18장 24-26절의 장면은 신약성경에서 초대 교회의 신학 교육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여주는 드문 사례입니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로,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즉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부분적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18:26).
벤 위더링턴 3세는 「가장 초기 교회의 여성들」(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에서, 이 구절이 여성이 남성 설교자를 신학적으로 교정·보완하는 장면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크레이그 키너는 그의 방대한 「사도행전」 주석에서, 이 사건이 초대 교회에서 신학 교육이 공식 강단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이뤄지는 사적 대화—특히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대화—를 통해서도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순서가 뒤바뀌는 이름
신약성경에서 이 부부가 언급되는 여섯 곳(행 18:2, 18:18, 18:26,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중 네 곳에서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나옵니다. 고대 문헌에서 부부를 나열할 때 남편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논의됩니다. F. F. 브루스는 「사도행전」 주석에서 이 순서가 브리스길라가 두 사람 중 더 활발한 사역자였거나, 사회적 신분이 더 높았을 가능성(로마 귀족 가문 브리스카 씨족과의 연관성이 종종 제기됩니다)을 반영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로마서 16장 3-4절에서 바울은 이 부부를 이렇게 언급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동역자”(순에르고스, συνεργός)라는 단어는 바울이 자신의 사역 파트너를 지칭할 때 쓰는 용어로, 이 부부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실제 사역의 동반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가정 교회의 중심
고린도전서 16장 19절과 로마서 16장 5절은 각각 에베소와 로마에서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이들 부부와 연결되어 언급됩니다. 이는 신약 시대 초기 교회가 별도의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가정에서 모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 두 도시 모두에서 이런 모임의 거점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설교자를 위한 메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극적인 개종 이야기나 순교 기사로 기억되는 인물이 아닙니다. 이들의 특징은 이동—로마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다시 로마로—하면서도 어디서나 변함없이 함께 일하고, 가르치고, 자신의 집을 공동체에 내어 준 일관성입니다. 이 본문은 화려한 은사가 아니라도, 부부가 함께 재능과 가정과 삶의 자리를 사역에 내어 놓는 것이 교회 역사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후대 학계가 이어간 논쟁 — 브리스길라가 히브리서를 썼을까
히브리서의 저자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미해결 문제 중 하나다. 3세기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이미 “누가 이 편지를 썼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정확히 아신다”고 인정했다(에우세비오스, 「교회사」 6.25.14에 보존). 이 저작권 미상 상태는 교부 시대를 지나 근대까지 이어졌고, 1900년 독일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이 새로운 방향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그는 히브리서 13장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어조, 그리고 저자가 자신을 밝히지 않은 이유가 바울 서신에서 이례적으로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브리스길라 같은 여성 저자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제안했다. 이 가설은 이후 J. 렌델 해리스 등 일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소수설로 남아 있다—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브리스길라가 신약학 논쟁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봐야 한다.
참고 자료
- F. F. Bruce, The Book of Act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Eerdmans, 1988)
- Ben Witherington III, 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 Craig S. Keener, Acts: An Exegetical Commentary, 4 vols. (Baker Academic, 2012-2015)
- Adolf von Harnack, “Probabilia über die Adresse und den Verfasser des Hebräerbriefes,”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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