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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범사에 감사하라", 이 짧은 한 문장 — 살전 5:18 헬라어 ἐν παντὶ εὐχαριστεῖτε

“범사에 감사하라”는 장례식장에서도, 병상 앞에서도, 실직한 성도 앞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려 하면 곧 불편한 질문이 따라온다.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이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바울의 의도였을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으면, 이 질문이 놓치고 있던 전치사 하나가 보인다.

Westcott–Hort,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1881), p. 457 — 1 Thessalonians 5:16–18 B. F. Westcott · F. J. A. Hort ·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1881), p. 457 — 살전 5:16–18 헬라어 본문. Public Domain.

세 단어짜리 문장, 그러나 전치사 하나가 전부를 바꾼다

살전 5:18의 헬라어는 이렇다.

ἐν παντὶ εὐχαριστεῖτε. (엔 판티 유카리스테이테)

번역하면 “모든 것 안에서 감사하라”인데, 여기서 핵심은 ἐν παντί라는 짧은 전치사구다. ἐν은 “~안에서, ~의 한가운데서”를 뜻하는 전치사이지, “~에 대하여”를 뜻하는 περί나 “~을 위하여”를 뜻하는 ὑπέρ가 아니다. 즉 바울이 쓴 문장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이지,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라”**가 아니다.

이 구분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크다.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라”는 자녀의 죽음이나 암 선고 그 자체를 감사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반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는, 그 상황 자체를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자리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슬픔과 감사는 상충하지 않는다 — 바울은 슬픔을 부정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엡 5:20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바울은 에베소서 5:20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을 쓴다.

εὐχαριστοῦντες πάντοτε ὑπὲρ πάντων — “항상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서는 ὑπὲρ πάντων(“모든 것을 위하여/모든 것에 대하여”)이 쓰인다. 두 본문이 한글 성경에서 똑같이 “범사에”로 번역되다 보니 같은 뜻처럼 읽히지만, 헬라어 전치사는 서로 다르다. 살전 5:18의 ἐν παντί와 엡 5:20의 ὑπὲρ πάντων을 하나로 뭉뚱그리면, 두 본문이 각각 감당하도록 설계된 결이 흐려진다. Gene L. Green은 PNTC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에서 살전 5:18의 ἐν παντί를 “모든 정황(circumstance) 안에서”로 풀이하며, 이를 상황 자체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상황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지속되는 태도로 설명한다. Charles A. Wanamaker의 NIGTC 주석도 같은 방향에서, 이 구절을 스토아적 체념이나 상황 자체의 긍정이 아니라 신뢰의 표현으로 읽는다.

εὐχαριστεῖτε — 현재 명령형, 짧지만 계속되는 명령

동사 εὐχαριστεῖτε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이다. 헬라어의 현재 명령형은 흔히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 반복되거나 지속되는 행동을 가리킨다. 즉 이 문장은 “지금 한 번 감사의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삶의 반복되는 자세가 되게 하라”는 뜻에 가깝다. 세 단어짜리 이 짧은 문장이 실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습관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구절은 앞서 다룬 살전 5:16–17(“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과 한 단위를 이루며, 18절 끝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로 세 명령을 함께 묶는다. 기쁨·기도·감사가 각각 독립된 규정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향이라는 점은 17절을 다룰 때와 동일하다.

해석의 경계 — 고통을 지우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구분을 “그러니 무슨 일을 겪어도 슬퍼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오용해서는 안 된다. ἐν παντί를 “상황 속에서”로 읽는다고 해서 그 상황이 아프지 않다거나 슬퍼하면 안 된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 자신도 빌립보서와 고린도후서 곳곳에서 자신의 고난과 눈물을 숨기지 않는다. 이 구절이 요구하는 것은 고통의 부정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서도 감사의 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신뢰다. 이 둘을 혼동하면 본문은 위로 대신 또 다른 죄책감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다시 읽어보면

“범사에 감사하라”를 다시 읽을 때,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이 일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이 상황 안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자리가 남아 있는가”로. 세 단어에 불과한 이 짧은 문장이 데살로니가의 박해받는 교회에게 쓰인 편지 속 한 구절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 명령은 고통을 미화하라는 말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붙들 수 있는 자리를 가리키는 초청으로 다가온다.

참고 자료

  • Gene L. Green, The Letters to the Thessalonians (PNTC; Grand Rapids: Eerdmans, 2002)
  •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1990)
  • B. F. Westcott and F. J. A. Hort,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London: Macmillan, 1881), p.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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