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다니엘 5장의 벨사살은 지어낸 왕이었다가, 1854년 발굴로 돌아온 왕이 됐습니다
다니엘 5장은 바빌론 궁전의 연회 장면으로 시작된다. 벨사살 왕이 귀족 천 명과 잔치를 벌이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자, 갑자기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왕은 두려워 떨며 다니엘을 불러 해석을 구하고, 다니엘은 나라가 무너질 것을 선포한다. 그날 밤 벨사살은 죽고 메데 왕국이 바빌론을 차지한다.
이 이야기에서 19세기 학자들이 문제를 발견했다. 왕의 이름이었다. 알려진 바빌로니아 왕 목록 어디에도 “벨사살”이라는 왕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빌로니아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 재위 556-539 BCE)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다니엘서는 존재하지 않는 왕을 지어낸 것인가? 일부 19세기 학자들은 이것을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증거로 인용했다.
Rembrandt van Rijn · Belshazzar’s Feast(벨사살의 잔치), c. 1635–1638 · National Gallery, London · Public Domain. 다니엘 5장 장면을 묘사한 화가의 상상화이며, 당시의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1854년, 우르 지구라트 터에서 나온 비문
1854년, 영국 영사 J.G. 테일러가 이라크 남부 우르(Ur)의 지구라트 터를 발굴하던 중 원통형 점토 비문을 발견했다. 이것이 나보니두스 원통비문(Nabonidus Cylinder)이다. 비문의 내용은 바빌로니아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신(달의 신 신, Sîn)에게 바치는 봉헌 기도인데, 그 안에 결정적인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보니두스는 자신이 아라비아의 테마(Tayma)로 장기 원정을 떠나는 동안 “장자 벨사살”에게 왕권을 맡겼다고 밝힌다.
이 기록을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가 독립적으로 확인한다. 연대기는 나보니두스가 바빌론을 떠나 아라비아에 체류한 약 10년의 기간을 기록하면서, 그 기간 바빌론의 신년 축제(아키투)가 왕의 부재로 제대로 거행되지 못했음을 언급한다. 이 기간 동안 바빌론의 실질적인 행정 책임자는 바로 벨사살이었다.
레이먼드 필립 도허티(Raymond Philip Dougherty)는 1929년 예일 대학교에서 출판한 『나보니두스와 벨사살』(Nabonidus and Belshazzar, Yale University Press, 1929)에서 이 두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벨사살이 공식 왕이 아닌 섭정(co-regent)이었음을 확립했다. 존 J. 콜린스(John J. Collins)도 헤르메네이아 주석 시리즈 다니엘서 주석(Fortress Press, 1993)에서 이 결론을 재확인한다.
“셋째 통치자” — 섭정만이 줄 수 있는 자리
이 발견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다니엘서의 세부 사항 하나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다니엘 5:7을 보면, 벽의 글자를 해석하는 자에게 벨사살이 약속하는 보상이 “이 나라에서 셋째 통치자가 되게 하리라”(개역개정)이다. 왜 셋째인가? 왕이라면 첫째나 둘째 자리를 약속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섭정의 위치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나보니두스가 1위, 섭정 벨사살이 2위인 상황에서, 벨사살이 줄 수 있는 최고 자리는 자신의 바로 아래인 셋째였다. 왕 목록에 이름이 없었던 이유와, 셋째 자리가 최고 포상이었던 이유가 같은 사실에서 나온다. 벨사살은 공식 왕이 아니었다.
고고학이 확인하는 것과 확인하지 않는 것
이 발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보니두스 원통비문과 연대기는 벨사살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며 아버지 나보니두스의 섭정이었음을 확인한다. 성경이 “틀렸다”는 주장의 근거였던 바로 그 지점에서, 고고학이 성경의 세부 사항이 정확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이 비문이 다니엘 5장의 모든 사건이 정확히 그 묘사된 밤에 일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고고학은 인물의 역사성을 확인했지만, 사건의 구체적 진행은 별도의 문제다. 학자들은 이 구분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지어낸 왕”이라는 비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성경을 비판하던 논거가 발굴로 무너진 사례들 중에서, 벨사살의 경우는 그 전환이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참고 자료
- Raymond Philip Dougherty, Nabonidus and Belshazzar: A Study of the Closing Event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Yale Oriental Series 15; Yale University Press, 1929)
- John J. Collins, Daniel: A Commentary on the Book of Daniel (Hermeneia; Fortress Press, 1993)
- Paul-Alain Beaulieu, The Reign of Nabonidus King of Babylon 556–539 B.C. (Yale Near Eastern Researches 10; Yale University Press, 1989)
- Ernest C. Lucas, Daniel (Apollos Old Testament Commentary; InterVarsity Pres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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