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원래 무엇에 대한 말이었나
병상에서, 장례식장에서, 재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이 구절을 듣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질병, 사별, 실직, 재난 앞에서 이 말씀은 거의 자동으로 인용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큼만 주신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실제로 위로가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실제로 쓰고 있던 헬라어 단어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는 무엇을 가리켰을까요. 본문을 앞뒤 문맥 속에서 읽어 보면, 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과 다릅니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황금 송아지 경배」(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 1634년경 · 내셔널 갤러리, 런던 · Public Domain. 바울이 고전 10:7에서 “우상숭배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며 언급하는 광야 세대의 장면이다. 이미지 정보.
바로 앞 문장들이 말하는 것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허공에서 떨어진 문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1절부터 광야 세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를 지났으며(10:1-2), 같은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10:3-4).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10:5).
바울은 이어서 구체적인 사례를 나열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10:7,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을 인용). “우리가 음행하지 말자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10:8).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10:10). 그리고 바울은 결론짓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0:11).
10: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이 경고를 곧바로 독자에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이 13절입니다. 문장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13절의 “시험”은 방금 나열된 우상숭배·음행·원망 같은 죄로의 유혹과 같은 종류의 것을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페이라스모스의 의미 범위
헬라어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는 신약성경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쓰입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시련이나 환난(예: 야고보서 1:2의 “여러 가지 시험”). 다른 하나는 죄를 짓도록 이끄는 유혹(예: 마태복음 6:13 주기도문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단어 자체는 두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있는 폭넓은 단어입니다.
고든 피의 NICNT 주석과 앤서니 티슬턴의 NIGTC 주석은 이 본문을 연구할 대표적 자료입니다. 문맥의 근거는 본문에서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12의 경고와 10:13의 약속은 10:14의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로 이어집니다. 시련과 죄의 유혹은 실제 경험에서 겹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맥과, 모든 고난의 양이 개인의 능력에 맞춰진다는 일반적 보증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13절 후반부,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것은 질병이나 재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우상숭배나 음행 같은 구체적 죄의 유혹 앞에서 넘어지지 않고 버텨낼 길, 곧 죄를 이길 힘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로 위로받은 것은 잘못인가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이 구절을 인생의 고난 전반에 적용해 온 수많은 목회적 순간들이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이 실제로 위로가 되었다면, 그 위로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원문맥을 정확히 알면, 이 구절이 말하는 신실하심의 초점이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고난의 양을 미리 저울질해서 허락하신다”는 일반 원리가 아니라, “유혹 앞에서 하나님이 신실하게 함께하시며 이길 길을 내신다”는 구체적 약속입니다.
오히려 이 좁은 의미를 알고 나면,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더 확실한 근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도 보입니다. 고난과 인내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로마서 5장이나 고린도후서 1장, 4장 등에 풍부하게 있습니다. 고전 10:13이 정확히 말하는 것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이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더 큰 성경적 확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각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정확히 알 때, 성경 전체가 주는 위로가 더 단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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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87; rev. ed. 2014)
-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2000)
- 1 Corinthians 10:1–14, with commentary, Working Pr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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