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통독
요한복음 9장 — 날 때부터의 시각 장애와 영적 시력
한눈에 보기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을 치유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일을 둘러싸고 긴 조사와 논쟁이 이어진다.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자 예수는 죄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기 위한 것으로 재정의한다. 치유 후 종교 지도자들이 당사자와 그의 부모를 잇달아 소환해 규정 위반 여부를 추궁한다. 부모는 두려움에 책임을 회피하고 정작 치유받은 사람은 단순하지만 담대한 논리로 맞선다. 결국 그는 공동체에서 쫓겨나지만 예수가 다시 찾아와 신앙으로 인도한다. 장 말미에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들의 맹목이 지적된다.
어려운 표현 풀이
고대에는 장애를 죄의 결과로 보는 관념이 광범위했다. 예수의 재정의는 그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고통의 의미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읽는 것이다. 치유받은 사람의 담대함이 장 전체에서 점차 성장하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 구조를 이루며,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들의 맹목이 결말의 역설이다.
원어 한 단어
τυφλός(튀플로스, grc)— 눈먼·보지 못하는
9장에서 이 단어는 두 층위로 작동한다. 육체의 감각적 시력을 가리키는 동시에, 장 끝에 가면 누가 진정으로 보지 못하는 자인지를 뒤집는 데 사용된다. 치유받은 사람은 신체의 시력을 얻고 믿음의 시력도 갖게 되지만,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는 구조다.
묵상 포인트
이 장의 진짜 질문은 눈이 먼 것이 고쳐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다. 확신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맹목의 형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