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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⑬ 얀 반 에이크 — 겐트 제단화와 위장된 상징

초록빛 초원 한가운데, 제단 위에 어린 양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그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성배 안으로 떨어집니다. 사방에서 각기 다른 옷차림의 무리—구약의 족장과 예언자들, 사도들, 순교자들, 은수자들, 순례자들—가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이 어린 양을 향해 걸어옵니다. 풀 한 포기, 꽃잎 하나까지 식물도감처럼 정확하게 그려진 이 초원 전체가,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신학적 도해입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플랑드르의 화가 얀 반 에이크로 넘어갑니다.

반 에이크는 누구인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년경-1441)는 1425년부터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선량공의 궁정화가로 활동하며 브뤼헤에 정착했습니다. 유화 기법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겹의 반투명한 유채 물감층을 쌓아 빛과 질감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법을 정교하게 완성해 이후 북유럽 회화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남겼습니다. 겐트 제단화(정식 명칭 「어린양께 대한 경배」)는 얀의 형 후베르트 반 에이크가 착수했다가 1426년 사망하며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얀이 이어받아 1432년 완성한 12폭 패널화입니다. 제단화 틀에 새겨진 (논쟁이 있으나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문은 “가장 뛰어난 화가” 후베르트가 시작하고 “예술에서 둘째가는” 얀이 완성했다고 전합니다.

본문 — 요한계시록 7장 9~17절

중앙 패널이 시각화하는 본문은 사도 요한이 본 환상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요한계시록 7:9, 17)

그림 분석 — 사실주의로 그려진 환상

얀 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크), 겐트 제단화 중앙 패널 「어린양께 대한 경배」, 1432년, 성 바보 대성당 소장 얀 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크), 겐트 제단화 중앙 패널 「어린양께 대한 경배」, 1432년, 패널에 유채, 134.3×237.5cm — 성 바보 대성당(겐트).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expired, 두 화가 각각 1441년·1426년 사망).

계시록의 환상 자체는 초월적이고 비가시적인 장면이지만, 반 에이크는 이를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고 관찰 가능한 자연 세계 속에 옮겨 놓습니다. 초원을 이루는 식물은 근래 식물학적 조사에서 상당수가 실제 종을 특정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하게 묘사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화면 좌우로 갈라져 어린 양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 무리는 구약의 족장·선지자, 이교의 정의로운 인물들, 사도들, 순교자들, 은수자들과 순례자들로 나뉘어 배치되어 계시록 본문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을 시각적으로 분류합니다. 흥미롭게도 은수자 무리 중 한 인물의 얼굴이 반 에이크 자신의 자화상 특징과 겹친다는 근래의 연구도 있습니다—구원이 먼 과거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15세기 화가 자신에게도 걸린 문제임을 은근히 새겨 넣은 셈입니다. 중앙 제단에서 흘러나온 어린 양의 피는 아래쪽 생명수 샘으로 이어지는데, 이 샘 역시 실제 분수 조각 기법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사실적 묘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신학적 해석 — 위장된 상징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1953년 저서에서 반 에이크를 비롯한 초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회화를 ‘위장된 상징’(disguised symbolis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그의 논지는 이렇습니다—중세 회화가 후광이나 도식화된 배경처럼 상징을 명시적 기호로 드러냈다면, 반 에이크 세대의 화가들은 새로 얻은 사실주의적 재현 능력을 이용해 그 상징을 평범한 자연물·일상 사물 안에 ’위장’해 숨겼다는 것입니다. 즉 겐트 제단화의 초원에 그려진 특정 식물, 샘, 빛의 방향 하나하나가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그저 정밀하게 관찰된 자연으로만 보입니다.

미술사가 크레이그 하비슨은 1991년 연구에서 파노프스키의 이 틀을 일부 수정하며, 반 에이크의 사실주의를 단순한 ’상징의 은닉’이 아니라 사실주의 자체가 하나의 ‘유희’(play)—보는 이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세계와 그 너머의 신학적 의미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적극적 장치—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겐트 제단화가 하는 일은 같습니다. 계시록의 초월적 환상을, 풀 한 포기까지 실제로 만질 수 있을 듯한 자연 세계 안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무리를 이끄는 어린 양의 구원이 저 먼 하늘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그림을 보는 15세기 겐트의 신자들이 발 딛고 선 바로 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피렌체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로 넘어가, 신플라톤주의와 성서 도상이 겹쳐지는 지점을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Erwin Panofsky, Early Netherlandish Painting: Its Origins and Character (Harvard University Press, 1953) — ‘위장된 상징’ 개념을 제안한 이 분야의 고전적 연구서
  • Craig Harbison, Jan van Eyck: The Play of Realism (Reaktion Books, 1991) — 파노프스키의 틀을 수정하며 반 에이크의 사실주의를 재해석한 연구서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입니다. 이번 회차는 국내 학술 문헌 중 신뢰도 있게 확인된 자료를 찾지 못해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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