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노아 방주에 동물이 '한 쌍씩'만 탔다? 창세기 7장을 읽지 않은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그린 그림을 생각해보자. 거의 예외 없이 동물들이 두 줄로 방주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다 — 코끼리 두 마리, 기린 두 마리, 사자 두 마리. 암수 한 쌍씩. 이 이미지는 너무 강력해서 “노아 방주”와 “한 쌍씩”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그런데 창세기 6장만 읽지 말고 7장을 펼쳐보면, 숫자가 달라진다.
에드워드 힉스(Edward Hicks) · 노아의 방주(Noah’s Ark), 1846 · 공개 도메인(PD). 미국 민속 화가의 상상화로, 동물들이 쌍을 지어 방주에 오르는 전통적 도상을 보여줍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지시
창세기 6:19-20은 이렇게 말한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각기 종류대로 두 마리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그것들의 생명을 보전하라.” 여기까지는 익숙하다. “두 마리씩”(שְׁנַיִם, 쉐나임).
그런데 창세기 7:2-3은 다르게 말한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 부정한 짐승만 한 쌍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명확하다 — “שִׁבְעָה שִׁבְעָה(쉬브아 쉬브아)”, 즉 “일곱씩 일곱씩”이다.
창세기 8:20은 이 지시가 실제로 실행됐음을 확인한다. 홍수 후 노아가 드린 번제에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했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동물이 한 쌍씩만 왔다면 번제를 드린 후 그 종류는 지구에서 사라진다. 정결한 짐승이 일곱씩 왔기에 제물로 쓸 여분이 있었다.
두 본문이 나란히 공존한다
이 두 본문 사이의 숫자 차이는 성경학자들이 오랫동안 주목해온 사실이다. 고든 웬함(Gordon J. Wenham)은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창세기 주석에서 6:19-20과 7:2-3이 서로 다른 두 자료에서 유래한 것으로 분석하며, 이를 “자료비평(Source Criticism)의 교과서적 사례”로 다룬다. 전통적으로 이 두 본문은 각각 J(야훼문서)와 P(제사장문서)로 분류되어 왔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도 《Continental Commentary》 창세기 주석에서 같은 관찰을 공유한다. 홍수 이야기 전체가 두 독립적 서사 층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최종 편집자가 이 두 전통을 하나의 내러티브 안에 나란히 봉합했다는 것이다.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만(Richard Elliott Friedman)은 《Who Wrote the Bible?》과 《The Bible with Sources Revealed》에서 홍수 이야기를 J자료와 P자료의 절별(節別) 분리를 색으로 구분해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사용한다. 동물을 몇 마리 태웠는가 하는 질문 하나가 성경 텍스트의 편집 역사를 보여주는 창문이 된다.
”모순”인가, “봉합”인가
이 두 숫자의 공존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 번째 반응은 흔히 “성경 오류”라고 부르거나 반대로 “어떻게든 조화시켜야 한다”는 두 극단이다. 그러나 이 두 반응 모두 본문이 놓인 현실을 충분히 보지 못한다.
성경 본문은 이 두 숫자를 지우거나 통일하지 않고 나란히 놓아두었다. 이것은 최종 편집자가 두 전통 모두를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고대 중동 문헌학이 밝히듯, 서로 다른 전통을 병치(竝置)하는 편집 방식은 히브리 성경 형성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두 본문이 정확히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다른 숫자를 말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성경이 긴 역사를 거쳐 형성된 살아 있는 문헌이라는 증거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 비둘기가 노아에게 돌아오다(The Dove Returns to Noah), c. 1896–1902 · 공개 도메인(PD). 화가의 상상에 의한 역사적 장면 재현입니다.
고대 근동의 홍수 이야기들
이 논의를 한 걸음 더 넓히면, 노아 홍수 이야기와 고대 근동의 다른 홍수 설화들(길가메쉬 서사시의 우트나피쉬팀, 수메르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사이의 유사성 문제가 있다. 이들 이야기도 신의 명령, 방주 건조, 동물 탑승, 새를 날려 보내는 장면을 공유한다.
그러나 창세기 홍수 이야기가 이 고대 근동 전통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홍수는 소음에 지친 신들의 집단 결정이지만,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도덕적 판단(인간의 악함)과 새로운 언약의 시작으로 이야기된다. 노아를 구하는 것은 신들의 내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웬함이 지적하듯, 창세기 홍수 이야기는 유사 자료를 신학적으로 재구성한다.
참고 자료
-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ord Books, 1987)
- Claus Westermann, Genesis 1–11: A Commentary (Continental Commentary; Augsburg, 1984)
- Richard Elliott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Summit Books, 1987; rev. ed. HarperOne, 1997)
- Richard Elliott Friedman, The Bible with Sources Revealed (HarperOne, 2003)
- 창세기 6:19-20; 7:2-3; 8:20, 마소라 본문 (히브리어 숫자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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