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알고 보니

1961년 이전에는 본디오 빌라도의 실존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가 없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형에 넘긴 사람이 본디오 빌라도다. 마태복음 27장, 누가복음 23장, 요한복음 18-19장은 그를 유대 지역의 로마 총독으로 기록한다. 그런데 1961년 이전까지, 그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성경 밖 물리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역사 기록에 빌라도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원후 116년경에 쓴 『연대기』(Annals 15.44)에서 예수 처형을 언급하며 빌라도를 “프로쿠라토르(procurator)“라 불렀다.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그의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모두 문헌 증거였다. 빌라도의 이름이 실제로 새겨진 어떤 비문도, 어떤 동전도, 어떤 물건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1961년 6월, 가이사랴

이탈리아 고고학자 안토니오 프로바(Antonio Frova)가 이끄는 발굴팀이 이스라엘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 있는 헤롯 대왕의 로마식 극장을 발굴하고 있었다. 극장 구역을 정리하던 중 계단으로 재활용된 석회암 블록 하나가 드러났다. 4세기경 건축 자재로 쓰이면서 뒤집혀 박힌 상태였다.

블록 표면에 라틴어가 새겨져 있었다. 글자 일부는 훼손됐지만 판독은 가능했다.

[PONTI]VS PILATVS … [PRAEF]ECTVS IVDA[EAE]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프라이펙투스).”

이것이 빌라도의 실존을 확인하는 최초의 물리적 증거였다. 프로바의 발굴 보고서는 1961년 학술지 Rendiconti dell’Istituto Lombardo에 발표됐다.

제임스 티솟(James Tissot), '빌라도 앞에 선 예수, 첫 번째 대면', 1886-1894년경 James Tissot · Jesus Before Pilate, First Interview(빌라도 앞에 선 예수, 첫 번째 대면) · 1886–1894년경 · Brooklyn Museum 소장 · Public Domain. 역사적 장면에 대한 화가의 상상화이며, 당시의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비문이 풀어준 또 하나의 문제

비문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직함이다.

비문은 빌라도를 PRAEFECTVS IVDAEAE(유대 프라이펙투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타키투스는 같은 사람을 “프로쿠라토르(procurator)“라 불렀다. 신약성경은 그를 ἡγεμών(헤게몬, 일반적 의미의 “총독”)이라 불렀다. 세 개의 호칭이 같은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헬렌 본드(Helen K. Bond)는 『폰티우스 빌라도: 역사와 해석』(Pontius Pilate in History and Interpret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에서 이 직함 문제를 상세히 다룬다. 기원후 1세기 전반부에 유대 지역의 로마 장관은 공식적으로 프라이펙투스(praefectus)였다. 이 직함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41-54년) 이후 프로쿠라토르(procurator)로 바뀐다. 타키투스가 116년경에 글을 쓸 때는 이미 프로쿠라토르가 일반화된 이후였기 때문에, 그가 빌라도를 프로쿠라토르라고 부른 것은 나중 시점의 용어를 소급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헤게몬(ἡγεμών)은 “지방 장관” 혹은 “총독”을 가리키는 일반 헬라어 호칭으로, 프라이펙투스와 프로쿠라토르 모두에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누가와 복음서 기자들이 사용한 용어가 오류가 아니라 당대의 일반 관행에 부합한 것이었음을, 비문이 추가로 확인해준 셈이다.

비문의 현재와 의미

발굴된 원본 블록은 이스라엘 박물관(예루살렘)에 보관되어 있고, 가이사랴 마리티마 현장에는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비문은 흔히 ‘빌라도의 돌(Pilate Stone)‘이라 불린다.

이 발견은 복음서의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한 “성경이 맞다”는 확인 그 이상이다. 빌라도 비문은 1세기 로마 행정 용어, 유대 총독직의 성격, 그리고 신약 기록이 당시의 정치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자료다. 4세기 계단 돌 아래 2천 년을 기다렸던 이름 하나가, 역사와 본문이 만나는 방식을 새롭게 보여준다.

참고 자료

  • A. Frova, “L’iscrizione di Ponzio Pilato a Cesarea,” Rendiconti dell’Istituto Lombardo, Accademia di Scienze e Lettere 95 (1961): 419–434
  • Helen K. Bond, Pontius Pilate in History and Interpret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pp. 1–20
카카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