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둘로스(δοῦλος), '종'인가 '노예'인가 — 번역이 지운 원어의 무게
로마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어로 “둘로스 크리스투 이에수(δοῦ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라 부른다. 빌립보서 1장 1절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만, 이때는 바울과 디모데 두 사람을 함께 가리키는 복수형 “둘로이(δοῦλοι)“다. 대부분의 한국어·영어 성경은 이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옮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수십 년간 신약학계에서는 “둘로스”를 “종(servant)“으로 옮기는 오랜 관행이 원문 독자가 느꼈을 무게를 지워버린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종”이 지우는 법적 현실
그리스어 사전 BDAG(Bauer-Danker-Arndt-Gingrich)는 “둘로스”를 문자 그대로 “노예”로 정의하며, “종”이나 “봉사자”는 그 완곡한 대체어일 뿐이라고 밝힌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둘로스는 주인의 법적 소유물이었다. 자유의사로 일을 그만둘 수 없었고,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머레이 J. 해리스(Murray J. Harris)는 『그리스도의 노예』(Slave of Christ, NSBT 8; IVP, 1999)에서 20세기 주요 영어 번역본 스무 종 가운데 “둘로스”를 일관되게 “slave(노예)“로 옮긴 것은 1923년 에드거 굿스피드(E. J. Goodspeed)의 번역본 하나뿐이었다고 지적한다. 해리스는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둘로스”라 부른 것이 겸손한 자기 낮춤이 아니라, 자유의사 없는 완전한 소유와 절대적 복종이라는 극단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골라 쓴 것이라 본다. 이 해석은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의 대중서 『노예』(Slave: The Hidden Truth About Your Identity in Christ, Thomas Nelson, 2010)를 통해 더 널리 알려졌다.
완곡 번역은 언제, 어떻게 정착됐나
이 번역 전통은 종교개혁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윌리엄 틴들(Tyndale)은 신약을 영어로 옮기며 “둘로스”를 “servant”로 옮겼고, 제네바 성경과 흠정역(KJV)이 그대로 따랐다. 그리스어가 라틴어 불가타(Vulgate)를 거치며 “둘로스”는 같은 뜻의 “servus”가 됐는데, 종교개혁가들이 불가타의 기억에 영향받아 이를 영어 “servant”로 옮겼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대체적 설명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중세 후기 이후 동산 신분의 노예제가 이미 사라진 상태여서 “servant”에 소유·매매의 함의가 없었던 반면, 당대 영어 “slave”는 이미 경멸적 뉘앙스를 띠고 있었다는 점도 번역자들이 이 단어를 피한 이유로 꼽힌다. 이후 번역본들은 이 전통을 큰 재검토 없이 계승해 왔다.
그러나 로마 노예제 = 현대 노예제는 아니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하다. “노예”라는 번역어를 택하는 순간, 독자는 종종 19~20세기 미국의 인종적 동산노예제(chattel slavery) 이미지를 무의식중에 떠올린다. 스캇 맥나이트(Scot McKnight)는 『빌레몬서』 주석(NICNT; Eerdmans, 2017)에서 로마 노예제를 22쪽에 걸쳐 다루며, 그것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축소하는 것과 근대 노예제와 단순 등치하는 것, 두 오류를 동시에 경계한다. 실제로 로마 노예제는 인종에 근거하지 않았고, 노예 해방(manumission)이 제도적으로 흔했으며, 일부 노예는 상당한 경제적·사회적 지위(집사, 가정교사, 관리인)를 누리기도 했다. 존 바이런(John Byron)도 바울의 노예 은유가 그리스-로마 관행에서 비롯됐는지 유대 문헌의 “하나님의 종” 전통에서 비롯됐는지를 둘러싼 학계 논쟁을 정리하며, 기원을 한쪽으로 단순화하는 데 신중을 요청한다.
최근 번역본들의 시도
2010년 여름 ESV 번역감수위원회는 케임브리지 틴들 하우스에서 “둘로스”와 히브리어 “에베드” 번역을 놓고 격론을 벌였고, 2011년 봄 최종안을 확정했다. 결과는 절충이었다—위원회는 9대 3 표결로 고린도전서 7장의 “슬레이브(slave)” 네 곳을 “본드서번트(bondservant)“로 되돌렸다. 반면 2021년 락맨 재단이 낸 신개역표준성경(LSB)은 “둘로스”를 일관되게 “slave”로 번역하는 쪽을 택했다. 두 번역위원회가 같은 단어를 놓고 정반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에 정답이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 Murray J. Harris, Slave of Christ: A New Testament Metaphor for Total Devotion to Christ (NSBT 8; Leicester: IVP, 1999)
- John MacArthur, Slave: The Hidden Truth About Your Identity in Christ (Nashville: Thomas Nelson, 2010)
- Scot McKnight, The Letter to Philemon (NICNT; Grand Rapids: Eerdmans, 2017)
- John Byron, “Paul and the Background of Slavery: The Status Quaestionis in New Testament Scholarship,” Currents in Biblical Research 3.1 (2004): 121–145
- Walter Bauer, Frederick W. Danker, William F. Arndt, and F. Wilbur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DAG), 3r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s.v. δοῦλος
- Justin Taylor, “The ESV Translation Committee Debates the Translation of ‘Slave,’” The Gospel Coalition (2011)
- “Why does the LSB translate ‘doulos’ as ‘slave’?” Legacy Standard Bible FAQ (lsbible.or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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