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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노아의 포도밭과 6천 년 된 포도주 공장

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진 뒤 노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창세기 9장 20절은 대부분의 성경 읽기에서 조용히 지나치게 되는 구절이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거대한 홍수 서사가 끝나고 새 세계가 시작되는 자리에, 성경은 한 노인이 포도나무 묘목을 흙에 박는 장면을 담았다. 왜 포도나무였을까? 그리고 그 포도주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11년 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한 논문이 이 질문에 뜻밖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르메니아 동굴에서 나온 6천 년 전의 포도주 공장

아르메니아 남부 아레니 마을 인근의 아레니-1 동굴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드나들던 장소다. 그런데 Barnard 등의 연구팀이 이 동굴에서 발굴한 층위 중 하나에서 주전 4000년경 — 청동기 시대 이른 단계 — 에 해당하는 양조 시설 일체가 출토됐다. 압착조와 발효조가 함께 확인됐고, 그 주변에서는 적포도주 특유의 붉은 색소인 말비딘(malvidin)과 포도씨, 포도껍질 잔존물이 같이 나왔다(DOI 10.1016/j.jas.2010.11.012).

이것이 왜 중요한가? 양조의 증거가 단편적으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 시설(압착조·발효조) + 화학 증거(말비딘) + 식물 잔존물(씨·껍질)이 한 공간에서 세트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으로 쓰인 공간인지 삼중으로 입증된 셈이다.

단, 명확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아레니-1이 노아의 포도밭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동굴은 성경의 특정 장소를 확인해 주는 직접 증거가 아니라, 창세기의 포도주 이야기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의 실제 양조 문화를 보여 주는 비교 자료다. 소아시아와 코카서스 일대에 포도나무 재배와 와인 생산의 전통이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실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레니-1 동굴 입구 Serouj · 아레니-1 동굴 입구, 아르메니아 · CC BY 3.0.

포도에서 잔까지 — 고대 양조의 실제 과정

압착조와 발효조가 발견됐다는 것은 단순한 시설 유무 확인이 아니라, 당시 포도주 제조의 흐름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실마리다. 이집트 무덤 벽화들(이푸이 무덤 등)과 교차하면 과정은 꽤 구체적으로 보인다.

수확한 포도는 얕고 넓은 압착 공간에 쏟아 부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발로 밟으면 즙이 흘러내려 아래쪽 집수조에 모였다. 이 즙을 항아리나 저장조로 옮겨 발효했고, 발효가 끝난 뒤에는 다시 큰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다. 성경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항아리(야도)‘가 이 저장 용기다.

이집트 포도 수확과 양조 장면 Charles K. Wilkinson, 이푸이 무덤 포도주 양조 장면 모사(이집트 신왕국)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 CC0 1.0.

지역과 시대에 따라 세부 시설과 방법에 차이가 있었지만, 수확 → 압착 → 발효 → 저장이라는 기본 흐름은 고대 근동 전역에서 공유되던 방식이었다. Carey Ellen Walsh는 The Fruit of the Vine (Eisenbrauns, 2000)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포도 재배와 와인 문화를 전반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노동 집약적 과정이 이스라엘 농업 달력의 핵심 계절을 차지했음을 보여 준다.

성경 속 ‘술틀’은 막연한 표현이 아니었다

성경에서 포도주 틀(술틀, יֶקֶב 혹은 גַּת)은 구체적인 제조 시설을 가리킨다. 이사야 5장 1-2절의 유명한 포도원 노래에는 “그 중에 술틀을 팠도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마가복음 12:1)에도 같은 시설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팠으며 망대를 지어.”

이 본문들을 읽는 현대 독자에게 ‘술틀을 팠다’는 표현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의 청중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갈릴리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년 포도 수확철에 직접 보거나 참여하던 노동 현장이었다.

고대 마레아의 포도주 압착조 Nicola Aravecchia / Institute for the Study of the Ancient World · 고대 마레아(이집트) 석제 포도주 압착조 · CC BY 2.0.

바위나 석재를 깎아 만든 위쪽 압착 공간과 아래쪽 집수조,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홈이 특징적인 이 시설은 이스라엘 전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비유 속 ‘포도원 주인’이 산울타리와 망대와 함께 ‘술틀’을 포도원의 기본 인프라로 언급하는 것은, 당시 청중이 이 세 요소를 포도원 경영의 표준 구성으로 인식했음을 전제한다.

노아의 포도밭에서 마지막 만찬까지

성경에서 포도주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쭉 따라가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인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는 포도밭을 심고 그 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다가 취했다. 이 장면은 흔히 노아의 실수로만 읽히지만, 동시에 새로 시작된 세계에 포도나무가 다시 뿌리를 내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2장 1-11절의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것이 포도주가 되는 장면은, 양조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욱 생생하게 읽힌다 — 보통은 수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한 그것이, 여기서는 순간에 완성된다.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잔을 들어 언약의 언어로 사용하신다.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노아의 포도밭에서 시작된 이 농부의 노동이, 수천 년을 지나 그 열매가 기쁨(가나)과 경고(이사야)와 언약(마지막 만찬)의 언어가 되는 여정을 성경은 조용히 추적한다.

한 단어 뒤에 있는 계절

성경 안에 ‘포도주’가 등장할 때, 그 한 단어 뒤에는 계절 하나가 들어있다. 수확하고 밟고 발효될 때까지 기다렸던 사람들의 손과 발과 시간. 아레니-1 동굴의 압착조는 그 노동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보여 준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와 예수님의 비유는 그 노동이 성경의 언어 안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창세기 9장 20절을 다시 펼쳐 보자.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아주 작은 시작이다. 그런데 그 한 줄 뒤에 고대 양조의 노동과 수천 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참고 자료

  • Hans Barnard et al., “Chemical evidence for wine production around 4000 BCE in the Late Chalcolithic Near Eastern highlands,”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38.5 (2011): 977–984. DOI 10.1016/j.jas.2010.11.012.
  • Carey Ellen Walsh, The Fruit of the Vine: Viticulture in Ancient Israel (Winona Lake: Eisenbrauns, 2000).
  • 창세기 9:20–21; 이사야 5:1–2; 마가복음 12:1; 요한복음 2:1–11; 고린도전서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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