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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8-25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1:18-25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로마 식민도시 고린도와 사회적 분열

고린도는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된 로마 식민도시(colonia)로,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地峽)에 위치한 까닭에 동서 교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재건 이후 불과 한 세대 만에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로 부상한 고린도는 상인·해방 노예·로마 시민권자·유대인·다국적 이방인이 뒤섞인 인구 구성을 가졌습니다. 에이드리안 반스(Albert Barnes)는 고린도에 대한 주석에서 "사도적 권위가 거짓 교사들에 의해 의문에 붙여졌던 상황"을 언급하며, 이 도시의 분열적 성격이 서신 전체에 걸쳐 바울의 논증 기조를 결정했다고 지적합니다.[bg1] 또한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고린도 교회 상황 개요에서 1:10-17을 분쟁 및 분파 문제의 진단으로, 1:18-21을 "하나님이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시는 단순한 수단"의 설명으로 구분합니다.[bg2]

이 도시 특유의 신분 상승 욕구와 경쟁적 자기 과시 문화는 바울의 논쟁 상대 '지혜'가 순수 철학적 탐구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발언권·영향력과 직결된 수사학적 능력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특정 설교자·교사를 후원하며 자신들의 사회적 자본을 강화했고, 이것이 바울 파·아볼로 파·게바 파로의 분열(1:12)로 이어진 구조적 배경이었습니다.

헬레니즘의 지혜 추구 — 소피아(σοφία)의 사회적 맥락

바울이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1:22)고 할 때, 그 '지혜'는 플라톤 철학의 추상적 이데아론부터 스토아 학파의 실천 윤리, 공중 수사학(rhetoric)에 이르는 넓은 교육 문화 전체를 포괄합니다. 특히 1세기 로마-헬레니즘 세계에서 숙련된 변론(διαλέγεσθαι, 디알레게스타이)과 논리적 설득은 엘리트 교육(παιδεία, 파이데이아)의 증표였으며, 공중 연설가들은 광장(agora)에서 청중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사회적 권위를 얻었습니다. 화이트(Adam G. White)의 연구가 시사하듯, 이 헬레니즘 교육 문화야말로 고린도 공동체 분열의 사회·문화적 토양이었습니다.[bg3] 바울이 1:20에서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라고 세 차례 묻는 수사적 질문은 바로 이 헬레니즘 엘리트 교육의 세 유형을 겨냥합니다 — 그리스 철학자, 유대 서기관, 로마-헬라 수사가.

유대인의 메시아 기대 — 표적(σημεῖα)의 신학적 맥락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1:22)는 바울의 진술은 1세기 유대교의 메시아론적 기대 지평을 배경으로 합니다. 출애굽 전통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 기적 같은 가시적 표적으로 증명되었으며, 선지자들은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기적적 징조와 결부시켰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메시아는 신명기의 저주("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니라") 구절과 충돌하며 근본적 신학 장벽이 됩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이 최하층 범죄자·반란 노예·비시민권자에게 집행하는 처형 방식으로, 공개 처형을 통한 사회적 치욕이 핵심 기능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1:23에서 유대인에게 σκάνδαλον(스칸달론, 걸림돌)이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회적 구성과 κήρυγμα(선포)의 의미

1:26-27의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서술은 고린도 교회 구성원들이 실제로 사회적으로 다양하고 다수는 하층민이었음을 반증합니다. 그러나 바울 시대에도 이미 고린도 교회에는 후원자급 상류층(글로에·스데바나 가정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의 지위 의식과 대다수 하층민 사이의 긴장이 1-4장의 '지혜 경쟁'과 11장의 성찬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 바울이 '선포의 미련함'(κηρύγματος μωρία, 케뤼그마토스 모리아)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주장은 단순한 신학 명제가 아니라, 고린도 사회의 신분 질서를 해체하는 급진적 선언이었습니다.

κήρυγμα(케뤼그마)라는 단어는 κῆρυξ(케뤽스, 전령)에서 유래하며, 광장에서 군중 앞에 왕의 칙령을 공포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는 철학 강의실에서 논변을 펼치는 διαλέγεσθαι(디알레게스타이)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논증을 통해 청중을 설득하려 하지만, 후자는 왕의 권위 아래 공포되는 선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선택한 방식이 κήρυγμα였다는 것은 복음이 인간의 변론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서 발원함을 의미합니다. 이 맥락에서 1:21의 "하나님이 선포의 미련함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구절은, 하나님이 최고 수사학자의 기술이 아닌 전령의 단순한 공포를 자신의 구원 도구로 삼으셨다는 주권적 역설을 선언합니다.

이사야 29:14의 인용 맥락 — 구약 배경

바울이 1:19에서 인용하는 이사야 29:14("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한 자들의 명철이 숨겨지리라")는 앗수르의 위기 앞에서 인간의 외교적 책략에 의지하던 유다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입니다. 이사야서 맥락에서 '지혜 있는 자들'은 이집트와의 외교 동맹을 도모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인간적 계산에 기대던 예루살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고린도의 '지혜 경쟁'이 구약 역사에서 반복된 인간 자만심의 패턴임을 암시하고, 하나님이 그 패턴을 일관되게 뒤집어 오셨음을 주장합니다. 메이어(Heinrich August Wilhelm Meyer)는 이 인용이 단순한 성경 증거 제시가 아니라, 신학적 역전의 원리가 구속사 전체에 흐르는 패턴임을 논증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지적합니다.[bg4]

참고 자료

  1. Albert Barnes, *Barnes' Notes — 1 Corinthians* (1832), on 1 Cor. 1:1.
  2. Adam Clarke, *Clarke's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1810–1826), on 1 Cor. 1:10–21 개요.
  3. Adam G. White, *Where Is the Wise Man? Graeco-Roman Education as a Background to the Divisions in 1 Corinthians 1–4* (2017), in *CBQ*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4. Heinrich August Wilhelm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1884), on 1 Cor. 1:19.

고린도전서 1:18-25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 1차 문헌을 종합하여 >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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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λόγος τοῦ σταυροῦ: 미련함인가, 하나님의 능력인가

본문: ὁ λόγος … τοῦ σταυροῦ τοῖς μὲν ἀπολλυμένοις μωρία ἐστίν, τοῖς δὲ σῳζομένοις … δύναμις θεοῦ ἐστιν. 직역: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해가는 자들에게는 미련함이요, 구원받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ἀπολλυμένοις / σῳζομένοις: 현재 수동 분사 — '멸망해가는'과 '구원받아가는' 진행 과정. 로버트슨·플러머는 현재분사 사용이 "한번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를 부정한다"고 지적합니다(ICC, 1911, p.97). - μωρία: 신약 5회 모두 고린도전서에 집중된 고린도 서신의 표지어입니다(접지표 기준).

주석적 논의: 동일한 십자가의 말씀이 두 청중에게 정반대로 경험됩니다. 이것은 주관적 견해 차이가 아닙니다 — 두 분사가 수동태인 점에서, '멸망해가는'과 '구원받아가는' 상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인간에게 작용하는 방식을 기술합니다. 크라우더(Crowder 2026)는 λόγος τοῦ σταυροῦ가 알고리즘 시대의 지식 권위 구조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대안적 실재 계시'로 기능한다고 분석합니다.[c1]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지혜'(σοφία)는 왕권과 신성의 속성이었습니다 — 수메르의 지혜 여신 니사바(Nisaba)처럼 지식은 권위의 상징이었고(Gudea "Statue T," Lagaš II기), 십자가는 그 모든 권위의 기호와 정반대였습니다.

설교적 함의: 복음이 '미련해 보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자체가 바울의 논증 방식입니다. 설교자는 "왜 이것이 미련해 보이는지 압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식입니다"라는 고백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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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0 — 이사야 인용과 세상 지혜의 법정 파산 선고

본문: ἀπολῶ τὴν σοφίαν τῶν σοφῶν, καὶ τὴν σύνεσιν τῶν συνετῶν ἀθετήσω. ποῦ σοφός; ποῦ γραμματεύς; ποῦ συζητητὴς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직역: "나는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서기관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습니까?

원어·문법 핵심: - ἀθετήσω: 미래 능동 직설. 신약 16회 출현(접지표). '법적 무효화'의 의미를 내포하며, 단순한 '초월'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폐기 선언입니다. - ποῦ … ποῦ … ποῦ: 삼중 수사 질문(erotesis) — 철학자·유대 서기관·수사가를 동시에 법정에 세웁니다.

주석적 논의: 구약 배경: 이사야 29:14의 원래 문맥은 앗수르 위기 앞에서 이집트 동맹을 도모하던 예루살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바울은 이 구약 패턴 — 인간 지혜의 파산 → 하나님의 반전 — 이 고린도에서도 반복됨을 논증합니다. 요세푸스(Antiquities 20)가 기록하듯, 1세기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기적과 군사적 승리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 십자가는 그 기대를 뒤엎습니다.

설교적 함의: 삼중 수사 질문은 현대적으로 변용 가능합니다 — "전문가가 어디 있습니까? AI가 어디 있습니까?" 그 침묵 속에서 복음은 전혀 다른 논리로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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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 εὐδόκησεν: 하나님이 기뻐하신 방식

본문: εὐδόκησεν ὁ θεὸς διὰ τῆς μωρίας τοῦ κηρύγματος σῴζειν τοὺς πιστεύοντας. 직역: 하나님은 선포의 미련함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εὐδόκησεν: 부정 과거 — 역사적 주권 결단. 신약 17회(접지표). 마 3:17("내 기뻐하는 자") 등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의 선행적 주권 기쁨을 표현합니다. - κήρυγμα: 신약 7회(접지표). κῆρυξ(전령)에서 유래해 왕의 칙령 공포 행위를 가리킵니다.

주석적 논의: εὐδόκησεν의 주어는 명백히 'ὁ θεός'이므로, 구원 방식의 선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쁨에서 발원합니다.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단절 뒤에 선포의 미련함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설교적 함의: 설교자가 화려한 기교보다 단순한 십자가 선포를 선택할 때,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며 선택하신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εὐδόκησεν —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사실이 그 방식의 정당성을 보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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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3 — 표적과 지혜 vs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본문: Ἰουδαῖοι σημεῖα αἰτοῦσιν καὶ Ἕλληνες σοφίαν ζητοῦσιν, ἡμεῖς δὲ κηρύσσομεν Χριστὸν ἐσταυρωμένον 직역: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σκάνδαλον(1:23): 신약 15회(접지표). 신명기의 저주("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와 충돌하는 십자가는 유대 신학 언어 안에서 역설 자체입니다. - Χριστὸν ἐσταυρωμένον: 완료 수동 분사 — 로버트슨·플러머는 이 완료형이 십자가의 지속적 효력을 함의한다고 봅니다(ICC, p.93). - ἡμεῖς δέ: 강조 인칭대명사 — 두 요구와의 단절을 강조합니다.

주석적 논의: 1:22는 보편적 종교 심리를 압축합니다 — '능력을 증명하라'와 '이성을 만족시켜라'. 스미트(Smit 2002)는 '헬라인의 지혜 추구'가 고린도 내 아볼로 추종자들을 특정한다고 논증합니다.[s1] ἡμεῖς δέ(우리는)는 모든 요구에 맞서는 선포 공동체의 정체성 선언입니다.

설교적 함의: 설교자에게 이 절은 설교 정체성의 근거입니다 — "왜 십자가를 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것이 ἡμεῖς δέ(우리가) 부르심 받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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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5 — 부르심 받은 자들에게: 역설의 완성

본문: αὐτοῖς δὲ τοῖς κλητοῖς … Χριστὸν θεοῦ δύναμιν καὶ θεοῦ σοφίαν· ὅτι τὸ μωρὸν τοῦ θεοῦ σοφώ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ἐστίν, καὶ τὸ ἀσθενὲς τοῦ θεοῦ ἰσχυρό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ἐστίν. 직역: 부르심 받은 자들에게는 …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κλητοῖς: 신약 10회(접지표). 유대인/헬라인의 민족 구분을 '부르심 받은 자'라는 새 범주로 대체합니다(롬 1:1·8:28 병행). - τὸ μωρὸν τοῦ θεοῦ: 중성 형용사의 명사적 사용 — 하나님에게 실제 미련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기준에서 미련해 보이는 방식을 가리키는 수사법입니다. - ἰσχυρότερον: 비교급. ἰσχυρός 신약 28회(접지표).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군사·정치적 권위의 상징이던 이 단어를 역전시켜 하나님의 '약함'이 더 강함을 선언합니다(Plutarch, Lives 2.12).

주석적 논의: 1:24-25는 1:18의 역설을 신학적으로 완성합니다. '부르심 받은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δύναμις(능력)이자 σοφία(지혜)인 이유는 두 분사적 경험 — '멸망해가는'과 '구원받아가는' — 을 종결짓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1:25의 비교급("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보다 지혜롭다")은 논증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 이 진리는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해 경험되는 것입니다.

참고 자료

  1. Jason D. Crowder, "The Logos tou Staurou and Competing Logoi," *Religions* 17 (2026): 863. DOI: 10.3390/rel17070863.
  2. Joop Smit, "In Search for the Coherence of First Corinthians 1:10-4:21," *Novum Testamentum* 44 (2002): 231. DOI: 10.1163/15685360232024946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1:18-25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5세기 초 (교부 시대)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크리소스톰은 『고린도전서 강해』 제4강(Homily IV)에서 1:18-20을 다루며, 십자가의 말씀이 왜 어떤 이들에게 미련하게 들리는지 그 원인을 영적 질환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그는 병들어 헐떡이는 자에게는 건강한 음식조차 불쾌하고, 돌봐주는 이를 침입자로 여긴다는 비유를 들면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 복음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듣는 자의 영혼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rh1] 이 진단은 1:18의 '멸망해가는 자들'을 단순한 도덕적 판정이 아닌 영적 상태의 기술(記述)로 읽는 교부 해석의 원형을 이룹니다.

> "병들어 헐떡이는 자에게는 건강에 좋은 음식조차 불쾌하며, 이와 꼭 같은 일이 영혼이 죽어가는 자들에게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 "To the sick and gasping even wholesome meats are unpleasant... Much like this often is the case of those who are perishing in their souls."[rh1]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칼빈은 『고린도서 주석』 1:21 해설에서 '선포의 미련함'이 하나님의 의도된 설계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원래의 순서는 인간이 피조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묵상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이 순서가 역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보게 하신 뒤에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신다"고 씁니다.[rh2] 칼빈에게 εὐδόκησεν(에우도케센)은 하나님의 선행적 기쁨이며, 선포의 단순함이 오히려 인간의 자존심을 먼저 무너뜨려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는 구원 전략입니다. 이 해석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1:18-25를 주권적 은혜의 표준 본문으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보게 하신 뒤에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십니다." — "God designs in the first place to make us see ourselves to be fools, before he makes us wise unto salvation."[rh2]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근현대 복음주의)

스펄전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 설교 "십자가의 말씀"(1881)에서 '말의 지혜'와 십자가를 날카롭게 대조합니다. 그는 언어의 탁월성과 우아함이 복음의 효력을 빼앗는다고 경고하며, "십자가가 무효화된다면 그 원인은 '말의 지혜'에 있다"고 단언합니다.[rh3] 1855년 설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지혜에 얼마나 큰 경멸을 부으셨는지를 보라!"라는 탄식으로 시작해, 십자가 선포가 단순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빛난다는 역설을 강조합니다.[rh3] 스펄전의 설교 사역 전체는 수사학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겠다는 바울적 긴장을 실천한 사례입니다.

> "십자가를 무효화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의 지혜'입니다." — "There is an excellence, elegance and eloquence of language which would deprive the Gospel of its due effect."[rh3]

수용사 흐름

크리소스톰·칼빈·스펄전은 서로 다른 세기와 맥락에서 1:18-25를 해석했지만, 세 전통 모두 '왜 어떤 이들은 복음을 거부하는가'라는 물음에 같은 방향으로 답합니다. 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자의 영적 상태, 타락한 이성의 자기과신, 설교자의 수사학적 욕망이 그 장벽입니다. 교부 전통이 영혼의 질병으로, 종교개혁이 역전된 인식 질서로, 근대 복음주의가 설교 방법론의 위험으로 이 문제를 서술하는 것은 다른 언어로 동일한 진리를 고백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교회사 전체에서 '미련한 능력'이었으며, 그 역설 속에서 교회는 선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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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Homily IV (고전 1:18-20), NPNF¹ vol. 12.
  2.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s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vol. 1, trans. John Pringle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8), on 1 Cor. 1:21.
  3. C. H. Spurgeon, "The Word of the Cross" (No. 1611), *Spurgeon's Sermons* 27 (1881); idem, "Christ Crucified" (No. 7–8), *Spurgeon's Sermons* 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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