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7장 18-29절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여호수아 7장 18-29절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여호수아 7장 18-29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여호수아서 강해 시리즈에서 이미 다룬 대로, 본문은 주전 13세기 말 청동기 후기 가나안 진입기를 배경으로 하며, 앞서 여리고 정복(6장)에서 살핀 헤렘(חֵרֶם) — 노획물 전체를 여호와께 온전히 구별해 드리는 성전(聖戰) 관행 — 이 이번 장의 전제가 됩니다. 이 장에서는 그 헤렘 규정을 어긴 사건이 공동체 전체에 어떤 사법적·신학적 절차를 요구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헤렘 위반과 연대책임
7장을 여는 히브리어 구문은 "그러나(וַיִּמְעֲלוּ)"로 시작해, 직전 장의 완전한 승리(6:27)를 곧바로 뒤집습니다. 존 길은 이 장 서두에서 이 구조적 반전을 다음과 같이 짚습니다 — 범죄는 "온 백성이 아니라 그들 중 한 사람"이 저지른 것이었으나, 누가 범인인지 밝혀지지 않은 동안에는 "온 공동체에게 전가되어, 범인을 찾아내 처벌하는 일이 공동체 전체에게 지워졌다. 그렇지 않으면 온 공동체가 그 죄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다."[bg1] 즉 헤렘 위반은 개인의 은밀한 행위였지만, 그 법적 책임은 발각 전까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 본문이 전제하는 사회적 논리입니다. 이 연대책임의 구조는 18-26절에서 범인이 확정된 뒤에도 이어져, 아간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소유물 전체가 함께 처리되는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키일-델리치는 여호수아서 전체 구조 속에서 7-8장을 "아이 성 정복"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는데,[bg2] 이는 7장의 재판·처형 기사가 그 자체로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8장의 재정복을 준비하는 절차임을 시사합니다 — 즉 본문이 다루는 심판은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영에서 죄를 제거해 다시 싸울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비뽑기를 통한 사법 확인 절차
본문 직전 단락(7:14-18)에서 지파-가족-가장-개인 순으로 좁혀 가는 제비뽑기(고랄, גּוֹרָל) 절차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을 직접 구하는 사법적 확인 수단으로 흔히 쓰였습니다(우림과 둠밈을 통한 판결이 같은 원리를 따릅니다). 본문 18절은 그 절차의 마지막 단계 — 가족 안에서 개인이 최종 지목되는 순간 — 에서 시작하며, 19절에서 여호수아가 요구하는 자백은 이미 제비로 확정된 사실에 대한 당사자의 자발적 시인이라는 점에서, 순전히 강압적인 자백 강요와는 구별됩니다.
공동체 처형과 돌무더기 관습
길의 주해대로 사건의 결말은 "그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불살라졌다"는 데 있습니다.[bg1] 24-25절이 보여주는 돌로 치는 처형(רָגַם/סָקַל)과 불사름이 함께 쓰이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 율법에서 중대 범죄에 대한 공동체 전체 참여형 처형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재판장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함께 죄를 처리하는 공동체적 정화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처형 후 시신 위에 돌무더기(גַּל)를 쌓는 관습은 고대 근동 전역에서 흉조의 장소나 저주받은 사건을 후대에 경고하는 기념 표지로 널리 쓰였으며, 26절의 "오늘까지"라는 반복 어구는 이 돌무더기가 본문 기록 당시까지도 실제 지형지물로 남아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참고로 개인의 행위가 가족 전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 자체는 고대 근동 법 전통에서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1901-1902년 수사에서 발굴)은 고대 근동에 이미 성문 법전과 정교한 책임 규정의 전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bg3] 이스라엘의 법 전통은 이후 신명기 24장 16절에서 "아버지는 그 자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녀도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개별 책임 원칙을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아간 사건은 그 원칙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기 전, 헤렘이라는 특수한 성전(聖戰) 범주 안에서 가족 전체가 함께 처리된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베트 아브)와 소유의 연대성
24절이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소와 나귀와 양떼와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함께 끌고 올라갔다고 열거하는 방식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베트 아브(בֵּית אָב, '아버지의 집')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베트 아브는 가장과 그 아내(들), 미혼 자녀, 종, 가축, 천막과 농기구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경제·법적 단위로 기능했으며, 가장의 소유와 행위는 곧 그 집 전체의 소유와 운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간이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노획물을 숨겼다는 21절의 진술도 이 단위 개념 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 장막은 가장 개인의 사적 공간이 아니라 베트 아브 전체가 거주하는 공간이었으므로, 그 안에 감추어진 물건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 물리적으로 근접해 있었던 셈입니다. 본문이 아간의 죄를 "가족 전체의 범죄"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처리 과정에서 가족과 소유가 함께 다루어지는 이유는 이 사회 구조를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시날의 사치품과 국제 교역로
아간이 탐낸 물건 가운데 "시날의 아름다운 겉옷 하나"(21절)가 먼저 언급되는 것도 배경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시날(שִׁנְעָר)은 구약에서 메소포타미아 남부, 곧 바빌로니아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창 10:10, 11:2 등), 그곳에서 만들어진 직물은 청동기 후기 근동 전역에서 값비싼 수입 사치품으로 거래되었습니다. 가나안이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잇는 교역로 한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리고와 같은 성읍에 바빌로니아산 겉옷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설정은 당대의 실제 교역 관행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이라는 구체적 무게 수치 역시, 당시 귀금속이 화폐가 아니라 무게 단위로 거래되던 관행을 반영합니다. 곧 아간이 탐낸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헤렘으로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온 국제 교역망의 최상급 사치품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탐심이 향한 대상의 성격 자체가 본문의 경고를 한층 구체적으로 만듭니다.
참고 자료
- John Gill, *John Gill's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on Joshua 7:1.
- Carl Friedrich Keil; Franz Delitzs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 Joshua, Judges, Ruth*, Introduction.
- J. Dyneley Prince, "The Code of Hammurabi," *The American Journal of Theology* 8 (1904): 601-609.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여호수아 7장 18-29절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원어 실측 접지표의 용례 데이터를 종합하여 >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7:18 — 제비뽑기의 마지막 단계, 아간이 지목되다
본문: וַיַּקְרֵ֥ב אֶת בֵּית֖וֹ לַגְּבָרִ֑ים וַיִּלָּכֵ֗ד עָכָ֞ן בֶּן כַּרְמִ֧י בֶן זַבְדִּ֛י בֶּן זֶ֖רַח לְמַטֵּ֥ה יְהוּדָֽה 직역: 그가 그의 집안을 장정들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니, 유다 지파에 속한 세라의 아들 삽디의 아들 갈미의 아들 아간이 뽑혔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וַיִּלָּכֵד(לָכַד, 니팔 연속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 칼형이면 능동으로 '붙잡다'이지만 여기서는 니팔(수동)로 쓰여, 아간이 스스로 나선 것이 아니라 절차에 의해 '뽑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문법으로 못박습니다. - כַּרְמִ֧י(고유명사, 아간의 조부): 이 이름은 구약 전체 9회 등장하며, 그 가운데 역대상 2장 7절이 같은 계보를 다시 언급하며 아간을 별도의 이름으로 재호명합니다(§3 참조). - LXX/OT 용례: 칠십인역은 18절을 "καὶ ἐνδείκνυμι Αχαρ"(그리고 아카르를 드러내다)로 옮겨, 히브리어 이름 עָכָן을 대체로 Αχαρ로 음역합니다. 아골(עָכוֹר)과 자음이 상응하는 이 음역은 그리스어 역본에서도 이름의 언어유희가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석적 논의: 18절은 지파-가족-가장-개인 순으로 좁혀 온 제비뽑기의 마지막 걸음입니다. 주어를 명시하지 않은 채 "그가 가까이 나아오게 하니"로 시작하는 구문은 여호수아가 매 단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절차를 하나님께 맡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네 세대에 걸친 계보를 상세히 적시하는 방식은 신원을 확정하는 사법 기록의 전형적 어법과 일치하여, 이 절이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공적 확정 절차임을 시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은 우연이 아니라 확실한 절차로 숨은 죄를 지목하십니다. 오늘의 회중도 은밀한 문제가 드러날 리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 드러남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옵니다. 드러나기 전에 스스로 아뢰는 자리를 택하자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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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는 요구
본문: וַיֹּ֨אמֶר יְהוֹשֻׁ֜עַ אֶל עָכָ֗ן בְּנִי֙ שִֽׂים נָ֣א כָב֗וֹד לַֽ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וְתֶן ל֣וֹ תוֹדָ֑ה וְהַגֶּד נָ֥א לִי֙ מֶ֣ה עָשִׂ֔יתָ אַל תְּכַחֵ֖ד מִמֶּֽנִּי 직역: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말하되, 내 아들아, 청하건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자백을 드려라. 청하건대 네가 행한 것을 내게 알리고, 내게서 숨기지 말라.
원어·문법 핵심: - שִׂים נָא כָבוֹד(칼 명령 2인칭 남성 단수): '영광을 돌리라'는 이 정형구는 자백을 재판정 해명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 행위로 규정합니다. 뒤이은 וְתֶן·וְהַגֶּד도 모두 명령형으로 이어져, 세 명령이 한 문장 안에서 자백을 향해 쌓입니다. - אַל תְּכַחֵ֖ד(כָּחַד, 피엘 지시형·jussive 2인칭 남성 단수): 명령형과 달리 부정 지시형으로, 적극적 은폐 행위를 금지합니다. - LXX/OT 용례: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μή κρύπτω ἀπό ἐμοῦ"(내게서 숨기지 말라)로 옮겨, 은폐를 금지하는 히브리어 지시형의 뜻을 그대로 살립니다.
주석적 논의: 여호수아의 화법은 심문자의 언어가 아니라 예배로 먼저 이끄는 언어입니다. "내 아들아"라는 호칭과 자백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먼저 명하는 순서는, 이 절차의 목적이 처벌 확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세우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숨기지 말라"는 지시형은 이어지는 20-21절 자백이 바로 이 명령에 대한 정확한 응답임을 예비합니다.
설교적 함의: 참된 자백은 사람 앞의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 앞의 예배로 시작됩니다. 잘못을 지적받을 때 방어부터 하기 쉬운 회중에게, 방어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 앞에 서는 순서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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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본문: וַיַּ֧עַן עָכָ֛ן אֶת יְהוֹשֻׁ֖עַ וַיֹּאמַ֑ר אָמְנָ֗ה אָנֹכִ֤י חָטָ֨אתִי֙ לַֽ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וְכָזֹ֥את וְכָזֹ֖את עָשִֽׂיתִי 직역: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입니다. 이러하고 저러하게 내가 행하였나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חָטָ֨אתִי֙(칼 완료 1인칭 공성 단수):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난다는 이미지에서 나온 이 동사는 죄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 표현입니다. 완료형은 조건절이나 변명 없이 죄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어법이며, 19절 여호수아의 요구에 대한 문법적으로 정확한 응답입니다. - אָמְנָ֗ה(부사, '진실로'): 화자의 진술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임을 강조하는 자리에 배치되는 부사로, 아간의 자백이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 진술임을 어휘 차원에서 뒷받침합니다.
주석적 논의: 20절 전체가 단 하나의 완료형 자기 진술로 채워져, 아간이 더 이상 도망갈 여지가 없는 자리에 서 있음을 문체로 보여줍니다. "이러하고 저러하게"라는 지시적 표현은 세부를 21절로 넘기는 서사적 장치이자, 진술이 즉흥적 자백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을 순서대로 되짚는 자기 서사임을 드러냅니다.
설교적 함의: 진정한 회개는 에두르지 않고 "내가 범죄하였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시인할 때조차 상황과 남 탓을 먼저 늘어놓기 쉬운 회중에게, 수식어 없는 자기 진술이 회개의 출발점임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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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 보고 탐내어 취하여 감추다
본문: וָאֵרֶא(케티브: ואראה) בַשָּׁלָ֡ל אַדֶּ֣רֶת שִׁנְעָר֩ אַחַ֨ת טוֹבָ֜ה וּמָאתַ֧יִם שְׁקָלִ֣ים כֶּ֗סֶף וּלְשׁ֨וֹן זָהָ֤ב אֶחָד֙ חֲמִשִּׁ֤ים שְׁקָלִים֙ מִשְׁקָל֔וֹ וָֽאֶחְמְדֵ֖ם וָֽאֶקָּחֵ֑ם וְהִנָּ֨ם טְמוּנִ֥ים בָּאָ֛רֶץ בְּת֥וֹךְ הָאָֽהֳלִ֖י וְהַכֶּ֥סֶף תַּחְתֶּֽיהָ 직역: 내가 노략물 가운데서 시날의 아름다운 겉옷 하나와 은 이백 세겔과 무게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내가 그것들을 탐내어 가졌나입니다. 보소서, 그것들이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어져 있고, 은은 그 밑에 있나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וָֽאֶחְמְדֵ֖ם(חָמַד, 칼 연속미완료 1인칭 공성 단수): 앞의 '보다'(רָאָה)와 뒤의 '가졌나이다'(וָאֶקָּחֵם)를 잇는 연속미완료 사슬 한가운데 놓여, 보다→탐하다→취하다가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를 이룹니다. 같은 삼단 구조가 창세기 3장 6절 — 하와가 나무 열매를 보고 탐하여 먹은 장면 — 에서도 나타나, 유혹이 진행되는 문법적 순서 자체가 겹칩니다. - אַדֶּ֣רֶת(여성 단수 연계형, '겉옷'): 이 명사는 열왕기의 엘리야 겉옷(왕하 2:13)을 가리키는 데도 쓰여, 같은 단어가 한쪽에서는 거룩한 상징으로 다른 쪽에서는 탐심의 대상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죄와 은혜를 가른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LXX/OT 용례: 칠십인역 21절은 "ὁράω... προνομή ψιλός ποικίλος καλός"(노략물 가운데 아름답고 정교한 겉옷을 보다)로 옮겨, '보다-노략물-겉옷'이라는 히브리어 어순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여호수아 7장 18-29절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종교개혁 이후 교회사에서 이 본문이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니케아 이전·니케아 교부 문헌에서는 본문(수 7:18-26)을 직접 다룬 근거를 확인하지 못하여, 실제로 확인 가능한 자료가 있는 청교도·감리교 두 시대를 다룹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
헨리는 아간 사건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되는 한 패턴 — 가장 형통한 순간에 죄로 인해 진행이 가로막히는 패턴 — 의 한 예로 자리매김합니다. 금송아지 사건과 가데스에서의 원망, 브올의 죄악을 앞서 언급하며, 이번에는 "오직 한 사람 또는 한 가문의 죄"였기에 그 파장이 앞선 사건들만큼 파괴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전히 스스로 행실을 살펴야 함을 일깨웠다고 짚습니다. 이 사건에서 그는 율법도 가나안 땅 자체도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며, 거룩함과 평화의 완전함은 오직 하늘의 가나안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고 마무리합니다.[rh1]
헨리가 특히 힘주어 다루는 곳은 죄의 심리적 경로입니다. 그는 아간의 죄가 "눈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며,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본 것과 나란히 놓습니다. 보는 것이 마음의 욕심으로, 욕심이 다시 은폐로 이어지는 이 흐름을 헨리는 죄의 "기만성"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 범할 때는 즐거우나 돌이켜 보면 쓰디쓴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실 때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관심사여야 한다며, 욥의 기도 — "주여, 어찌하여 나와 다투시는지 내게 보이소서" — 를 함께 드릴 것을 권합니다. 아간의 자녀들이 함께 처형된 사실에서는 "자기 것 이상을 움켜쥐는 자는 자기 것마저 잃는다"는 잠언적 결론을, 그리고 죄가 "그 죄인 자신뿐 아니라 그 주변 모든 이에게 매우 괴로운 것"이라는 관찰을 덧붙입니다.[rh2]
> "아간의 죄는 눈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으니,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본 것과 같다... 범할 때는 즐거우나 돌아보면 쓰디쓴 것, 그것이 죄의 기만이다." — "Achan's sin began in the eye. He saw these fine things, as Eve saw the forbidden fruit... that which is pleasing in the commission, is bitter in the reflection."[rh2]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웨슬리는 헨리와 달리 개인의 내면보다 공동체 전체가 왜 한 사람의 죄로 인해 함께 벌을 받았는가라는 사회윤리적 질문에 집중합니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1절의 복수 주어가 실은 마태복음 26장 8절에서 유다 한 사람의 행위가 "제자들"전체에게 돌려진 것과 같은 흔한 어법(제유)이라고 지적하며 본문 해석의 문법적 토대를 놓습니다. 그런 다음 이 물음에 세 겹의 답을 제시합니다 — 첫째,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실제로 그 죄에 연루되었을 가능성(탐냈거나, 알고도 숨겼거나, 슬퍼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지 않았거나), 둘째, 그렇게 함으로써 죄를 한층 더 미워하게 하려는 목적, 셋째,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자기 행실을 삼가고 서로의 허물을 막는 데 더 부지런하도록 하려는 목적입니다.[rh3] 웨슬리는 계보의 세부(삽디가 역대상 2장 6절에서 시므리로도 불린다는 점, 세라가 창세기 38장 30절 유다의 아들로서 애굽까지 동행했다는 점)를 정확히 대조하며 아간이 이미 노인이었을 연대까지 계산하는데, 이는 그의 주석이 감정적 권면보다 본문의 사실관계를 촘촘히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함을 보여줍니다.
> "하나님은 왜 이 한 사람의 죄로 온 공동체를 벌하셨는가...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자기 행실을 삼가고 형제의 허물을 막는 데 더욱 부지런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그들과 온 공동체에 큰 유익이 된다." — "Why did God punish the whole society for this one man's sin?... to oblige all the members of every society to be more circumspect in ordering their own actions, and more diligent to prevent the miscarriages of their brethren, which is a great benefit to them, and to the whole society."[rh3]
수용사 흐름
두 세기를 잇는 흐름에서 뚜렷한 전환이 나타납니다. 17세기 말 청교도 헨리는 본문을 개인 영혼의 자기 성찰로 이끄는 자료로 읽어, 죄가 눈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은폐로 번지는 내적 경로를 추적하고 욥의 기도로 독자를 하나님 앞의 자기 점검으로 이끕니다 — 경건의 초점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입니다. 반면 한 세대 뒤 감리교 부흥 운동의 웨슬리는 같은 본문을 문법적 제유 관찰에서 출발해 개인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사회적 파장과,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책임지는 구조(웨슬리 자신이 세운 속회·반회 제도의 신학적 배경)로 초점을 옮깁니다. 곧 같은 아간 이야기가 청교도 전통에서는 내밀한 회개의 거울로, 감리교 전통에서는 상호 책임의 근거 본문으로 각기 다르게 활용된 것입니다. 이 두 읽기는 서로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본문이 개인의 은밀한 죄와 공동체의 연대책임을 동시에 다루는 이중 구조를 지녔음을 후대 독자들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헨리가 마무리에서 암시한 "하늘의 가나안에서만 완전한 평화가 있다"는 종말론적 유보와, 웨슬리가 강조한 "지금 여기 공동체의 상호 돌봄"이라는 실천적 요청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화 사이에서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두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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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2 (Joshua to Esther)*, on Joshua 7.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on Joshua 7.
-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on Joshua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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