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장 33-39절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에스겔 20장 33-39절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에스겔 20장 33-39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바빌론 포로와 에스겔의 역사적 맥락

에스겔 20장의 배경은 기원전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유다 왕국의 최후를 장식하는 격동의 포로 시대입니다.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은 주전 605년 여호야김 왕 3년에 유다를 처음 침공했고, 597년에는 여호야긴 왕과 귀족·제사장·장인 등 상류층 수천 명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에스겔은 이 첫 번째 유수에서 바빌론으로 가 그발 강(현 이라크 남부 닙푸르 지역의 운하)가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586년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되기 전부터 바빌론 포로 공동체 안에서 예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장은 포로 7년째(주전 591년 8월경)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나아와 여호와께 '묻고자'(inquire) 했는데, 이 행위는 당시 예언자를 통한 신탁 수여 관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문의를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20:3). 포로 공동체는 예루살렘이 아직 서 있는 동안 거짓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상태였습니다. 일부는 바빌론 포로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빠른 귀환을 기대했습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이 거짓 희망을 철저히 깨뜨리는 심판 선언이었습니다.[bg1]

출애굽 전통의 신학적 재용

에스겔 20장의 역사 회고는 출애굽부터 시작합니다. '강한 손과 편 팔과 쏟아진 진노'(33-34절)라는 세 겹 표현은 출애굽 전통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묘사하는 표준 공식입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에서 두드러지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행사하신 신적 권능을 묘사합니다. 에스겔은 이 출애굽 공식을 단순히 과거 회고로 쓰지 않습니다. 그는 출애굽 심판 공식을 미래 심판 선언에 그대로 재용함으로써, 바빌론 포로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행위가 출애굽과 유비적 구조를 지닌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이를 흔히 '제2출애굽'(New Exodus) 모티프라 합니다.

출애굽기의 광야 심판 전통(민 14장)도 이 본문의 직접적 배경입니다. 출애굽 세대가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불신 세대가 전멸했듯이(민 14:26-35), 에스겔은 포로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의 광야'(35절)에서 동일한 패턴의 심판을 받을 것을 선언합니다. 36절은 이 유비를 명시합니다: "내가 이집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처럼, 그처럼 내가 너희를 심판하리라." 과거의 구원 역사가 현재의 심판 선언의 정당성과 패턴을 제공하는 구조입니다.[bg2]

목양 관습과 레위기 십일조 제도 (37절 배경)

37절의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함'은 레위기 27:32의 목양 관습에서 온 이미지입니다. 레위기 27:32은 십일조를 드릴 때 양들이 목자의 지팡이 아래를 지나가면서 열 번째 것을 여호와의 성물로 구별하는 관행을 묘사합니다. 목자는 이렇게 양들을 세고 검사했습니다. 에스겔은 이 일상적 목양 관습을 하나님의 심판적 선별 행위에 적용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한 명씩 검사하여 반항자와 신실한 자를 나누신다는 상징입니다. 이는 에스겔 34장에서 발전되는 '목자 하나님'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목자가 양 무리를 돌보되 병든 양·약한 양·잃어버린 양을 찾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밀히 살피고 선별하십니다.

'언약의 매'(מָסֹרֶת הַבְּרִית, 마소레트 하브리트)는 구약성경에서 매우 드문 표현입니다. '마소레트'(מָסֹרֶת)는 '띠·속박'을 뜻하며, 여기서는 언약의 의무적 구속력을 물리적 속박의 이미지로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포로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파괴적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책임 안에 다시금 묶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포로기 신학: 분산과 정체성

주전 597년과 586년 사이 포로 유대인들은 고국 상실, 성전 부재, 왕조 단절이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은 특정 땅(가나안)과 특정 장소(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는 전통적 신앙은 바빌론 현실 앞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에스겔 20:33-39의 신학적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통치(왕권)는 지리적 경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강한 손과 편 팔'로 열방 가운데서 다스리시는 하나님(33절)은 이스라엘이 어디에 있든 그 위에 주권자로 계십니다. 둘째, 포로 상태는 언약의 파기가 아니라 언약적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언약의 틀 안에서 정화 심판을 시행하고 계십니다.[bg3]

히에벨(Janina M. Hiebel)은 에스겔서에서 '희망' 개념을 분석하면서, 바빌론 유수는 고대 근동에서 전례 없는 전면적 위기—종교·정치·사회 구조의 동시 붕괴—였음을 지적합니다. 그는 에스겔의 신학이 이 위기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응답을 담고 있으며, 포로 공동체의 정체성 재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bg4]

하나님의 이름(שֵׁם) 신학 (39절 배경)

39절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שֵׁם קָדְשִׁ֙י לֹא תְחַלְּלוּ)는 에스겔 신학의 중심 관심사를 집약합니다. 에스겔 36:20-23은 이를 더 명시적으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열방에 흩어짐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앞에서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신의 '이름'(שֵׁם, 솀)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신의 명성·성품·존재를 집약하는 실체적 개념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패망함으로써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신'으로 열방에게 비쳐지게 되었습니다. 이 신학적 문제가 에스겔에서 이스라엘 회복의 일차적 동기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공로나 회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열방 앞에서 되찾기 위해(36:22-23) 회복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독특한 신학 구조는 이스라엘 역사를 단순한 민족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와 결부된 구속사로 읽게 합니다.

참고 자료

  1. 야니나 M. 히에벨(Janina M. Hiebel), "Hope in Exile: In Conversation with Ezekiel," *Religions* 10 (2019): 476. DOI: 10.3390/rel10080476.
  2. 라파엘 푸르만(Refael Furman), "Trauma and Post-Trauma in the Book of Ezekiel," *Old Testament Essays* 33 (2020): 4. DOI: 10.17159/2312-3621/2020/v33n1a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3. V. 은디코켈레 N. 므시셀와(V. Ndikhokele N. Mtshiselwa), "Remembering and Constructing Israelite Identity in Postexilic Yehud," *Verbum et Ecclesia* 37 (2016): 1. DOI: 10.4102/ve.v37i1.150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4. 히에벨, "Hope in Exile," 476.

에스겔 20장 33-39절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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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 — 하나님의 왕권 선언: 삼중 맹세 공식

본문: חַי אָנִי נְאֻם אֲדֹנָי יְהוִה אִם לֹא בְּיָד חֲזָקָה וּבִזְרוֹעַ נְטוּיָה 직역: 내가 살아 있노라 — 주 여호와의 선언이니 — 강한 손과 편 팔과 쏟아진 진노로 내가 너희 위에 왕으로 다스리리라.

원어·문법 핵심: - חַי אָנִי (하이 아니, '내가 살아 있노라'): 신적 맹세 최고급 공식. 하나님이 자기 존재를 담보로 하는 서약이다(민 14:21; 겔 5:11). - יָד חֲזָקָה (야드 하자카)·זְרוֹעַ נְטוּיָה (제로아 네투야)·חֵמָה שְׁפוּכָה (헤마 쉬푸카): 출애굽 삼중 공식(신 4:34; 5:15; 26:8). LXX는 χείρ κραταιός·βραχίων ὑψηλός·βασιλεύω로 옮겨 삼중 구조와 왕권 선언을 보존한다. - מָלַךְ (말라크, '왕으로 다스리다'): 이스라엘의 '열방처럼 되겠다' 선언(32절)에 맞선 신적 왕권 역선언이다.

주석적 논의: 33절은 20장 역사 회고(1-29절)·고발(30-32절) 뒤 왕권 선언으로 미래를 향해 전환하는 절정이다. 삼중 표현이 34절에 그대로 반복되어 왕권 선언이 분노가 아닌 정밀한 신적 계획임을 강조한다. 크라우치(Crouch, 2022)는 에스겔서가 포로기 집단 트라우마를 신학적으로 의미화하는 마스터 내러티브를 구축한다고 분석한다.[v33oa1]

설교적 함의: 이스라엘이 열방을 따르겠다 선언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내가 살아 있노라'며 왕권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왕권은 인간의 순종에 의존하지 않는다. 새벽 기도의 자리에서 회중은 흔들리는 신앙 위에도 왕이신 하나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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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 — 제2출애굽의 선포: 흩음에서 모으심으로

본문: וְהוֹצֵאתִי אֶתְכֶם מִן הָעַמִּים וְקִבַּצְתִּי אֶתְכֶם מִן הָאֲרָצוֹת 직역: 내가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고, 너희가 흩어진 나라들에서 너희를 모을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הוֹצֵאתִי (호체티, '이끌어 내다'): 히필 예언적 완료. 출애굽 언어(הוֹצִיא יהוה)를 미래 선언에 재용한 것으로 미래 사건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 וְקִבַּצְתִּי (베키바츠티, '모으다'): 흩어짐(נְפוֹצֹתֶם)의 역전. LXX는 ἐξάγω(이끌어 냄)·εἰσδέχομαι(받아들임) 쌍으로 옮겨 이끌어 냄과 모으심의 대조를 보존한다.

주석적 논의: 34절은 33절 왕권 선언을 즉각적 행위로 구체화한다. 첫 출애굽에서 '강한 손·편 팔'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듯이(출 6:6), 이제 동일 공식으로 '여러 민족'에서 이끌어 내신다. 애달리(Adalı, 2025)는 에스겔서의 민족 지리 구도가 바빌로니아 세계 지도 전통을 신학적으로 재편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v34oa1]

설교적 함의: 흩어짐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흩으신 분이 모으시는 분이기도 하다. 분열과 상실 앞에 있는 회중에게 이 절은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도 이끌어 내고 모으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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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 여러 민족의 광야: 얼굴과 얼굴의 심판

본문: וְהֵבֵאתִי אֶתְכֶם אֶל מִדְבַּר הָעַמִּים וְנִשְׁפַּטְתִּי אִתְּכֶם שָׁם פָּנִים אֶל פָּנִים 직역: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의 광야로 데려가, 거기서 너희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심판할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מִדְבַּר הָעַמִּים (미드바르 하암밈, '여러 민족의 광야'): 구약에 단 한 번 등장. 이집트 광야의 대응 개념으로 포로기 이방 세계를 신학적 정화 공간으로 지시한다. - נִשְׁפַּטְתִּי (니쉬파티): 상호적 닢알. LXX는 διακρίνω πρός(대면하여 판결)로 옮겨 인격적 대면 의미를 보존한다. 고대 근동 법정(신아시리아 SAA 판결문)의 '왕 앞에 선 피고' 공식이 이 대면 재판 구조와 유사하다. - פָּנִים אֶל פָּנִים (파님 엘 파님, '얼굴과 얼굴 대면'): 창 32:30(브니엘)과 같은 표현. 인격적 대면 의미를 집단 심판에 적용한다.

주석적 논의: 35절은 에스겔 20장의 신학적 중심이다. '여러 민족의 광야'는 이집트 광야(36절)의 신학적 대응체로, 하나님이 포로기 이방 세계에서 이스라엘과 일대일 대면 심판을 행하신다. '얼굴과 얼굴' 표현은 법적 처형 이미지만이 아니라 인격적 만남을 함께 담는다.

설교적 함의: 새벽 기도의 자리는 '얼굴과 얼굴 대면'의 영성적 공간이다. 하나님은 익명으로 처리하지 않으신다. 각 사람을 인격으로 보시며 심판하신다는 것이 두려움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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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 출애굽 광야 유비: 원형과 반복

본문: כַּאֲשֶׁר נִשְׁפַּטְתִּי אֶת אֲבוֹתֵיכֶם בְּמִדְבַּר אֶרֶץ מִצְרַיִם כֵּן אִשָּׁפֵט אִתְּכֶם 직역: 내가 이집트 땅의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처럼, 그처럼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כַּאֲשֶׁר... כֵּן (카아쉐르... 켄, '...처럼... 그처럼'): 과거 사건을 원형으로 미래를 선언하는 예언적 유비 공식이다. - בְּמִדְבַּר אֶרֶץ מִצְרַיִם (베미드바르 에레츠 미츠라임): 민 14장 반항과 심판의 장소. LXX는 ἡ ἔρημος γῆ Αἰγύπτου로 역사성을 보존하며, 신 32:10의 광야 발견 전통과 연결된다. - אֲבוֹתֵיכֶם (아보테이켐, '너희 조상들'): 조상의 패턴이 현재 세대에 반복된다는 역사 연속성 선언이다.

주석적 논의: 36절은 예언자적 역사관의 핵심 논리를 드러낸다. 에스겔은 출애굽 광야 심판(민 14:20-35)을 포로기 이스라엘에게 반복될 패턴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행위는 자의적이지 않고 역사 안에서 일관된 패턴을 갖는다는 것이 이 유비 논증의 신뢰 근거다.

설교적 함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관성 때문에 반복의 패턴을 갖는다. 이 절은 설교자에게 '우리는 이 패턴 안에 있다'는 해석 틀을 제공한다. 광야 세대의 불순종과 심판이 오늘 회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신학적 근거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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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7 —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함: 선별과 언약

본문: וְהַעֲבַרְתִּי אֶתְכֶם תַּחַת הַשָּׁבֶט וְהֵבֵאתִי אֶתְכֶם בְּמָסֹרֶת הַבְּרִית 직역: 내가 너희를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하고, 너희를 언약의 매 안으로 데려올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שֵׁבֶט (셰베트, '지팡이'): 레 27:32의 십일조 의식 구문(הַעֲבִיר תַּחַת הַשֵּׁבֶט)에서 정확히 가져온 목자의 선별 이미지. 에스겔 34장 목자 하나님 주제와 연결된다. - מָסֹרֶת הַבְּרִית (마소레트 하브리트, '언약의 매'): 구약 희귀 어휘로 언약의 구속력을 속박 이미지로 표현한 독특한 조어다. 주목: LXX는 ἐν ἀριθμός(수를 헤아려)로 다르게 옮겨 '남은 자를 수 헤아려 받아들임'이라는 대안적 신학을 반영한다.

주석적 논의: 37절의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함'은 체벌이 아니라 목자의 선별 행위다. 레 27:32에서 양 떼를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하며 열 번째를 구별하는 관행을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별에 적용한다. '언약의 매에 들임'은 남은 자에게 면죄부가 아니라 더 깊은 책임으로의 편입을 의미한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의 선별 심판에서 살아남은 것이 면제가 아니라 소명이다. 지팡이 아래 지나간 자는 언약의 매 안으로 들어간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모든 요구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더 깊은 헌신으로의 초청임을 이 절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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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C. L. 크라우치(C. L. Crouch), "Ezekiel and the Construction of Cultural Trauma," *Open Theology* 8 (2022): 1–15. DOI: 10.1515/opth-2022-0221.
  2. 셀림 페루흐 아달리(Selim Ferruh Adalı), "Marking Nations Around New Jerusalem: The Mental Map of Ezekiel in the Babylonian Context," *Religions* 16 (2025): 648. DOI: 10.3390/rel16050648.
  3. 클라우스-페터 아담(Klaus-Peter Adam), "Gillûlîm: Rollers, Scarabs in Ezekiel," *Catholic Biblical Quarterly* 83 (2021): 420–440. DOI: 10.1353/cbq.2021.004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에스겔 20장 33-39절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종교개혁에서 19세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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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존 칼빈은 에스겔 20:33-39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귀속성이라는 두 축에서 해석했습니다. 33절의 '내가 살아 있노라'는 맹세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자기 본성을 담보로 선언하시는 최고 수준의 언약 확증을 읽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방을 따르겠다 반항했음에도(32절), 하나님은 왕으로서의 통치권을 포기하지 않으신다—이것이 칼빈이 강조한 선택의 불변성입니다.

37절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함'에 대한 칼빈의 해석은 독창적입니다. 그는 이 지팡이를 징벌의 막대로 읽지 않고 목자의 지팡이로 해석했습니다. 칼빈은 이렇게 풀었습니다: "그것은 목자가 양 떼를 세고 표시하는 것에서 가져온 비유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양 떼로 항상 여기실 것을 약속하신 것처럼 보인다."[rh1] 이 목자적 독해는 광야 심판의 잔혹함 뒤에 하나님의 소유권과 돌봄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선별은 버림이 아니라 목자의 세심한 관리입니다. 칼빈은 또한 39절의 역설적 명령—'섬기겠거든 섬겨라, 그러나 내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혼합 신앙의 위선보다 더 중요하다는 개혁 신학의 핵심 관심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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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복음주의)

영국 청교도 전통의 대표적 주석가 매튜 헨리는 에스겔 20장 전체를 하나님의 역사 통치와 언약 신실하심의 증언으로 읽었습니다. 헨리는 이 장의 구조를 세 층위로 분석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불쾌하심 표명, 둘째 그 불쾌하심의 역사적 근거(반복된 배신), 셋째 하나님이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실 일들입니다.[rh2] 이 삼층 구조는 청교도의 설교 패턴—죄의 심각성 → 하나님의 심판 → 그럼에도 지속되는 은혜—을 반영합니다.

헨리에게 33-39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반항하는 이스라엘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확증입니다. 헨리는 특히 새벽 예배 맥락에서 이 본문이 갖는 실천적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회중을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함')입니다. 청교도적 설교는 이 인식 공식을 개인의 회심과 경건 훈련의 목표로 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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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복음주의 설교)

찰스 스펄전은 1885년 5월 10일 메트로폴리탄 타버내클에서 에스겔 20:34-38을 본문으로 '언약의 매'(The Bond of the Covenant)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습니다. 스펄전은 이 설교에서 포로지에 흩어진 이스라엘이 민족 정체성을 잃어가던 상황에 주목합니다. 이스라엘이 "국적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던 그 순간에, 하나님은 오히려 이들을 이끌어 내고 모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스펄전은 이 역설에서 복음의 핵심을 봤습니다: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려 할 때, 하나님이 언약을 이유로 그들을 붙드신다는 것입니다.[rh3]

스펄전에게 '지팡이 아래 지나게 함'(37절)은 회중에게 매우 실용적인 은혜의 이미지였습니다. 심판의 선별 과정이 두렵게 보이지만, 그 과정을 통과한 자는 '언약의 매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묶인다는 것이 구속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역설—이것이 스펄전이 이 본문에서 전한 새벽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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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에스겔 20:33-39의 수용사는 세 가지 반복 주제를 드러냅니다. 첫째, 하나님의 왕권과 선택의 불변성이 칼빈 이래 개혁신학 전통의 일관된 강조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반항이 하나님의 왕권을 훼손하지 못한다는 선언이 교회사 전체를 통해 위로의 선포로 전달되었습니다. 둘째, 목자적 선별과 정화의 이미지가 시대마다 다른 강조를 받았습니다. 칼빈이 목자의 소유권을 강조했다면, 청교도는 정화의 과정을 경건 훈련과 연결했고, 스펄전은 그 과정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언약적 안전을 강조했습니다. 셋째,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함'이라는 인식 공식이 설교자마다 심판의 목적으로 반복 설명되었습니다. 이 공식은 심판을 파괴가 아니라 계시로 읽게 하는 신학적 틀을 제공했습니다. 에스겔 20:33-39는 교회사에서 '하나님의 엄격하심과 신실하심은 모순이 아니다'는 변증적 진술로 기능해 왔습니다.

참고 자료

  1. 존 칼빈(John Calvin), *Commentary on Ezekiel, Volume 2* (겔 20:37).
  2. 매튜 헨리(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4 (Isaiah to Malachi)* (겔 20장).
  3.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The Bond of the Covenant," *Sermons, Vol. 31* (1885), No. 1840 (겔 20: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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