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1-19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시편 116:1-19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시편 116:1-19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시편 116편의 장르와 사회적 자리
시편 116편은 개인 감사 시편(Individual Psalm of Thanksgiving)의 전형적 양식을 따릅니다. 개인 감사 시편은 대개 위기의 회상 → 부르짖음 → 구원 → 감사·서원 이행의 구조로 구성됩니다. 시편 116편은 이 구조를 완결된 형태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시인은 사망의 위기(3절)에서 건짐을 받은 후 성소에서 공동체 앞에 서원을 이행하는 공적 의례를 행합니다(14·18절).
히브리어 원문의 장르를 다루는 학계 논의에서 벤트란트(Ernst R. Wendland)는 시편 시가문학이 갖는 언어적 밀도와 청중 소통 기능을 강조하면서, 감사 시편의 "보고 구조"(report structure)가 회중 예배 안에서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분석합니다.[bg1] 이 시편 역시 개인의 경험을 공동체 예배 맥락으로 이식하는 양식적 특성을 공유합니다.
감사 제의와 서원 이행 관습
시편 116편의 핵심 배경은 고대 이스라엘의 감사 제의(제바 토다, זֶבַח תּוֹדָה)입니다. 레위기 7장은 감사 제물의 규례를 명시합니다. 감사 제물을 드릴 때는 누룩 없는 과자와 기름 섞은 과자를 함께 드리며(레위기 7:12), 이 제물은 드린 날에 먹어야 했습니다. 이 즉시 소비 규정은 감사를 미루지 않는 긴박성을 제의적으로 표현합니다.
구체적으로 시편 116:13의 "구원의 잔"(כּוֹס יְשׁוּעוֹת, 코스 예슈오트)은 감사 제의의 전례적 요소로 이해됩니다. 성전 예배에서 제물 드리기 전 드리는 전제(헌주)와 연결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13절)은 이 의례의 언어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구원 이야기를 공동체 앞에서 낭독하고 제물을 드리는 이 행위는 고대 이스라엘 예배의 사회적 기억(social memory) 기제이기도 합니다.
서원(נֶדֶר, 네데르)의 이행은 14절과 18절에서 반복됩니다. 서원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린 약속으로, 개인의 신앙을 공동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사회적 의례였습니다. "온 백성 앞에서"(נֶגְדָה לְכָל עַמּוֹ, 네그다 르콜 암모)라는 반복 표현(14·18절)은 이 서원 이행이 사적 경건이 아니라 공개적 간증의 성격을 띰을 분명히 합니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성전 예배의 공적 특성과 서원 이행의 사회적 의미를 여러 차례 언급합니다.[bg2]
스올 개념과 죽음 신학
3절의 "스올의 고통"(מְצָרֵי שְׁאוֹל, 메차레 셰올)은 고대 이스라엘의 사후 세계 이해를 반영합니다. 스올(שְׁאוֹל, 셰올)은 사망한 자들이 머무는 지하 영역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실존적 공간으로 묘사됩니다(시 6:5 참조). 히브리 사유에서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종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NE(고대 근동) 문헌에도 죽음을 결박하는 언어가 등장합니다. 중기 바빌로니아 시대의 한 문학 문헌은 사망의 영역에 대한 제의적 상상을 담고 있으며, 신아시리아 서신에서도 죽음의 위협이 제의적 맥락에서 언급됩니다. 이러한 ANE 병행 자료는 고대 이스라엘의 죽음 담론이 주변 문화와 어느 정도 공유된 언어 세계 위에 있으면서도, 여호와에 대한 독특한 인격적 신뢰(1-2절)를 통해 차별화됨을 보여줍니다.
15절의 "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의 눈에 귀중하다"(יָקָר בְּעֵינֵי יְהוָה הַמָּוְתָה לַחֲסִידָיו)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관에서 나온 선언입니다. 주변 민족들의 신들은 죽음 영역과 거리를 두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여호와는 성도의 죽음을 감찰하시며 그것을 "귀중히"(יָקָר, 야카르) 여기십니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사망 영역까지 미침을 선언하는 신학적 명제입니다.
순례와 성전 예배의 사회적 맥락
시편 116편은 예루살렘 성전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지목합니다(19절: "여호와의 집 뜰 안에서,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이는 이 시편이 개인의 사적 기도가 아니라 성전 순례와 공동체 예배의 틀 안에서 기능했음을 시사합니다.
이집트 할렐(이집트 할렐, 시편 113-118편) 묶음에서 시편 116편의 위치는 중요합니다. 유대 전통에서 이 묶음은 유월절 식사의 중심에 배치됩니다. 미쉬나 페사힘(Pesachim) 10장의 기록에 따르면, 유월절 식사 전반부에 시편 113-114편을, 후반부에 115-118편을 불렀습니다. 이 관습은 신약 시대 이전으로 소급되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후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셨을 때(마태복음 26:30, 마가복음 14:26) 부른 찬송이 이 할렐 시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전례적 맥락은 시편 116편이 단순한 개인의 감사를 넘어 출애굽 구원의 기억을 공동체적으로 재현하는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매 유월절마다 이 시편을 부름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는 자신들의 역사적 구원과 개인의 구원 경험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이민·디아스포라 신앙 공동체와의 접점
시편 116편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놓칠 수 없는 차원은 포로기 이후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관점입니다. "내가 생명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 걸어 다니리라"(9절)와 "예루살렘 안에서"(19절)의 대비는 성전과 분리된 일상의 삶에서도 여호와와의 동행을 고백하는 신앙과 예루살렘 공동체 예배 사이의 장력을 담고 있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하여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듯이, 이 시편은 지리적 이산(離散) 상황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신뢰와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신앙 고백으로 기능했습니다. 뉴저지 이민 교회 공동체가 이 본문을 예배에서 만날 때,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서원을 이행하는 시인의 고백은 단순한 역사적 문헌이 아니라 현재의 신앙 경험을 해석하는 언어가 됩니다.
고고학적 증거
예루살렘 성전 구역(Second Temple Period)은 이 시편의 "여호와의 집 뜰"(19절)과 직접 연결됩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 구역은 히스기야 시대(주전 8세기)부터 지속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성전 뜰에서의 공적 예배가 활발했음을 출토 유물들이 증언합니다. 제2성전 시기(주전 520년 ~ 주후 70년) 예루살렘은 순례자들의 중심지로, 이 기간 동안 성전 뜰에서 감사 제의와 서원 이행이 규칙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참고 자료
- Ernst R. Wendland, "Poeticizing the Psalter in an African Language," *Open Theology* 2 (2016), pp. 1-47.
- Flavius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trans. William Whiston (Project Gutenberg), §95.
시편 116:1-19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ICC 주석, 원어 분석, 학술 자료를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시편 116편은 19절이므로 의미 단위별로 그룹화하여 주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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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2 — 응답된 기도에서 흘러나오는 사랑
본문: אָהַבְתִּי כִּי יִשְׁמַע יְהוָה אֶת קוֹלִי תַּחֲנוּנָי 직역: 나는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의 목소리, 나의 간구들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אָהַבְתִּי(아하브티): 칼 완료 1인칭 — 동사로 시작하는 문장 개시는 해당 동작의 전면성을 강조합니다(GKC §111a). 완료형은 위기를 통과한 뒤 확인된 결정적 사랑입니다. LXX는 ἠγάπησα(에가페사, 아오리스트)로 번역합니다. - תַּחֲנוּנָי(타하누나이): 복수 연계형 — 기본 어근 חָנַן(한-은혜)에서 파생. 복수형은 반복된 간절한 기도들을 가리킵니다. - יִשְׁמַע(이쉬마): 칼 미완료 — 기도 응답이 일관된 속성임을 암시합니다.
주석적 논의: 브릭스(Briggs & Briggs)는 이 시편이 야훼를 기도의 응답자로 확인하는 사랑의 서약으로 시작하며, "부름"(קָרָא) 모티프가 전체를 구조화한다고 분석합니다(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2, ICC, p.419). 1절의 כִּי(키)는 원인절을 도입하여 사랑의 근거를 즉각 제시합니다 — 히브리적 신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구체적 응답 경험에 뿌리를 둡니다. 2절의 "나의 날들 동안 내가 부를 것이다"는 칼 미완료로 지속적 헌신을 표현합니다.
설교적 함의: 감사는 경험을 통해 확인된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기도 생활의 뿌리임을 새벽 예배 공동체에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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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4 — 죽음의 포위와 이름 부르기
본문: אֲפָפוּנִי חֶבְלֵי מָוֶת וּמְצָרֵי שְׁאוֹל מְצָאוּנִי 직역: 사망의 줄들이 나를 에워쌌고, 스올의 고통들이 나를 만났으며.
원어·문법 핵심: - חֶבְלֵי מָוֶת(헤블레 마베트): 복수 연계형 — 사망이 밧줄처럼 묶는 중층적 포위. BDB는 חֶבֶל의 기본 의미를 "줄, 밧줄" 및 "산통"으로 제시합니다. LXX는 ὠδῖνες θανάτου(탄생의 산통)로 번역하여 사도행전 2:24에서 인용됩니다. 사무엘하 22:5-6(시 18:4-6 병행)이 동일한 언어("사망의 줄")를 사용하는 1차 배경입니다. ANE 자료로 중기 바빌로니아 시대 길키샤르 서사시(HILPRECHT_COLLECTION, ref.1)와 신아시리아 서신(SAA 13 034, 니네베)에도 죽음의 위협을 제의적 언어로 표현하는 병행이 발견됩니다. 이는 시편 116편의 언어 세계가 주변 고대 근동 문화와 공명하면서도, 여호와를 향한 인격적 부르짖음(4절)으로 독특하게 차별화됨을 보여줍니다. - אָנָּה(안나, 4절): 불변화 감탄사 — 가장 절박한 탄원의 언어(참조: 출 32:31). - בְּשֵׁם יְהוָה אֶקְרָא(4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 — 4·13·17절의 반복 구절로 시편 전체의 골격을 이룹니다.
주석적 논의: 브릭스(Briggs & Briggs)는 이 위기 묘사가 시편 18편에 기초하며, 위기 상황에서 최우선적 응답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임을 강조합니다(Psalms, ICC, p.421).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전제합니다 — 계시된 이름을 부를 수 있음 자체가 선행적 은혜입니다.
설교적 함의: 이민 땅의 위기(경제·문화·관계적 고통)도 헤블레 마베트의 현대적 형태입니다. "아나, 야훼!"가 위기에서 드려야 할 첫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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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5-6 — 하나님의 성품: 은혜·의로움·긍휼
본문: חַנּוּן יְהוָה וְצַדִּיק וֵאלֹהֵינוּ מְרַחֵם 직역: 은혜로우십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원어·문법 핵심: - חַנּוּן·צַדִּיק·מְרַחֵם: 5절의 삼중 속성 선언은 출 34:6의 신 현현 전통과 직결됩니다. 이사야 30:18, 느헤미야 9:17이 동일 술어 배열을 사용합니다. - מְרַחֵם(메라헴): 피엘 능동분사 — 어근 רָחַם(라함)은 자궁(רֶחֶם, 레헴)에서 파생하여 모성적 긍휼을 뜻합니다. - דַּלּוֹתִי(달로티, 6절): 칼 완료 1인칭 — "내가 낮아졌다". 달랄(דָּלַל) "약해지다, 낮아지다". 경제적·실존적 무력감을 포괄합니다. - פְּתָאִים(페타임, 6절): "어리석은 자들" — ICC는 이를 "특별히 신의 호의가 필요한 자들"로 설명합니다(Psalms, ICC, p.421).
주석적 논의: 5절의 하나님 성품 선언은 출 34:6의 신학적 전통 위에서 읽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가장 근원적으로 고백하는 언어가 여기 집약됩니다. 6절은 이 선언의 즉각적 적용입니다 — 어리석은 자(페타임), 낮아진 자(달로티)를 지키시는 것이 은혜롭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체적 행동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이 절은 인간의 전적 무능(total inability) 앞에서 선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언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니라 낮아진 자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민 땅의 달로티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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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9 — 영혼을 향한 귀환 명령
본문: שׁוּבִי נַפְשִׁי לִמְנוּחָיְכִי כִּי יְהוָה גָּמַל עָלָיְכִי 직역: 돌아오라 내 영혼아, 너의 안식처로,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너를 풍성히 갚으셨기 때문이다.
원어·문법 핵심: - שׁוּבִי(슈비): 칼 명령 2인칭 여성 단수 — 자신의 영혼(נֶפֶשׁ, 문법적 여성)에게 내리는 명령. 시편 42:5의 자기 명령 구조와 동일합니다. - מְנוּחָה(메누하): "안식" — 시 23:2와 동일 어근.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갚으심에 기초한 안식입니다. - גָּמַל(가말): 칼 완료 — "갚다, 베풀다". 12절의 תַּגְמוּלוֹהִי와 동일 어근으로 7절과 12절의 구조적 연결을 만듭니다. - חִלַּצְתָּ(힐라츠타, 8절): 피엘 완료 — "건지셨다" — 죽음·눈물·넘어짐의 세 차원(8절)에서 전인적 구출을 선언합니다.
주석적 논의: 7절의 "내 영혼아 돌아오라"는 신학적 사실이 심리적 상태를 교정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 하나님이 갚으셨다는 완료형 사실이 귀환의 근거입니다. 8절의 세 구출(죽음·눈물·넘어짐)은 실존의 세 차원에서의 전인적 회복입니다. 9절의 히트파엘 미완료 "걷겠다"는 지속적·의도적 행보를 표현합니다.
설교적 함의: 피로한 영혼에게 "내 영혼아, 돌아오라"는 자기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갚으심이 안식의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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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0-11 — 믿음의 역설: 고통 속의 고백
본문: הֶאֱמַנְתִּי כִּי אֲדַבֵּר אֲנִי עָנִיתִי מְאֹד 직역: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리라. 나는 심히 고통받았다.
원어·문법 핵심: - הֶאֱמַנְתִּי(헤에만티): 히필 완료 1인칭 — 신뢰를 능동적으로 행사하는 행위. 어근 אָמַן(아만)에서 "아멘"이 파생됩니다. LXX는 ἐπίστευσα(에피스튜사)로 번역하며, 바울이 고린도후서 4:13에서 인용합니다("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시편 원문맥 → LXX → 바울 고난 신학의 흐름이 뚜렷합니다. - עָנִיתִי מְאֹד: 칼 완료 + 부사 — "심히 고통받았다". 믿음과 고통이 나란히 놓여 신앙의 역설을 표현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시편 116:1-19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 ANF·NPNF 문헌을 바탕으로 제시합니다.
클레멘트 1서(1 Clement) / 주후 96년경 (사도교부 시대)
로마의 클레멘트는 시편 116:12("무엇으로 갚을까")를 초기 교회 공동체의 감사 신학의 핵심 본문으로 활용했습니다. 라이트풋(Lightfoot) 교부 문헌 판본에 따르면, 클레멘트는 이 구절(그리스어: τί ἀνταποδώσω τῷ Κυρίῳ)을 인용하면서 ἀντιμισθία(보답, 갚음)의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감사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전인적 응답임을 강조했습니다.[pat1] 이 초기 인용은 시편 116편이 신약 교회에서 얼마나 빠르게 예배와 윤리의 언어로 통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클레멘트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보답이 공동체적 의무임을 강조하면서, 시편 시인의 "온 백성 앞에서"(14·18절) 서원 이행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신앙 고백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 4-5세기 (니케아 교부 시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116편을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신앙의 역설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활용했습니다. NPNF 문헌에 따르면, 그는 "주를 두려움으로 섬기고 떨며 기뻐하라"는 시편 2:11을 시편 116편의 감사 구조와 연결하면서, 번영 중에도 두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pat2] 아우구스티누스는 특히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받던 시절에 오히려 깊은 신앙을 유지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어려움이 신앙을 시험하는 자리임을 역설했습니다. 이 해석은 시편 116편의 "심히 고통받았다"(10절)와 "믿었으므로 말하리라"의 역설을 은혜 신학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으로, 개혁주의 전통이 이후 발전시킨 "낮아짐을 통한 은혜" 신학의 중요한 선례입니다.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초기 교부 전통에서 시편 116편은 두 방향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첫째, 클레멘트의 방향은 감사와 공동체적 보답의 신학으로, 시편 12절의 "무엇으로 갚을까"가 교회 공동체의 헌신 윤리를 촉구하는 본문이 됩니다. 둘째,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향은 고난과 은혜의 공존이라는 영성적 독서로,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참된 경건임을 강조합니다. 이 두 해석 흐름은 이후 중세 영성 전통과 종교개혁 신학 모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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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수용사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 전통)
청교도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시편 116편의 1절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We have many reasons for loving the Lord)의 원형 본문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경험했을 때 가장 감동을 받는 것은 깊은 곤경에서 건짐 받을 때라고 강조하며, 죄인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 아래 있다고 두려워할 때 여호와를 부르면 그가 은혜롭고 진실하심을 보여주신다고 서술했습니다.[rh1] 헨리는 이 시편을 개인 회개와 감사라는 청교도적 신앙 패턴의 교과서로 읽었으며, 특히 "낮아진 자를 지키신다"(6절)를 하나님의 겸손한 자 돌보심의 원리로 강조했습니다. 이민 교회 성도들이 낯선 땅에서 경험하는 무력감을 하나님의 돌보심의 자리로 재해석하는 데 청교도 독서의 통찰이 직접 적용됩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전통)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웨슬리 성경 주석(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에서 시편 116편을 하나님의 구출에 대한 엄숙한 감사 시편으로 분류하면서, 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고(1-8절), 미래의 보호를 구하며, 공동체 앞에서 찬양을 약속하는(14·18절) 구조를 분석했습니다.[rh2] 웨슬리는 감리교 전통에서 감사를 지적 동의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 이해했으며, 서원 이행이 신앙의 공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독해는 시편 116편의 예배 구조가 성도의 삶 전체를 감사의 제물로 드리는 것과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복음주의 설교)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시편 116:7("내 영혼아 돌아오라")을 독립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며,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당신에게는 돌아갈 안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한 번도 그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선포하며 복음 초청의 언어로 이 절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시편 116:1의 "나는 사랑합니다"를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은혜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논제의 핵심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스펄전의 설교는 시편 116편을 개인 구원 경험의 언어로 번역하여 청중에게 직접 적용하는 19세기 복음주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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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시편 116편의 수용사는 개인 감사가 공동체 예배로 확장되는 구조를 둘러싼 다양한 강조를 보여줍니다. 사도교부 시대의 클레멘트는 감사의 공동체적 책임을,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난 중의 은혜 신학을 강조했습니다. 청교도 헨리는 죄인의 깊은 곤경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는 회개-감사 패턴을 발전시켰고, 웨슬리는 감사를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성화적 독해를 더했습니다. 스펄전은 이 시편을 현대 복음 설교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수용사의 공통 통찰은 시편 116편이 어떤 시대에도 낮아진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본문으로 읽혔다는 것입니다. 이 흐름은 뉴저지 이민 교회의 새벽 예배에서 이 시편이 오늘도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장합니다.
참고 자료
- 1 Clement (Lightfoot ed.), *The Apostolic Fathers, Part I: S. Clement of Rome*, vol. 2 (Lightfoot), p.372.
- Augustine of Hippo, *Expositions on the Psalms*, in Schaff (ed.),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1st series.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Psalm 116:1.
-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Psalm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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