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0-12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마태복음 5:10-12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마태복음 5:10-12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공동체의 사회적 정황과 박해 현실
마태복음 5:10-12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이 생산된 공동체의 역사적 정황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는 기원후 1세기 후반, 유대 전쟁(66-70 CE) 이후 격변기의 유대-기독교 공동체로 널리 이해됩니다. 빌요언(F. P. Viljoen)은 마태복음의 토라 강조와 공동체의 사회적 배경을 분석하면서, 마태공동체가 회당 유대교와 긴장 관계에 놓인 혼합적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했음을 논증합니다.[bg1] 이 공동체는 한편으로 유대교의 전통 안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회당 지도부의 압박과 이방 사회의 냉대 사이에서 실제적인 사회적 배제와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이 '하늘나라'(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대 전통에서 '하늘'은 하나님을 에둘러 표현하는 완곡어법이며, 따라서 '하늘나라'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입니다. 마태복음이 이 표현을 약 32회 사용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유대적 감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예수의 왕권 선포를 유대 신학의 틀 안에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5:10에서 "그들의 것이 천국이라"는 현재형 선언은 하늘나라가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박해받는 공동체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현실임을 주장합니다.
마카리즘(Makarism) 형식의 역사적 배경
"복이 있나니"로 번역되는 μακάριος(마카리오스, 복된)는 헬라 문학과 유대 문학 모두에서 풍부한 전통을 가진 단어입니다. 헬라 고전 문학에서 마카리즘 형식은 삶의 탁월함이나 신들의 인정을 받은 상태를 칭송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핀다로스의 시가에서 영웅과 신들이 복된 자로 선언됩니다. 그러나 성경 전통, 특히 시편과 지혜문학에서 마카리즘은 독특한 전환을 거칩니다. 시편 1편("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이나 잠언 3:13("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등에서 복은 세속적 번영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관계와 삶의 방식에서 옵니다. 특히 시편 119:1-2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선언이 팔복의 원형적 형태를 보여 줍니다.
유대 묵시문학에서도 마카리즘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녹 1서(1 Enoch)의 '에녹 팔복'이나 다른 묵시 문헌들은 현재의 고난과 종말론적 역전을 연결짓는 구조를 사용합니다. 이 전통에서 복은 현재 눈에 보이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래적 판단 안에서 인정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5:10-12의 핍박받는 자에 대한 복 선언은 바로 이 묵시적 역전의 논리 위에 서 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의 박해 형태와 선지자 전통
11절에 나열된 박해의 구체적 형태—욕함(ὀνειδίζω, 오네이디조), 박해(διώκω, 디오코), 거짓으로 악한 말 함—은 1세기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소수 공동체가 경험하던 사회적 배제와 공적 수치의 다층적 형태를 반영합니다. 명예와 수치(honor-shame)가 사회적 화폐였던 당시 문화에서, 공개적으로 욕을 당하고 거짓 말이 퍼지는 것은 사회적 사망에 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ὀνειδίζω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수치를 안기는 행위로,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람을 이탈자·위험인물로 낙인찍는 기능을 했습니다.
12절이 선지자들의 박해 역사를 상기시키는 것은 이 공동체에게 역사적 선례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사적 전략입니다. 구약 역사에서 선지자들은 반복적으로 박해받았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에게 쫓겼고(왕상 19장), 예레미야는 물웅덩이에 던져졌습니다(렘 38장). 역대하 36:15-16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선지자를 거부한 역사로 요약합니다. 신약학자들은 이 '박해받는 선지자' 전통이 유대 묵시문학에서 강화되어 의인의 고난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틀이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예수께서 11절에서 "나로 말미암아"(ἕνεκεν ἐμοῦ)를 박해의 이유로 명시하신 것은 자신을 이 선지자 전통의 완성자로 자리매김하시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지리적·신학적 배경
본문이 속한 산상설교(5-7장)는 갈릴리 지역의 어느 산에서 선포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볼셴크(G. J. Volschenk)는 마태복음에서 산의 모티프가 계시·권위·언약의 장소로 기능함을 분석합니다.[bg2]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처럼,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사 새로운 율법의 해석자·성취자로 가르치십니다. 이 지리적 배경은 산상설교 전체의 권위를 메시아적 선언으로 틀 지우는 신학적 장치입니다. 갈릴리는 또한 이방의 갈릴리(마 4:15)로 불린 변경 지역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의 복 선언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팔복의 청중이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마태복음의 토라 해석과 의(δικαιοσύνη)의 위상
5:10에서 박해의 원인으로 제시된 '의'(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쉬네)는 마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입니다. 마태복음에서 δικαιοσύνη는 (1)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5:6, 6:33), (2)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5:20), (3) 예수를 통해 성취된 토라의 참된 정신(5:17-19)을 포괄합니다. 빌요언은 마태공동체가 토라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완성된 토라의 의미를 새롭게 살아가려 했음을 보여 줍니다.[bg1] 따라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삶 때문에 고난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의의 실천 때문에 기존 체제와 충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이 의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이 선사하시는 의—칭의(justification)—와 그 삶의 열매—성화(sanctification)—의 통전적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참고 자료
- F. P. Viljoen, "Matthew's sitz im Leben and the emphasis on the Torah," *Acta Theologica* 32 (2012). DOI: 10.38140/at.v32i2.2453.
- Gert J. Volschenk, "Review article: The mountain motif in the plot of Matthew," *HTS Teologiese Studies* 66 (2010). DOI: 10.4102/hts.v66i1.326.
마태복음 5:10-12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각 절의 원어·문법 핵심과 주석적 논점을 5블록 구조로 분석합니다. PD 주석서의 방법론을 체화해 독자적으로 재서술했습니다. 개혁주의 시각이 우선 반영되어 있으며, 해석학적 쟁점에서는 복수 입장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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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 의를 위한 박해와 천국 소유의 역설
본문: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직역: 복된 자들이라, 의를 위하여 박해받아 온 자들이, 왜냐하면 그들의 것이다 하늘들의 왕국이.
원어·문법 핵심:
첫째, δεδιωγμένοι(데디오그메노이)는 동사 διώκω(디오코, '쫓다·박해하다')의 완료 수동 분사입니다. 완료 시제가 현재 분사가 아닌 이 완료 수동 분사로 쓰인 것은, 박해가 이미 발생하여 그 결과가 지속되는 상태를 묘사함을 보여 줍니다. 단순히 '박해받는 자'가 아니라 '이미 박해받아 그 상태에 있는 자'를 가리키며, 이는 사변적 가능성이 아닌 실제 공동체의 정황을 겨냥합니다.
둘째, ἕνεκεν(헤네켄, '~을 위하여')은 전치사로 박해의 원인·동기를 가리킵니다. 10절에서 그 원인은 δικαιοσύνης(디카이오쉬네스, '의'의 속격)입니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 어휘 중 하나로, 5:3("심령이 가난한 자")과 함께 팔복 전체를 감싸는 수미쌍관(inclusio)의 후반부를 형성합니다. 중요한 것은 ἕνεκεν + 속격이 박해의 대상이 아니라 동기를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즉, 박해를 받더라도 그 이유가 '의를 추구했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셋째, αὐτῶν ἐστιν(아우톤 에스틴, '그들의 것이다')은 현재 직설법입니다. 3절과 10절이 동일한 현재 직설법 약속("그들의 것이다")으로 팔복을 감쌉니다. 나머지 여섯 절은 미래형("위로받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등)을 씁니다. 이 현재형은 하늘나라가 미래에만 속하지 않고 박해받는 공동체가 이미 참여하는 현실임을 선언합니다.
주석적 논의:
'의'(δικαιοσύνη)의 의미 범위를 두고 두 가지 주요 해석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이 주시는 의(하나님의 의): 개혁주의 신학은 δικαιοσύνη를 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선언하시는 칭의적 의로 읽습니다. 이 관점에서 '의를 위한 박해'는 그 칭의적 의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삶이 세상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② 실천적 윤리적 의: 다른 해석자들은 δικαιοσύνη를 마태복음 안에서 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의 실천(5:20·6:1·6:33)으로 읽으며, '의를 위한 박해'를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 때문에 입는 사회적 고난으로 봅니다. 두 해석이 반드시 상충하지는 않습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가 그 의의 삶을 살다가 박해받는 것으로 통전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팔복 내에서 10절의 위치입니다. 전통적으로 8번째 복으로 간주되지만, 일부 학자들은 10절이 팔복의 결론이자 11-12절(2인칭 전환)로의 교량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수미쌍관 구조(3절과 10절)는 팔복이 '하늘나라'라는 단일 주제로 포괄되는 통일된 단위임을 시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군 예배 청중에게 이 구절은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른 희생과 고난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다른 종류의 고난을 말합니다. 계급과 명령 체계가 아닌, 의(義)라는 가치 때문에 입는 고난입니다. '의를 위한' 고난은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살다가 세상과 마찰할 때 오는 고난이며, 그 고난이 있다는 것은 이미 하늘나라를 소유한 자임을 반증합니다. 현재형 "그들의 것이다"는 하늘나라가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주어진 현실임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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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 나로 말미암은 박해의 세 가지 형태
본문: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직역: 복이 있도다 너희는, 언제든지 그들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너희에 대하여 모든 악한 말을 거짓으로 할 때, 나로 말미암아.
원어·문법 핵심:
첫째, 10절에서 3인칭("그들")이 쓰였던 것과 달리, 11절은 갑자기 2인칭 복수("너희")로 전환됩니다. 이 수사적 전환은 팔복 전체에서 유일한 현상으로, 10절의 일반적 선언이 11-12절에서 청중(제자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강화 효과를 냅니다.
둘째, 박해의 세 가지 형태가 나열됩니다: ① ὀνειδίσωσιν(오네이디소신): 부정과거 능동 가정법 3인칭 복수. "욕하다, 비난하다, 수치를 주다"를 뜻하며, 1세기 명예-수치 사회에서 공개적 낙인을 찍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② διώξωσιν(디오코신): 부정과거 능동 가정법. '박해하다'로, 욕설에서 더 나아간 행동적 압박입니다. ③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에이포신 판 포네론): "모든 악한 말을 하다." 특히 ψευδόμενοι(프슈도메노이, '거짓으로')가 뒤따라 이 말이 근거 없는 거짓 비방임을 명시합니다.
셋째, ψευδόμενοι(프슈도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박해자의 동기를 수식합니다. 마태만이 이 부분을 누가복음(6:22)에 비해 추가했으며, 이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거짓에 의한 부당한 고난임을 강조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고난도 '복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이 세상의 거짓 판단에서 비롯됨을 직시합니다.
넷째, ἕνεκεν ἐμοῦ(헤네켄 에무, '나로 말미암아')는 10절의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의를 위하여)와 구조적으로 병행합니다. '의'와 '나(예수 그리스도)'가 연결됩니다. 이것은 마태신학에서 의와 예수에 대한 충성이 분리 불가능함을 보여 줍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를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의 표현으로 읽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그와 연합된 자의 필연적 경험입니다(롬 8:17).
주석적 논의:
1차 문헌 배경으로 볼 때,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3년~기원후 24년경)의 『지리지』(Geographica, 16권)는 헬레니즘-로마 시대 팔레스타인(시리아·페니키아·유대 지역)의 사회적 구조를 묘사합니다. 이 ANE·고대근동 배경 자료는 유대 지역이 로마 행정 아래 복잡한 정체성 압박을 받던 상황을 보여 주며, 1세기 유대-기독교 공동체가 ὀνειδίζω(욕함)와 διώκω(박해)로 대표되는 다층적 배제를 경험했음을 이해하는 배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클레멘스(Clement of Rome)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1 Clem. 3.2)은 1세기 말 로마 교회가 박해와 내부 분쟁 상황을 실제로 경험했음을 기록합니다. 클레멘스는 "질투와 시기에서 분쟁, 선동, 박해, 무질서"가 생겨났다고 서술하며(Kirsopp Lake 역, Loeb Classical Library), 이는 마태복음 5:11의 박해 형태 목록이 문학적 장식이 아닌 역사적 현실임을 초기 1차 문헌으로 확인해 줍니다.
'나로 말미암아'(ἕνεκεν ἐμοῦ)라는 표현에서 예수가 자신을 구약 전통의 특별한 위치에 세운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구약 전통에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는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 자신을 하나님의 역할에 동일시하는 메시아적 자의식의 표현입니다. 일부 주석가들은 이것이 마태복음의 높은 기독론—예수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또한 박해의 세 형태(욕함·박해·악한 말)는 점층적 구조를 이룹니다. 말(욕함)에서 행동(박해)으로, 다시 말의 집중 공격(모든 악한 말)으로 전개되며, 이 모든 것이 거짓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박해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언어적 차원을 포함하는 복합적 현상임을 보여 줍니다.
설교적 함의:
교회 역사에서 마태복음 5:10-12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마태복음 5:10-12이 교회 역사에서 어떻게 해석·선포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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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사도교부 (1-2세기)
1-2세기 사도교부 문헌은 마태복음 5:11-12의 박해 가르침을 공동체 윤리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악에는 악으로 갚지 말며"라는 원칙에 이어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들을 기억하라"는 권고를 배치하여, 박해를 회피해야 할 불행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의 결과로 해석했습니다.[pat1]
니케아 이전 교부 (2-3세기)
2-3세기 교부들은 이 본문을 그리스도의 수난과의 연대로 해석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는 박해를 신앙 고백의 공적 행위(confessio fidei)로, 제국의 압박에 맞서는 증언으로 이해하며 순교 신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안티-니케아 교부 서신 모음」은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주님이 죽임을 당하셨으니, 박해도 인내로 견뎌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가 그분의 제자임이 드러난다."[pat2]
크리소스톰 · 아우구스티누스 (4-5세기)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마태복음 강해』(Homilies on St. Matthew, NPNF¹ Vol. 10)에서 이 본문이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오히려 추구할 덕목으로 가르친다"며 복음의 가치 역전을 강조했습니다.[pat3]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반도나투스파 논쟁에서 역전의 논리를 날카롭게 적용합니다. "하늘은 그들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고, 땅은 그들의 기억으로 꽃피어 있습니다. 박해자들이 만들어 낸 것은 순교자들의 영광입니다."[pat4]
해석의 흐름 — 초기 전통 형성
교부 해석은 세 축으로 수렴됩니다. ①박해는 그리스도의 수난과의 연대 ②박해는 신앙 고백의 공적 증언 ③박해자들이 역설적으로 박해받는 자를 영화롭게 함. 이 세 축이 중세·종교개혁·청교도 전통의 해석 원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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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설교사·수용사 (12-19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 / 중세
아퀴나스(Aquinas)는 『황금 연쇄 — 마태복음』(Catena Aurea — Gospel of Matthew)에서 박해의 적용 범위를 체계화합니다. 이단자나 죄를 지적받은 권력자에게서 오는 박해까지 포함하며, 핵심 원칙을 명확히 합니다. "성경은 박해자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박해의 원인만 말한다. 누구에게서가 아니라 왜 고난받는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rh1]
존 칼빈 (1509-1564) / 종교개혁
칼빈(Calvin)은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주석』(Commentary on Matthew, Mark, Luke, Vol. 1)에서 박해를 언약 신학의 틀로 읽습니다. 박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확인하는 섭리적 표지이며, '큰 상급'은 공로적 보상이 아닌 언약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시는 은혜의 약속입니다. 서기관의 외적 율법 준수를 넘어서는 '더 풍성한 의'가 박해를 불러일으키는 실제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rh2]
토마스 왓슨 (c. 1620-1686) / 청교도
왓슨(Watson)은 『팔복 강해』(The Beatitudes: Exposition of Matthew 5)에서 마태복음 5:10을 비용과 상급의 두 축으로 풀어냅니다. "종교는 회개의 눈물과 박해의 피를 요구한다. 그러나 큰 격려가 있다. 지금은 복이 있고, 장차는 면류관이 있다." ("For the present, blessed; for the future, crowned.") 박해받는 신자는 하늘 건물을 위해 다듬어지는 '산 돌'(벧전 2:5)이라는 비유가 청교도 설교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rh3]
찰스 스펄전 (1834-1892) / 19세기
스펄전(Spurgeon)은 『스펄전 설교 55권』(Spurgeon's Sermons, Vol. 55)에서 역설적 논리를 강조합니다. 세상의 박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요 15:19), 세상의 반대는 오히려 복음의 실재를 증명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압박 속에서 그는 이 '큰 상급'의 약속을 청중의 구체적 삶과 연결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촉구했습니다.[r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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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교부에서 스펄전까지 세 주제가 일관됩니다. ①박해의 의미: 그리스도의 수난과의 연대(교부) →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실제 표현(칼빈) → 성도의 불가피한 경험(청교도·19세기). ②역전의 역설: 세상의 수치가 하나님의 복이 된다는 크리소스톰의 통찰이 왓슨의 "지금은 복, 장차는 면류관"과 스펄전의 "박해가 올바름의 신호"로 계승됩니다. ③기쁨의 근거: 12절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는 약속이 역사를 통해 박해받는 공동체를 위로했습니다. 군 예배 공동체에게도 이 전통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조직 안에서 신앙적 정체성을 지킬 때 오는 압박, 의를 위해 감수하는 불이익이 바로 이 본문이 교회사 전체에서 위로해 온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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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Apostolic Fathers (Holmes ed.), *The Apostolic Fathers*, 3rd e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7), 155.
- Ante-Nicene Fathers, in Schaff, ed., *Ante-Nicene Fathers* (ANF), vol. 8 (Edinburgh: T&T Clark, 1886), 1066.
-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Gospel of St. Matthew*, Hom. XV,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NPNF¹), vol. 10 (Edinburgh: T&T Clark, 1888), 184.
- Augustine of Hippo, *Writings Against the Manichaeans and Against the Donatists*, in NPNF¹, vol. 4 (Edinburgh: T&T Clark, 1887), 1148.
- Thomas Aquinas, *Catena Aurea — Gospel of Matthew*, trans. J.H. Newman (Oxford: Parker, 1841), on Matt 5:10-12.
- John Calvin, *Commentary on Matthew, Mark, Luke*, vol. 1, trans. W. Pringle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5), on Matt 5:20.
- Thomas Watson, *The Beatitudes: An Exposition of Matthew 5:1-12* (Edinburgh: Banner of Truth, repr. 1971 [1660]), on Matt 5:10.
- Charles H. Spurgeon, "The Beatitudes," *Spurgeon's Sermons*, vol. 55 (London: Passmore & Alabaster, 1909), No. 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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