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5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로마서 9:1~5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로마서 9:1~5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로마서는 기원후 55~57년경 고린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인 로마 교회 공동체를 향해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서신이 선 사회적 자리 — 로마의 입양법과 후원-피후원 관계, 노예제라는 일상 제도들 — 은 앞선 여러 장의 배경에서 이미 짚었으므로, 여기서는 9장에서 바울의 논증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이유와 1~5절의 표현들이 선 자리에 초점을 둡니다.
로마서 9~11장이 여는 새로운 국면
바나스(Barnes)에 따르면 9장은 앞선 여덟 장의 논증 —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허물어졌고, 외적 특권만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길이라는 논증, 그리고 8장이 다룬 선택하시는 은혜의 원리 — 이 불러일으킬 법한 두 반론에 답하려는 새로운 국면을 엽니다. 하나는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 논증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약속으로부터의 이탈 아닌가"라는 반론입니다.[bg1] 나아가 바울이 자기 동족에 대한 관심을 잃고 이방인만의 대변자가 되었다는 인상을 줄 위험도 있었습니다.[bg1] 1~5절의 격정적인 자기 저주 서원은 바로 이 정황, 곧 바울이 동족을 향한 사랑을 결코 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할 필요에서 나옵니다.
고데(Godet)는 이 국면의 목적을 한 걸음 더 밀어, 9~11장이 변호하는 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의 진실성이라고 봅니다.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는 현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bg2] 고데는 이 논점을, 사도행전을 바울의 인격과 사역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정받게 하려는 교회 정치적 기획으로 읽는 튀빙엔 학파의 독법과 대비시키며, 요한복음 12:37-43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성찰을 나란히 놓습니다.[bg2] 고데는 나아가 9장 전체가 다루는 첫 번째 관점을, 사람이 얻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권리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지니신 절대적 자유의 문제로 규정합니다.[bg2] 1~5절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이 지닌 특권들을 나열하는 것은, 바로 이 "얻어진 권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분명히 밝혀 두는 작업에 해당합니다.
1~5절이 하는 일 — 사랑의 증거를 먼저 세우다
바나스는 9장 전체를 세 단계로 나누어 읽습니다. 먼저 바울은 동족을 향한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과 그들의 안녕에 대한 관심을 증명합니다(1~5절). 이어서 그는 구약 자신의 기록에서 이미 택하심의 원리가 작동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 이삭의 경우(7~13절), 모세의 기록(15절), 바로의 경우(17절), 호세아와 이사야의 예언(25~29절)이 그 예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 전체에 걸쳐 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원리를 변호하고, 반론에 답하며, 구약이 이미 인정한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유대 민족의 일부가 버림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bg1] 이 구도에서 1~5절은 논증의 첫 단추이자, 뒤따르는 어려운 신학적 주장을 듣는 이들이 바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도록 미리 놓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걸림돌이 된 그리스도 거부
칼빈(Calvin)은 이 장이, 그리스도를 향해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할 수 있었던 걸림돌을 다루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율법의 언약 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했을 뿐 아니라 멸시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에 진실함이 없거나 아니면 바울이 전하는 예수가 참 메시아가 아니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낳는 것처럼 보였습니다.[bg3] 칼빈은 바울이 뒤이은 논증에서 이 이중의 매듭을 풀어 나가되, 유대인들에 대한 모든 격한 언사를 자제하여 그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복음에 손해가 되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고 봅니다 — 그들의 특권을 인정하되, 그 인정이 복음의 진실성을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bg3] 1~5절에서 바울이 자기 동족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부르며 그들에게 속한 특권들을 나열하는 것은, 바로 이 절제된 인정 — 걸림돌을 해소하면서도 복음의 진실성은 지키는 작업 — 의 첫걸음에 해당합니다.
고데는 이어서 9장이 취하는 관점을 두 갈래로 더 세분합니다. 첫째는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이 얻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권리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지니신 절대적 자유의 문제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그 자유를 실제로 어떻게 행사하셨는가 하는 그 정당성의 문제입니다.[bg2] 즉 9장은 단지 "하나님께는 그러실 권리가 있다"는 선언에서 멈추지 않고, 그 권리의 실제 행사가 부당하지 않음을 함께 보여 주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칼빈 역시 이 이중의 매듭 — 약속의 진실성과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둘러싼 딜레마 — 을 바울이 9장 한 장에서가 아니라 뒤이은 논증 전체에 걸쳐 풀어 간다고 지적합니다.[bg3] 1~5절은 그러므로 그 긴 해명의 출발점이지, 그 자체로 완결된 답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오랜 역사
4절에서 바울이 동족을 "이스라엘 사람"이라 부를 때, 그 이름은 바울 당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 메르넵타의 승전 기념 석비(기원전 13세기 말, 신왕국 19왕조)는 가나안 원정 전과를 나열하며 "이스라엘"을 언급하는데,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가장 이른 성경 밖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bg5] 이후 신아시리아 제국의 티글랏빌레셀 3세 비문에도 "빗-훔리"(오므리의 집, 곧 북이스라엘 왕국)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이 등장하며, 그 백성과 군대가 아시리아로 옮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bg6] 바울이 나열하는 특권 목록 뒤에는 이처럼 수백 년에 걸쳐 이방 제국들의 기록에도 이름을 남긴, 실재했던 한 민족의 굴곡진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
"언약들"(διαθῆκαι)이라는 표현의 배경
4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특권 가운데 하나로 "언약들"(διαθῆκαι, 복수형)을 듭니다. 헬라어 디아테케(διαθήκη)는 구약 번역 전통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가리키지만, 당대 일상 문서 그리스어에서는 흔히 개인의 유언장이나 재산 처분을 뜻하는 법률 용어로도 널리 쓰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한 유언 등록 문서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 뒤에 "디아테케"라는 말이 되풀이해 붙어, 각기 다른 개인의 유언을 나열하고 있습니다.[bg4] 바울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가리키는 데 이 낱말을 쓸 때, 청중은 이 법률적 어감 —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상속을 수반하는 구속력 있는 처분 — 을 함께 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고 자료
- Albert Barnes, *Notes on the New Testament: Romans*, on Rom 9.
- Frédéric Godet, *Commentary on St. Paul's Epistle to the Romans*, on Rom 9.
- John Calvin (trans. John Owen), *Commentary o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on Rom 9.
- P.Muench. III.140.
- Merneptah Stele (Israel Stele), Concluding Strophe.
- Tiglath-pileser III 42.
로마서 9:1~5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과 현대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9:1 — 세 겹의 증언으로 여는 서원
본문: Ἀλήθειαν λέγω ἐν Χριστῷ, οὐ ψεύδομαι, συμμαρτυρούσης μοι τῆς συνειδήσεώς μου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직역: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함께 증언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ἀλήθειαν λέγω: 목적어를 앞세운 어순으로 '진리'라는 낱말에 무게를 싣습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108회 가운데 요한복음 24회·요한일서 9회·고린도후서 8회로 요한 문헌에 특히 집중됩니다. - ψεύδομαι: 현재 직설법 1인칭 단수 부정형 — 지금 이 순간에도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현재적 부인입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10회, 사도행전 2회·요한일서 1회·야고보서 1회. 갈라디아서 1:20에서도 바울은 같은 동사로 자기 말이 거짓 아님을 못박아, 이것이 그의 자기변호 서원 형식임을 보여줍니다. - συνείδησις: 속격 단수, 분사 συμμαρτυρούσης('함께 증언하는')의 주어 — 양심이 독립된 증인으로 세워집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31회, 고린도전서 8회·히브리서 5회·디모데전서 4회로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가 즐겨 쓰는 개념입니다.
주석적 논의: 1절은 한 문장 안에 세 겹의 증언 구조를 세웁니다. 바울 자신의 발언, 양심의 동반 증언, 그 양심이 서 있는 자리인 성령입니다. 이 구조는 뒤이을 3절의 극단적 자기 저주 서원이 결코 가볍게 던진 말이 아님을 미리 다지는 법정적 장치로 읽힙니다. 진술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근거가 바울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그가 속한 신앙적 실재 전체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삼중 서원 구문은 편지 전체에서 흔치 않으며, 이어지는 내용의 무게를 예고하는 문학적 신호로 기능합니다.[snyman]
설교적 함의: 바울은 자신의 슬픔을 말하기에 앞서 그 진실성부터 증언으로 세웁니다. 이른 새벽 홀로 하나님 앞에 나온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다 못한 진심을 이 시간에 꺼내 놓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새벽의 기도가 감상이 아니라 양심이 함께 증언하는 진실한 자리가 되어야 함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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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그치지 않는 고통
본문: ὅτι λύπη μοί ἐστιν μεγάλη καὶ ἀδιάλειπτος ὀδύνη τῇ καρδίᾳ μου 직역: 나에게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λύπη: 주격 단수, 형용사 μεγάλη('큰')의 수식을 받습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16회, 고린도후서 6회·요한복음 4회·빌립보서 2회. 요한복음 용례는 대부분 예수님이 다가올 고난을 예고하는 문맥(요 16장)에 몰려 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로 인해 겪은 근심을 가리킵니다. - ἀδιάλειπτος: 뒤의 ὀδύνη와 함께 슬픔 전체의 지속성을 표시합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2회로 극히 드물며, 디모데후서 1:3에서는 '쉬지 않는' 기도의 지속을 가리키는 긍정어로 쓰입니다. 같은 낱말이 여기서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에 쓰여, 이 슬픔이 기도의 항구성에 버금가는 무게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 ὀδύνη: 주격 단수 — 찌르는 듯한 격심한 고통입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2회, 디모데전서 6:10에서는 돈을 사랑하다 스스로를 '여러 근심으로 찌른' 상태를 묘사합니다.
주석적 논의: 2절은 1절의 법정적 진실성 선언 위에 감정의 실체를 얹습니다. λύπη와 ὀδύνη는 슬픔의 규모와 지속성을 각각 짚어 바울의 내적 상태를 입체적으로 그려 냅니다. 이 이중 표현은 3절의 극단적 서원이 순간의 격정이 아니라 오래 묵은 고통에서 나온 발언임을 뒷받침합니다. 자기 백성의 불신앙이라는 현실은 바울에게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떠나지 않는 통증이었습니다.
설교적 함의: 바울의 슬픔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고통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된 이들일수록 가족의 불신앙 앞에서 이런 그치지 않는 마음의 통증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그 통증을 서둘러 지우려 하기보다,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는 것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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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 형제를 위한 극단의 서원
본문: ηὐχόμην γὰρ ἀνάθεμα εἶναι αὐτὸς ἐγὼ ἀπὸ τοῦ Χριστοῦ ὑπὲρ τῶν ἀδελφῶν μου, τῶν συγγενῶν μου κατὰ σάρκα 직역: 나는 내 형제들, 곧 육신을 따른 내 친족들을 위하여 나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은 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ηὐχόμην: εὔχομαι('바라다')의 미완료 — 완결되지 않은, 차마 끝까지 실행하지 못하는 소원의 결입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6회, 고린도후서 2회·사도행전 2회·요한삼서 1회. 고린도후서 13:7, 13:9에서 바울은 같은 동사로 고린도 교회의 온전함을 '바랍니다'라고 말합니다. - ἀνάθεμα: 주격 단수 — 그리스도의 몸에서 끊어져 저주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 LXX/OT 용례: 칠십인역 26회, 히브리어 헤렘(진멸에 바쳐진 것) 개념의 표준 번역어입니다. - συγγενῶν: 속격 복수 — 혈연으로 가까운 자, 동족입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 11회, 로마서 4회·누가복음 4회. 누가복음 14:12에서는 잔치 초대 이웃과 나란히 놓인 일상적 '친척'을 가리켜, 여기서도 신학적 함의 없는 순수한 혈연 관계임을 뒷받침합니다.
주석적 논의: 3절은 앞의 두 절이 쌓아 온 증언 위에서 슬픔의 크기를 구체적인 언어로 못박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의 단절, 곧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실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미완료 시제라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바울은 이 소원을 실제로 이루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교환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마음의 강도를 드러낼 뿐입니다. 동족을 ἀδελφῶν('형제들')과 συγγενῶν('친족들')으로 겹쳐 부르고 κατὰ σάρκα('육신을 따라')로 못박는 것은, 이 사랑이 추상적 인류애가 아니라 한 핏줄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입니다.[snyman]
설교적 함의: 바울의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걸 만큼 구체적이었습니다. 오늘 회중 가운데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오랜 친구를 마음에 품고 이른 새벽 홀로 눈물로 기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향한 간절함이 사도 바울도 품었던 신앙의 정상적 무게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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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 여섯 겹의 특권 목록
본문: οἵτινές εἰσιν Ἰσραηλῖται, ὧν ἡ υἱοθεσία καὶ ἡ δόξα καὶ αἱ διαθῆκαι καὶ ἡ νομοθεσία καὶ ἡ λατρεία καὶ αἱ ἐπαγγελίαι 직역: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 수여와 예배와 약속들이 있습니다.
참고 자료
- A.H. (Andries) Snyman, "'n Retoriese analise van Romeine 9:1–10:4," *In die Skriflig* 49 (2015). DOI: https://doi.org/10.4102/ids.v49i1.1921
- William Sanday and Arthur C. Headlam,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p. 352.
- Priscille Marschall, "Christ est-il appelé Dieu en Romains 9:5?," *Novum Testamentum* (2022).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로마서 9:1~5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1-4세기)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인용했는지, ANF·NPNF 문헌을 바탕으로 제시합니다.
클레멘트 1서(1 Clement) / 1세기 말 (사도교부)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이 초기 문헌은, 이스라엘의 특권을 나열하는 대목에서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이 있으며, 그들로부터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표현과 구조적으로 맞닿는 문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됩니다. 신약 정경이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 이미 로마서 9:4-5의 특권 목록 형식이 초대교회 문헌의 언어 감각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목록이 얼마나 이른 시기부터 교회의 공통 언어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pat1]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y Thaumaturgus) / 3세기 (니케아 이전 교부)
그는 성령의 사역을 논증하는 대목에서 로마서 8:15의 "양자의 영,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 구절과 로마서 15장의 소망·평강 구절 사이에 9:1의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니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라"를 나란히 끼워 넣어 인용합니다. 그에게 이 구절은 단순한 자기변호가 아니라, 성령이 신자의 양심과 함께 증언하신다는 성령론적 논거의 핵심 본문으로 쓰였습니다.[pat2]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초대교회는 이 단락을 두 갈래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는 클레멘트 1서가 보여주듯 특권 목록 자체를 교회의 정체성 언어로 흡수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레고리우스처럼 1절의 "성령 안에서 증언하는 양심"을 성령론 논쟁의 증거 본문으로 활용하는 흐름입니다. 두 흐름 모두 본문을 바울 개인의 감정 표현에 머물게 두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자기 이해와 삼위일체 신학이라는 더 큰 신학적 작업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이는 4-5세기에 이르러 5절의 그리스도 신성 선언이 아리우스파 논쟁의 성서적 근거로 정면에 등장하게 될 흐름을 예비합니다.5.2 설교사·수용사
> 본 섹션은 4세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암브로시우스(Ambrose) / 4세기 (니케아 교부)
그는 그리스도의 지식과 신성의 한계를 부인하는 아리우스파를 논박하는 대목에서 5절 끝의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직접 근거로 세웁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신" 분으로 불리는 이상 그 지식과 능력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증입니다. >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 "Christ, yea the most high Christ, is God, for He is 'God over all.'"[rh1]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청교도)
그는 9장 전체를 앞선 논증(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이 낳을 법한 반론, 곧 "그렇다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은 무효가 된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읽습니다. 그는 이 물음이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으며, 바울이 1~5절에서 이 반론의 예봉을 누그러뜨리는 작업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유대인들, 특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어찌 되는가? 이 규칙대로라면 그들은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효가 되는 것인가?" — "What becomes of the promise made to the fathers... Is not that promise nullified and made of none effect?"[rh2]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근대)
그는 바울의 인격 전체가 한 방향으로 온전히 쏠리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박해자였을 때도 전심이었고 전도자가 되어서도 전심이었던 바울의 그 뜨거움이, 다른 이의 영혼을 향한 이 절박한 서원의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 "얼마나 강렬한 사람이었던가! 한번 확신하면 그의 전 존재가 옳다고 판단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 "What an intense man Paul was! Once convince him and his whole nature moved in the direction which he judged to be right."[rh3]수용사 흐름
4세기 암브로시우스가 5절을 삼위일체 논쟁의 정면 근거로 세운 이후, 이 단락의 무게 중심은 오래도록 그리스도론적 쟁점에 머물렀습니다. 17세기 청교도 헨리에 이르러 관심의 축은 다시 1~5절 전체의 논증적 기능, 곧 앞선 칭의론이 부를 반론을 미리 잠재우는 문학적 경첩으로서의 역할로 옮겨 갑니다. 19세기 스펄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문의 신학적 논증보다 그 배후에 있는 바울이라는 인격의 강렬함 자체를 설교의 중심에 놓습니다. 교리 논쟁의 증거 본문에서 논증의 경첩으로, 다시 인격적 모범으로 — 같은 다섯 절이 각 시대 교회의 필요를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 온 궤적입니다.참고 자료
- 1 Clement (Lightfoot ed.), *The Apostolic Fathers, Part I*.
- Gregory Thaumaturgus, cited in *Ante-Nicene Fathers*, vol. 6.
- Ambrose, *Select Works and Letters* (NPNF2-10).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6 (Acts to Revelation)*.
- Charles Spurgeon, *Spurgeon's Sermons Volume 24: 1878*, No.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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