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15~ 25a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로마서 7:15~ 25a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로마서 7:15~ 25a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로마서의 기록 배경과 로마 교회의 정황
로마서는 바울이 세 번째 선교 여행 말엽인 약 55-57 CE에 고린도에 머무르는 동안 기록한 서신입니다. 다른 서신들과 달리, 바울이 로마 교회를 직접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 이 편지의 성격을 독특하게 만듭니다. 그는 로마를 방문하기 전에 그곳 교인들과 관계를 맺고 스페인 선교의 후원 기반을 준비하기 위해 이 서신을 써 보냈습니다(로마서 15:24). 이 때문에 로마서는 바울 서신 중 가장 체계적으로 자신의 신학을 개진한 편지로 간주됩니다.
로마 교회의 구성은 복잡했습니다. 49 CE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뒤(사도행전 18:2,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사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54 CE 네로 즉위 후 유대인들이 점차 귀환하면서, 바울이 편지를 보낼 무렵 로마 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하는 혼합 공동체 상태였습니다. 이 긴장이 로마서 전체를 관통합니다. 7장의 율법 논의도 이런 배경에서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정체성의 핵심이었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율법과 죄에 대한 유대교 전통 배경
로마서 7장을 이해하는 데 유대교의 율법 이해는 필수 배경입니다.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율법(토라)은 단순히 행위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구체화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율법이 선하다는 바울의 진술(16·18절)은 이 전통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유대교 전통이 인간의 내면 갈등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랍비 전통은 인간 안에 두 가지 충동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선한 충동(yetzer ha-tov, 예체르 하토브)과 악한 충동(yetzer ha-ra, 예체르 하라)이 각각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는 의지와 그에 저항하는 성향을 나타냅니다. 미쉬나 아보트(Avot) 4:1은 "자신의 욕망(yetzer)을 정복하는 사람이 용사이다"라고 가르치는데, 이런 내면 갈등의 신학이 바울의 사유와 공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진단은 이 유대교 전통을 넘어섭니다. 그는 두 충동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인격화된 세력으로 인간 안에 거주하며 심지어 '속사람'마저 무력화한다고 봅니다. 이는 죄를 개인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인류 전체를 포로로 잡은 지배 세력으로 파악하는 종말론적·인간학적 통찰입니다.
헬레니즘 세계와 내면 갈등 담론
로마서 7장이 쓰인 1세기 지중해 세계는 헬레니즘 도덕 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로고스)이 정념(파테)을 지배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플라톤은 영혼의 이성적 부분이 욕구적 부분을 통치해야 한다는 이원론적 심리학을 제시했습니다. 이 지적 풍토에서 의지와 행동의 불일치는 낯선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7장의 고백이 당시 헬레니즘 독자들에게 즉각적인 공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내면 갈등이 철학적 담론에서도 핵심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진단은 철학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스토아 현자가 이성으로 정념을 제압하거나, 플라톤적 교육으로 영혼을 순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25a절)라는 신학적 답을 가리킵니다. 그레코로만 세계와의 깊은 비교는 §7 고대 문헌·자료 심화에서 상세히 다룹니다.
로마서 7장의 문학적·수사학적 배경
로마서 7장의 고백적 1인칭 서술은 고대 수사학에서 '에토포이아(ēthopoieia)'라는 기법과 연결됩니다. 이 기법은 특정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지를 대변하여 청중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는 수사적 연설 방식입니다. 헬레니즘 교육에서 표준 수련 과목이었던 에토포이아는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익숙했으며, 바울이 이를 의식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논의됩니다. 그러나 이 기법이 사용됐더라도, 본문이 담은 신학적 진단(죄의 세력 아래 있는 인류)은 허구적 발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영적 상태를 묘사합니다.
또한 7:7-25는 유대교 문학에서 '나의 탄식(lament of the I)' 전통과도 연결됩니다. 시편의 애가 장르에서는 "내 영혼이 낙담하여 내 속에서 불안합니다"(시편 42:5)와 같이 1인칭 화자가 자신의 고통을 날카롭게 토로하는 문학 형식이 발달해 있습니다. 바울이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절규하는 방식은 시편 애가의 탄식 공식과 공명하며, 이를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전환시킵니다.
바울이 그리는 '나'는 누구인가
로마서 7:14-25의 자전적 1인칭 화자('ἐγώ, 에고')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회심 전 바울 자신 또는 율법 아래 있는 인류를 대표하는 목소리라는 견해. 둘째, 그리스도인이지만 아직 성화 과정 중에 있는 신자를 가리킨다는 견해. 셋째, 성령에 의해 재생된 참된 그리스도인의 현재 경험을 반영한다는 개혁주의 전통의 해석. 이 논쟁의 신학적 함의는 §3 해석 가능성과 §5 설교사·수용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이 맥락에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1인칭 현재 시제를 일관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부정과거가 아닌 현재형의 반복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읽는 이와 함께 살아있는 경험의 현장성을 전달합니다. 이 수사적 선택 덕분에 어느 시대 어느 회중이 듣더라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공명이 생깁니다.
로마 제국의 사회적 배경
로마서가 작성된 1세기 중엽 로마 제국의 사회는 극단적인 불평등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람페(P. Lampe)는 그레코로만 세계의 사회복지 실천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로마 제국 사회에서 후원자-피후원자 관계(patron-client system)가 사회 안전망의 핵심 구조였음을 밝힙니다.[bg1] 이 사회에서 노예제는 경제와 가정의 기초였으며, 바울이 7장에서 사용하는 '포로로 잡힘'(αἰχμαλωτίζω, 아이크말로티조)·'죄의 법 아래 팔림'(7:14)이라는 노예 은유는 청중에게 매우 생생한 실재감을 주었습니다. 죄를 한낱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사람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주인'으로 그리는 바울의 언어는 노예제가 일상인 세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예제와 구원 은유의 문화적 기반
바울이 7장에서 사용하는 언어들 — '죄 아래 팔림'(7:14), '사로잡힘'(23절), '건져 냄'(24절) — 은 1세기 로마 제국의 노예제 현실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로마 세계 인구의 상당 비율이 노예 신분이었으며, 노예는 법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죄가 사람을 사로잡아 끌고 간다'는 이미지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청중이 일상에서 목격하는 실제 권력 관계에서 끌어온 강렬한 그림입니다.
동시에 구원(ῥύσεται, 흐뤼세타이, '건져 내다')을 '해방'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노예를 소유주에게서 '구속(贖出)'하여 자유를 주는 관행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사회적 관행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이해하는 언어를 가져왔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라고 말한 뒤 7장의 갈등으로 전환하는 구조적 흐름도, 이 자유/예속의 신학적 긴장을 따라 전개됩니다.
람페(P. Lampe)는 그레코로만 세계의 사회복지 실천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로마 제국 사회에서 후원자-피후원자 관계(patron-client system)가 사회 안전망의 핵심 구조였음을 밝힙니다.[bg1] 이 사회적 의존 관계의 언어와 구조는 바울이 '죄의 지배'와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대조하는 신학적 틀을 독자들이 즉각 이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참고 자료
- P. Lampe, "Social welfare in the Greco-Roman world as a background for early Christian practice," *Acta Theologica* 23 (2016). https://doi.org/10.38140/at.v0i23.2767
로마서 7:15~ 25a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각 절의 원어·문법 핵심과 주석적 논점을 의미 단위 묶음으로 심층 주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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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17 — 행위의 역설: 원함과 행함 사이의 심연
본문: ὃ γὰρ κατεργάζομαι οὐ γινώσκω· οὐ γὰρ ὃ θέλω τοῦτο πράσσω (15절) / νυνὶ δὲ οὐκέτι ἐγὼ κατεργάζομαι αὐτό, ἀλλὰ ἡ οἰκοῦσα ἐν ἐμοὶ ἁμαρτία (17절) 직역: "내가 이루어 내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이것을 내가 행하지 않고…" (15절) /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그것을 이루어 냅니다." (17절)
원어·문법 핵심: - κατεργάζομαι(카테르가조마이): 현재 능동 직설법 1인칭 단수 — '끝까지 이루어 내다, 결과를 산출하다'. 단순 행위 동사 πράσσω·ποιέω보다 강조형으로, 행위가 귀결에 이르렀음을 함의합니다. 바울 서신에서 약 22회 등장하며 로마서에 집중되고, 대부분 죄·고난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산출하는 맥락에 쓰입니다. - γινώσκω(기노스코): '경험적으로 알다'. 단순 지식(οἶδα)이 아닌 관계적 앎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행동의 귀결과 의지가 분리된 실존적 상태입니다. - ἁμαρτία(하마르티아, 17절 주격): "내 속에 거하는 죄(ἡ οἰκοῦσα ἐν ἐμοὶ ἁμαρτία)"로 주격 명사가 되어 행위의 주체가 됩니다. 17·20절에서 반복되며, 죄를 단순한 행위 실패가 아니라 내주(oikéō, '눌러 살다')하는 지배 세력으로 인격화합니다. LXX에서 ἁμαρτία는 주로 하나님 명령에 대한 위반을 가리키나(레위기 4장), 7장에서는 존재론적 내주 세력으로 전환됩니다.
주석적 논의: 15절의 세 동사 θέλω·πράσσω·ποιέω는 동의어처럼 보이나 의미 층위가 다릅니다. πράσσω는 반복·습관적 행위를, ποιέω는 단회적 실현을, κατεργάζομαι는 결과에 이른 행위를 강조합니다. 이 세 동사의 교차가 의지-의도-실행의 각 층위를 구현합니다.
16절 "율법이 선하다는 데 동의합니다"는 내면 갈등의 역설적 부산물입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서도 율법의 선함을 인식론적으로 확인합니다. 17절의 주격 전환 — "이제는 내가 아니라 죄가" — 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죄의 지배 세력을 실재하는 행위 주체로 진단하는 신학적 언어입니다. 산데이(Sanday)와 헤들람(Headlam)은 7:14-25 화자의 정체가 예부터 논쟁거리였음을 지적하는데(ICC, 1902, p.305), 이 논쟁은 §3에서 상세히 다룹니다.
설교적 함의: "아는데도 못 하는가?"는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 온 중년·시니어 세대의 평생 질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죄의 내주 세력이 만든 구조적 실상임을 선언합니다. 설교는 이 진단 위에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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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20 — 원함은 있으나 이룸이 없습니다
본문: οἶδα γὰρ ὅτι οὐκ οἰκεῖ ἐν ἐμοί, τοῦτ᾽ ἔστιν ἐν τῇ σαρκί μου, ἀγαθόν (18절) 직역: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원어·문법 핵심: - σάρξ(사르크스): '내 육신(τῇ σαρκί μου)'. 바울에게 σάρξ는 물질적 몸을 넘어 '하나님을 거스르는 타락한 인간 영역'을 가리킵니다. 18절에서 "내 안에"와 "내 육신 안에"를 동격(τοῦτ᾽ ἔστιν)으로 놓은 것은, 바울이 '나'와 '육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육신이 '나'의 현실 조건임을 인정하는 긴장입니다. 바울 서신에서 σάρξ는 약 91회 사용되며, 로마서 7-8장에서 πνεῦμα와의 대립 구조가 핵심 골격을 이룹니다. - θέλω와 κατεργάζομαι의 부정사 대립: 18b절 "원함(τὸ θέλειν)은 내 곁에 있으나, 선을 이루어 내는 것(τὸ κατεργάζεσθαι)은 없습니다"는 15절의 역설을 명제적으로 압축합니다. 동사에서 부정사로의 전환이 이 대립을 더욱 추상적 선언으로 결정화합니다.
주석적 논의: 18절은 17절의 오해를 방지합니다. "내 안에 선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내 육신 안에"라는 한정이며, '나'에게 선을 원하는 속사람(18b절)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육신과 속사람의 이 비대칭이 바울 인간론의 핵심입니다.
19-20절은 15-17절의 구조를 반복하며 논리를 강화합니다. 특히 18절에서 οἶδα(오이다, '직관적 앎')를 사용한 것은 15절의 γινώσκω(경험적 앎)와 대비되어, 이 사실이 이미 확실한 직관으로 주어져 있음을 강조합니다.
설교적 함의: 반복하는 실패 — 같은 죄를 반복하고, 같은 결심이 무너지는 경험 — 는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σάρξ의 실상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 바울의 신학적 정직함임을 설교는 확인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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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23 — 두 법의 전쟁: 마음의 법과 지체의 법
본문: βλέπω δὲ ἕτερον νόμον ἐν τοῖς μέλεσίν μου ἀντιστρατευόμενον τῷ νόμῳ τοῦ νοός μου καὶ αἰχμαλωτίζοντά με ἐν τῷ νόμῳ τῆς ἁμαρτίας (23절) 직역: "내 지체들 안에서 내 마음의 법에 맞서 진을 치고 싸우는 다른 법을 내가 봅니다. 그것이 나를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으로 사로잡아 끌고 갑니다."
원어·문법 핵심: - νόμος(노모스): 21-23절에 네 차례 등장하며 각각 다른 지시체를 가집니다. ① 21절: 선을 원할 때 악이 곁에 있다는 원리, ② 22절: 속사람이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법', ③ 23절: '마음의 법'(νοῦς가 인식하는 규범), ④ 23절: '죄의 법'(지체 안의 죄 세력). 이 네 용법은 νόμος가 모세 율법 외에도 어떤 지배 원리·규범적 힘을 가리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산데이(Sanday)와 헤들람(Headlam)은 바울이 νόμος를 '원리·규칙'의 일반 의미로도 사용하며 여기서 '죄의 지배 원리'를 가리킨다고 봅니다(ICC, p.303). - ἀντιστρατευόμενον(안티스트라튜오메논): 현재 중간 분사 — '맞서 진을 치고 싸우는'. 신약 유일어. ἀντί(대항) + στρατεύω(군사적 전쟁)의 결합으로 단순 충돌이 아닌 조직적·군사적 적대를 강조합니다. 1차 문헌 병행: 요세푸스(Josephus)는 『유대 전쟁사』(Bellum Judaicum) 3.10.1에서 ἀντιστρατεύω 계열을 군대가 적진에 맞서 진을 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 전쟁 이미지가 바울에게 내면의 적대 구조를 묘사하는 어휘로 전용됩니다. - αἰχμαλωτίζω(아이크말로티조): 현재 분사 — '창끝으로 포로로 잡다'. 승리한 군대가 적군을 사로잡아 포로 행렬로 끄는 이미지입니다. 노예제와 전쟁 포로가 일상이던 로마 세계에서 즉각 이해되는 강렬한 표현입니다. - νοῦς(누스): '분별하는 마음·지성'. 22절 "속사람(ἔσω ἄνθρωπος)"과 상응하며,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고 인식하는 내면의 기능입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Timaeus, §9)에서 νοῦς를 영혼의 최고 기능으로 설명하며, 이성이 감각 기관과 욕구를 지배해야 한다는 위계적 이원론을 제시합니다. 바울의 νοῦς 사용은 이 헬레니즘 범주와 표면적으로 유사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플라톤에게 이성의 승리는 교육과 훈련으로 가능하지만, 바울에게 νοῦς는 하나님의 법을 인식하면서도 육신의 지배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해방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합니다(25a절).[s4n1]
참고 자료
- Plato, *Timaeus*, §9 (trans. R. G. Bury, Loeb Classical Library, 1929). Perseus Digital Library. 사실 진술 비교; 직접 인용 아님.
교회 역사에서 로마서 7:15~ 25a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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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칼빈은 로마서 7:14-25를 주석하면서 이 본문의 '나(ἐγώ)'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인지, 아니면 중생한 신자인지의 논쟁에 정면으로 뛰어듭니다. 그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이 단락은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가 여전히 싸워야 하는 내면 전쟁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21절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를 해설하면서, 이 고백이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의 절망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자가 자기 내면의 분열을 직시하는 정직한 탄식임을 강조합니다.[rh1]
칼빈의 독법은 중요한 설교적 함의를 가집니다. 그에게 이 본문은 "신자는 완전하다"는 환상을 깨뜨리는 본문입니다. 참된 경건은 내면 갈등을 부인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갈등 속에서 그리스도를 붙드는 데 있습니다. 이 해석은 개혁주의 전통이 7장을 칭의와 성화의 긴장 속에서 읽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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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
매튜 헨리는 로마서 7장을 "은혜와 부패 사이의 갈등 묘사"라는 제목 아래 읽습니다. 그는 14절 이하를 "이 단락은 사도의 자기 경험으로 율법의 탁월함과 유용함을 증명한다"고 요약하면서, 본문이 율법을 변호하는 동시에 율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진실을 드러낸다고 봅니다.[rh2]
헨리의 주석은 목회적 실용성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5-25절의 갈등 구조를 설교 현장에서 쉽게 제시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합니다.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는 실패'를 회중이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하게 한 뒤, 25절의 감사로 전환하는 흐름이 그의 주석에서 설교의 골격으로 나타납니다. 청교도 청중이 죄책과 은혜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신앙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헨리의 목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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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웨슬리는 로마서 7장에 관해 독특한 입장을 취합니다. 그는 이 장 서두에서 "사도는 신자의 이전 상태와 현재 상태를 비교하는 동시에, 유대인 신자들을 율법에 대한 애착에서 떼어 놓으려 한다"고 주석합니다.[rh3] 웨슬리는 7:14-25의 '나'가 중생하지 않은 인간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성화에 대한 그의 낙관적 신학 — 성령으로 말미암은 '전적 성화(entire sanctification)'의 가능성 — 이 이 입장을 뒷받침합니다. 중생한 신자라면 7장에 묘사된 절망적 갈등에서 점차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칼빈의 독법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교회사에서 7장 해석의 핵심 쟁점을 이룹니다. 설교자는 자신이 속한 신학 전통을 의식하면서도, 두 입장이 각각 어떤 영적 현실을 가리키는지를 설교 안에서 균형 있게 담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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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스펄전은 「죄의 진정한 성격(Sin's True Character)」이라는 설교에서 로마서 7:13을 본문으로 삼아, 율법이 죄를 더 심각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바울이 율법이 있을 때 "율법이 금하는 것을 하고 싶은 욕망이 즉각 일어났다"고 묘사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스펄전의 분석: "율법이 그를 죄 짓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 율법은 선하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그의 마음이 선한 것마저 악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rh4]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역설이며, 율법의 진정한 목적 — 죄가 얼마나 죄스러운가를 분명하게 드러냄 — 입니다.
스펄전의 설교는 빅토리아 시대 청중에게 죄의 심각성과 복음의 필요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그의 접근은 7장을 복음 전도의 준비 단계로 읽는 탁월한 목회적 직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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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칼빈에서 스펄전에 이르는 수용사는 로마서 7장을 둘러싼 핵심 질문이 세기를 거쳐 반복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칼빈은 중생한 신자의 경험으로, 웨슬리는 중생 이전 상태로 읽으며 두 흐름이 갈립니다. 매튜 헨리는 목회적 균형 속에서 갈등 자체를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다루고, 스펄전은 죄의 심각성을 복음 전도의 문으로 전환합니다. 이 네 줄기의 해석은 오늘 설교자에게도 동일한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회중이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 — 진단(율법·죄)에서인가, 아니면 해방(그리스도·복음)에서인가? 그 어느 길을 택하든, 본문의 25절은 동일한 착지점으로 이끕니다.
참고 자료
- Calvin, *Commentary on Romans*, ad loc. 7:21-23. PD.
-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6, ad loc. Romans 7:14-25. PD.
-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ad loc. Romans 7:1. PD.
- Spurgeon, *Spurgeon's Sermons*, vol. 59, "Sin's True Character" (No. 3374), 1913.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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