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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9장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9장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고린도는 아가이아 속주의 수도로서 동쪽의 사로닉 만과 서쪽의 고린도 만을 연결하는 지협 위에 자리 잡은 상업 도시였습니다. 1세기 고린도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 도시였으며, 로마의 자유인, 유대인 이민자, 그리스 전통을 지닌 시민들이 뒤섞여 살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8장에 걸쳐 이 공동체의 성도덕, 소송, 우상제물 문제를 다루었는데, 9장은 그 논의를 이어받아 사도 자신의 삶으로 원칙을 검증합니다.

1세기의 '사도권'과 바울에 대한 비판

1세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에서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는 단순히 어떤 직함이 아니라 보낸 분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인이었습니다. 이 권위가 진짜임을 증명하는 표지로 당시에는 두 가지가 통용되었습니다. 첫째,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다는 증언, 둘째, 그 사역을 통해 생겨난 공동체라는 열매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이 두 가지 모두를 자신이 갖추었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하였느냐 그리고 내 사역의 결과가 주 안에서 너희가 아니냐."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격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이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진짜 사도라면 후원을 받아야 마땅한데, 바울은 왜 자기 손으로 일하면서 보수를 거절하는가? 그것은 그가 후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닌가?" 이 공격에 대한 바울의 변론이 9장 전체를 이룹니다.

후원-피후원 관계와 물질적 지원

그레코-로마 세계에서는 후원자(patron)와 피후원자(client) 사이의 호혜 관계가 사회의 핵심 원리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선생이나 사절이 되면, 그는 당연히 물질적 보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누가복음 10:7)고 하셨는데, 바울은 14절에서 주님의 이 명령을 직접 인용하면서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으로 먹고사는 것은 정당한 권리임을 논증합니다. 다른 사도들과 게바(베드로), 그리고 심지어 바나바도 이 권리를 활용했다고 그는 말합니다(5-6절).

바울이 이 권리를 포기하고 천막을 짜는 수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은 후원 관계의 암묵적 의무, 즉 후원자에게 일종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행전 18:3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천막을 만들며 일했다고 기록합니다. 후원을 받으면 후원자의 입장과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이 생기는데, 바울은 복음 선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그 압력에서 자유롭기를 원했습니다.

이스트미아 경기와 운동선수 은유

고린도 지협에서는 4년마다 이스트미아 경기(Isthmian Games)가 열렸습니다. 이 경기는 그레코-로마 세계에서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운동 경기였으며, 고린도인들에게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문화적 현상이었습니다. 승자에게는 풀이나 마른 소나무 가지로 만든 화관이 수여되었는데, 이 화관은 빠르게 시들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25절에서 "썩을 화관"(φθαρτὸν στέφανον, 프타르톤 스테파논)을 받기 위해 선수가 모든 것을 절제한다고 말할 때, 고린도인들은 즉각적으로 이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스트미아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경기 전 열 달 동안 엄격한 훈련과 금욕 규정을 따라야 했습니다. 음식, 수면, 성생활 등 모든 면에서 절제가 요구되었으며, 이를 어기면 경기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ἀδόκιμος, 아도키모스). 바울은 이 이미지를 빌려, 복음 사역자도 목표를 향해 자신을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한 자가 정작 자신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격자'가 되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이 은유는 고린도 청중에게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신명기의 소 규정과 바울의 성경 해석

9절에서 바울은 "타작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명기 25:4)는 모세 율법을 인용합니다.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셔서 이 말씀을 하셨겠는가?"라는 수사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1세기 유대 해석 방식인 칼-와-호메르(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 추론하기)의 적용입니다. 소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인 사도가 자기 수고의 열매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성경에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순수하게 규범적으로 읽지 않고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내 적용하는 이 방식은, 당시 랍비 해석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합니다.

같은 구절은 후에 디모데전서 5:18에도 인용됩니다. 이것은 이 신명기 본문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사역자 지원의 원칙을 뒷받침하는 '표준 구절'로 정착해 갔음을 보여줍니다.

8-10장의 논증 구조에서 9장의 위치

고린도전서 8-10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읽을 때, 9장은 이 논의 전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8장에서 바울은 "강한 자"들이 가진 지식과 자유가 믿음이 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뜨리면 죄가 된다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를 경고의 보보기로 들고, 우상제물 문제에 대한 구체적 지침으로 마무리합니다. 그 사이에 낀 9장은 언뜻 주제가 달라 보이지만, 이것은 바울이 선언한 원칙(자유를 사랑으로 제한하라)을 자기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논증의 흐름상 9장을 건너뛰면 8장의 원칙과 10장의 결론 사이에는 구체적 모범이 없는 채 이론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9장은 보충이나 여담이 아니라, 설득력의 핵심 고리입니다.

학자들은 이 구조를 가리켜 9장이 8-10장 논증의 '교두부(pivot)'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 관찰은 사용자 추가요청에서도 제기된 중요한 주석적 물음입니다. 9장이 8장과 10장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이해하면, 바울의 논증 전략 전체가 선명해집니다. 8장의 원칙이 옳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논리가 맞아서가 아니라, 바울 자신이 그 원칙을 이미 살아 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는 권고(11:1)를 9장에서 이미 실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동시대 사도들의 사도권 주장

신약성경에서 바울만 사도권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 형태는 달랐습니다. 갈라디아서 1-2장에서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계시로 직접 복음을 받았다'는 독립성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12장("슈퍼 사도들"과의 갈등)에서는 웅변 능력, 외모, 환상과 계시 체험, 표적과 기사가 사도의 증표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9장의 공격은 좀 다릅니다. 여기서는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격 부족의 증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답변 전략도 그래서 다릅니다. 그는 자신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권리가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니다.

베드로(게바)와 주의 형제들은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5절) 교회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 역시 당시 사도들이 물질적 지원을 당연한 권리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맥락입니다. 바울의 결정은 일반 관행에서 벗어난 예외적 선택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그의 신실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역풍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PD 주석서·학술 논문을 종합한 절별 주해. 27절 → 11그룹(강제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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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 사도권 주장과 두 증거

본문: Οὐκ εἰμὶ ἐλεύθερος; οὐκ εἰμὶ ἀπόστολος; 직역: "내가 자유인이 아닌가? 내가 사도가 아닌가?"

원어·문법 핵심: - ἐλεύθερος: 법적 자유인 신분. 바울이 고린도 공동체의 피후원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언어. - ἀπόστολος: 보낸 분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인. 단순 직함이 아닌 법적 신분.

주석적 논의: 바울은 수사적 질문 연속으로 부정 불가능한 두 근거를 확립한다. ①주님을 직접 보았다(부활 목격), ②고린도 교회가 사역의 열매다. 로버트슨·플러머(ICC, 1911, p.44)는 이 두 근거가 사도권의 외적 정당성과 내적 열매를 동시에 아우른다고 분석한다. 2절 "너희가 내 사도권의 인(印)"은 살아있는 공동체가 가장 강력한 반증임을 선언한다.

설교적 함의: 바울의 자격 증명은 서류가 아닌 사람이었다. 작은 교회의 존재 자체가 이미 사역의 증거다.

→ [핵심 메시지: 자격 있는 자의 선택 — 권리를 가진 사람이 내려놓는 역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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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 — 사도의 정당한 권리 목록

본문: μὴ οὐκ ἔχομεν ἐξουσίαν… 직역: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는가?"

원어·문법 핵심: - ἐξουσία: 법적으로 행사 가능한 정당한 권리. 4·5·6절에 반복 등장하며 권리 목록을 구성한다. - ἀδελφὴ γυνή (5절): 신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 — 베드로와 주의 형제들도 행사한 관행.

주석적 논의: 바울은 방어적 자기변론 대신, 먼저 권리의 존재를 확립하는 공세적 전략을 취한다. 5절에서 게바와 다른 사도들도 이 권리를 행사했다는 사실 진술은 자신의 포기가 권리 부재 때문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설교적 함의: "없어서 못 주는 것"과 "있는데 내어 주는 것"의 차이가 이 단락에서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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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0 — 자연·성경에서 끌어낸 유비 논증

본문: μὴ τῶν βοῶν μέλει τῷ θεῷ; 직역: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인가?"

원어·문법 핵심: - κημόω (9절): 입마개를 씌우다 — 고전 9:9에만 나타나는 단어. 신명기 25:4 헬라어 인용. - ἀλοάω (9-10절): 타작하다 — 딤전 5:18에 재인용되어 사역자 지원 원칙의 표준 구절로 정착된 어휘.

주석적 논의: 군인-포도원 농부-목자의 세 직업 유비(7절)에 이어, 신명기 25:4 인용 뒤 즉시 던지는 "하나님이 소를 걱정하셨겠는가?"는 랍비 해석 기법 칼-바호메르(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의 전형이다. 소보다 중요한 사역자에게 당연히 몫이 있다는 논리를 성경 해석 안에서 도출한다.

설교적 함의: 성경에서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해석 자세를 바울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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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12 —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교환 원리

본문: εἰ ἡμεῖς ὑμῖν τὰ πνευματικὰ ἐσπείραμεν… 직역: "영적인 것을 심었다면,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큰일인가?"

원어·문법 핵심: - πνευματικά / σαρκικά: 영적 씨뿌림(복음 전도)과 물질적 수확(재정 지원)의 대비. - στέγω (12절): 덮다, 참다 —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감당한다는 뜻.

주석적 논의: 12절의 핵심 반전은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쓰지 않았다"이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방해받지 않게 하려는" 것(12절 후반)이다. 더 큰 것(복음)이 목표이기 때문에 더 작은 것(물질 지원)을 포기할 수 있었다.

설교적 함의: 더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사람은 작은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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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14 — 성전 비유와 주님의 명령

본문: ὁ Κύριος διέταξεν τοῖς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καταγγέλλουσιν ἐκ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ζῆν 직역: "주님이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생활하도록 명령하셨다"

원어·문법 핵심: - παρεδρεύω (13절): 제단 옆에서 시중드는 제사장의 밀착 봉사 — 고전에만 나타나는 표현. - διέταξεν: 단순 과거 능동태 — 주님이 이미 명령하셨다는 완결 사실. 누가복음 10:7을 가리킨다.

주석적 논의: 구약 제사장 제도(민 18:8,31)에서 신약 복음 사역자로의 유형론적 연결이다. 호렐(Horrell)은 바울이 14절에서 주님의 명령을 직접 인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적용을 거부하는 역설이 사도적 권위의 자발적 제한이라는 9장의 핵심 논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분석한다.[s1]

설교적 함의: 바울은 주님의 명령보다 더 나아가, 명령이 허용하는 권리조차 포기한다.

→ [핵심 메시지: 명령 이상의 삶 — 규칙을 따르는 것을 넘어 자원하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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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16 — 자랑(καύχημα)과 사명의 강박(ἀνάγκη)

본문: οὐαὶ γάρ μοί ἐστιν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σωμαι 직역: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

원어·문법 핵심: - καύχημα (15절): 자랑거리 — 권리를 포기한 것 자체가 바울의 자부심 근거가 된다. - ἀνάγκη (16절): 피할 수 없는 필연 — 복음 전도는 바울에게 존재론적 의무다.

주석적 논의: 두 가지가 대비된다. 물질 포기(자발적 자랑) vs 복음 전도(불가피적 강박).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바울의 자기인식이 선명하다.

설교적 함의: 소명은 강박이지만, 섬김의 방식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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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18 — 자원이냐 비자원이냐 — 삯과 상급

본문: εἰ γὰρ ἑκὼν τοῦτο πράσσω, μισθὸν ἔχω · εἰ δὲ ἄκων, οἰκονομίαν πεπίστευμαι 직역: "자원하면 상급이 있고, 비자원이어도 청지기의 일을 맡은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ἑκών / ἄκων (17절): 자발적 / 비자발적 — 이 희귀 용어 쌍이 바울 자기이해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 ἀδάπανος (18절): 비용 없이, 무료로 — 바울의 상급이 포기 안에 있다는 역설적 선언.

주석적 논의: 자원해서 해도, 비자원이어도 복음 전도는 멈출 수 없다는 양방향 논증이다. 그의 상급(18절)은 성과가 아니라 포기에 있었다.

설교적 함의: 아무도 모르게 자기 돈을 쓰며 섬기는 사람의 자랑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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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21 — 자유인의 자원하는 종 됨

본문: ἐλεύθερος γὰρ ὢν ἐκ πάντων πᾶσιν ἐμαυτὸν ἐδούλωσα 직역: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지만 나는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원어·문법 핵심: - ἐδούλωσα (능동, 1인칭 단수): 바울 자신이 능동 주어로 자기 결박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형태. - ἔννομος Χριστοῦ (21절):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자 — 행 19:39 병행. 율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높은 기준에 묶여 있다는 역설.

주석적 논의: 뷔너(Bühner)는 9:19의 자기노예화가 추상적 비유가 아니라, 고대 노예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구체적 현실로 이해될 때 무게가 드러난다고 분석한다.[s2] 카포네(Capone)는 4세기 황제 율리아누스가 9:22의 표현을 기회주의적 변절로 공격했다고 분석하는데, 이는 이 구절이 당시부터 오해받아 왔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s3]

설교적 함의: 자유가 있어야 진정으로 종이 될 수 있다. 강요된 섬김이 아닌 자유 안에서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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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23 — 약한 자와 함께 약해짐

본문: ἐγενόμην τοῖς ἀσθενέσιν ἀσθενής… πάντα δὲ ποιῶ διὰ τὸ εὐαγγέλιον 직역: "약한 자에게 약한 자처럼 되었다…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한다"

참고 자료

  1. David G. Horrell, "'The Lord Commanded…but I Have Not Used…': Exegetical and Hermeneutical Reflections on 1 Cor 9.14–15," *New Testament Studies* 43 (1997). DOI: 10.1017/s002868850002340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2. Ruben A. Bühner, "Die paulinische Rede von der Selbstversklavung in 1 Kor 9,19 vor dem Hintergrund jüdischer Identität im Sklavenstand," *New Testament Studies* 69 (2023). DOI: 10.1017/s0028688522000285.
  3. Alessandro Capone, "Emperor Julian, Paul of Tarsus, and the Octopus," *Religions* 16 (2025). DOI: 10.3390/rel16060802.
  4. Brian Keith Gamel, "Paul's Non-Competitive Competition: 1 Corinthians 9:24–27," *Religions* 17 (2026). DOI: 10.3390/rel17040453.
  5. Jerry L. Sumney, "The Place of 1 Corinthians 9:24-27 in Paul's Argument,"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19 (2000). DOI: 10.2307/3268490.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9장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고린도전서 9장은 초대교회부터 19세기까지 설교자들이 "자발적 포기의 신학"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돌아온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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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시대: 크리소스톰과 암브로시우스 (4-5세기)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c.349-407)은 『고린도전서 강해』 Homily XXI-XXIII에서 9장 전체를 연속 설교했다. 그는 1-12절을 다루며 바울의 독특함을 이렇게 포착한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우상제물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먹고 살도록 명하셨음에도, 바울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서 받지 않기로 했다." 크리소스톰은 바울의 포기가 신자들을 실족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세우기 위한 "의무를 초월한 봉사(supererogation)"였다고 강조한다.[rh1] 24-27절의 경기 은유를 다루는 Homily XXIII에서는, 경기에서 한 명만 이긴다는 것이 한 사람만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해야 할 극도의 열심"을 표현하는 언어라고 정확히 해설한다.[pat1]

암브로시우스(Ambrose, c.340-397)는 『의무론』에서 7절의 자원하는 자에게 상급이 있다는 본문을 인용하여, 선행이 의무에서 나올 때와 자유의지에서 나올 때의 차이를 논한다. 그는 선의와 관용을 함께 갖추어야 진정한 친절이 성립한다고 결론 내린다.[r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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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시대: 칼빈 (16세기)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9장 전체를 꼼꼼히 다룬다. 그는 13-22절 주석에서 바울이 먼저 권리를 확립하고 그 다음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논증 구조에 주목한다. 23절 주석에서는 바울이 "복음의 공동 참여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바울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사도적 상황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해당하는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즉 복음을 전달하는 자가 동시에 복음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공동체적 의미를 적출한다. 24-27절 주석에서는 경기 은유를 이렇게 적용한다. "그들은 아직 얻지 못한 것처럼 달리라고 촉구받는다. 지금까지 이른 것이 충분하지 않다."[r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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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시대: 매튜 헨리 (17-18세기)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는 간결하게 9장의 핵심을 이렇게 압축한다. "목회자의 영광은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며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을 때, 의무 이상을 행한 것이다." 헨리는 15-23절 주석에서 바울이 법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이 자기 사역의 열매이자 증명이라고 본다.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이 영적 열심과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4-27절에서는 이스트미아 경기 선수들의 절제를 통해 "육신의 욕망과 싸우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고 적용한다.[r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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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스펄전과 맥라렌

스펄전(C.H. Spurgeon, 1834-1892)은 9:16("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을 1855년 설교 "Preach the Gospel"에서 이렇게 다룬다. "바울은 경험에서 말한다. 그는 전파하는 일을 다 마쳤을 때, 영혼의 깊은 곳에서 기쁨과 소망을 누렸다." 또한 9:22를 본문으로 한 두 편의 설교("By All Means, Save Some", 1874; "Soul Saving Our One Business", 1879)에서, 바울의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됨"을 단일한 목표(영혼 구원)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삶의 방식으로 해석한다.[rh5]

맥라렌(Alexander MacLaren, 1826-1910)은 9:16-18을 본문으로 "침묵의 죄(The Sin of Silence)"라는 제목의 설교를 남겼다. 그는 바울의 설교 의무(ἀνάγκη)를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부과된 후 평생 반복된 신적 강박"으로 보며, 이것이 단순히 사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의무 이상의 자원하는 순종"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고 적용한다. 9:19-23을 다룬 "모든 사람의 종(A Servant of Men)"에서는 "남의 구원을 위해 유사점을 찾아 접근하는 것"과 "두루 잘 보이려는 기회주의적 변절"을 날카롭게 구분한다.[r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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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소결

이 본문의 수용사에서 반복되는 세 가지 강조점이 있다. 첫째, 바울의 포기는 의무 이상의 자발적 초월이다(크리소스톰). 둘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동시에 복음의 참여자가 된다(칼빈). 셋째, 설교의 강박(ἀνάγκη)은 특수 사명이지만, 의무 이상의 자원함은 모든 신자에게 열린 길이다(맥라렌). 원포인트 설교를 위한 설교사의 통찰은 이 세 가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하는 지점에서 나온다.

참고 자료

  1. Chrysostom, *Homilies on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Homily XXI (9:1–12).
  2. Ambrose, *Select Works and Letters*, §143, On Duties (De Officiis), 고전 9:7 관련 단락.
  3. Calvin, *Commentary on Corinthians*, vol. 1, 9:13–30 주석.
  4.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9:1–30 주석.
  5. Spurgeon, *Sermons* vol. 1 (1855) "Preach the Gospel" (9:16); vol. 20 (1874) "By All Means, Save Some" (9:22).
  6. MacLaren,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Romans and Corinthians*, "The Sin of Silence" (9:16–18); "A Servant of Men" (9:19–23).
  7.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고린도전서 강해』 Homily XXIII (9:24–30),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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